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무대에 서서
내가 맡은 배역은 오로지
나부끼는 것이었다
머무른 적이 정말 있었던가
바람 부는대로
출렁이기만 계속하다
제일 먼저 바람을 잊고
무대를 잊고
배역도 잊고
나부낌만 남았을 땐
무엇이 나부낀 것이었는지도
잊고 말았다
나부낌이 몸부림이 되어가던
스산한 시간은 결국 오고
내 몸과 섞여 겹쳐 감겨드는
너의 나부낌과 만나고 나서야
몇 번인지 알 수 없는 생을
더 일렁이다가
나는 곧 고요해진다
바람의 무대 한 가운데
바람 잦아드는 아주 드문 찰나
너도 나도
나부낀 적이 없고
바람도 없어
나는 무대를
조용히 걸어나왔다
나부낌
Trapholt Museum: Air Fountain by Daniel Wurtzel / Kolding. Demnmark / 04.2025 / Mi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