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부낌

by 미라




바람의 무대에 서서

내가 맡은 배역은 오로지

나부끼는 것이었다




머무른 적이 정말 있었던가

바람 부는대로

출렁이기만 계속하다

제일 먼저 바람을 잊고

무대를 잊고

배역도 잊고

나부낌만 남았을 땐

무엇이 나부낀 것이었는지도

잊고 말았다




나부낌이 몸부림이 되어가던

스산한 시간은 결국 오고

내 몸과 섞여 겹쳐 감겨드는

너의 나부낌과 만나고 나서야

몇 번인지 알 수 없는 생을

더 일렁이다가

나는 곧 고요해진다




바람의 무대 한 가운데

바람 잦아드는 아주 드문 찰나

너도 나도

나부낀 적이 없고

바람도 없어

나는 무대를

조용히 걸어나왔다








나부낌

photo_2025-06-29_18-58-13.jpg Trapholt Museum: Air Fountain by Daniel Wurtzel / Kolding. Demnmark / 04.2025 / Mi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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