이름을 가졌던 모든 것들은
제 몸에 걸치고 있던
살과 피부가 녹을대로 녹아
한 알의 모래로 남았을 때쯤
여기로 와서
마침내 한꺼풀의 이름마저
이른 아침 바람더러 씻겨내라서 벗는다
우리가 더이상 부르지 못해
볼 수 없는 것들이 된다
꼴을 지녔던 모든 것들도
한때 제 것이라고 여겨 마지않던
뼈 속의 척수와 피가 마를대로 말라
한 톨의 모래로 남았을 때쯤 결국
여기로 와서
마침내 한웅큼의 제 꼴마저
정오의 볕더러 털어내라서 벗는다
우리가 더이상 볼 수 없어
부르지 못하는 것들이 된다
이름-꼴 벗어놓은 허물들을
입꼬리 거품 마냥 주렁주렁 매달고
바람은 하필 여기에만 없는 것
물소리를 흉내내
큰 소리로 울다가 웃다가
실성한 듯 하루종일
봉긋하게 누운 햇볕 위로 쏘다니며
괜히 몇 번 우르르 무너진다
두 일란성 쌍둥이 아이들이 찾아온 오후
아이들은 다짜고짜
제 발자국 모양을 찍어대더니
거기 한복판 그냥 대자로 누워
바람과 함께 엉겨 데굴데굴 허우적거리다
햇볕 묻히고 깔깔깔 웃는다
아이들이 남겨놓고간 발자국 안에
복숭아뼈까지 잠겨들어
노을 속에서 모래가 되어가는 노인은
여전히 정정한 제 이름과 꼴을 부여잡고
제 자리에 붙박혀
꼼짝 않고서 이를 간다
떠도는 모래 언덕
Råbjerg Mile / Denmark/ 04.2025 / Mira
*Råbjerg Mile. 덴마크 유틀란트 반도 최북단의 자연적으로 형성된 대규모 이동사구. 유럽에서 가장 규모가 큰 이동 사구로 1900년부터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 현재 이 시각에도 이 사구는 바람에 이끌려 매해 15km 이동하고 있으며 지금으로부터 약 150년이 지난 후에는 사구 전체가 동진을 계속하다 북해로 사라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