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의 눈

장미 지다

by 미라




태풍의 눈 속에서 보았다

한때 장미라고 불리던 몸짓이

오래된 몸의 최면에서 깨어나

열락으로 몸을 떨다

강풍같은 시간의 마지막 가격에

흔적 없이 사라지던 순간을



스스로를 위해 아름다워야 할 이유 따위는

오래전부터 이미 없었던

장미라고 불리던 욕망은

피고 지던 몸을 벗기 전

황홀경 속에서 중얼거린다




한줌의 기름진 흙으로 누운

길고 짧은 문명들의 흥망성쇠와

그 안에서 웃다가 울다가 쏟은 눈물로

꽃씨를 틔워 꽃잎을 부풀려 벌들을 후리고

가시 돋쳐 향기도 피우며

오랜 세월 맘껏 장미-하였으니

이만하면 되었다




힘빠진 꽃받침에서 떨어져나온

꽃잎들이 덩어리째 쏟아져내린다

장미를 욕망하여 보던 버릇에게는

장미의 몸이 지지만

장미를 욕망하던 몸짓까지도 여읜 곳에서는

장미도 태풍도 아무것도 없다




태풍의 눈 속에서 보았다

닥쳐오는 태풍을 향해 천진하게 웃던 그것은

우리가 오랜동안 장미라고 부르다가

서서히 장미의 몸짓으로 착각해 보던

긴 신기루였다는 것을







태풍의 눈

장미 지다

Bremen Germany/ 07.2025 / Mira


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