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로 옮겨산지 3년만에 찾은 한국에서 느낀 점들
프롤로그
내게 ‘고향’이란 말은 참 추상적이다. 특정의 물리적인 장소를 꼽을 수도 없거니와 고향이란 말이 품는 깊은 지역적인 연고의식이나 그에 따른 남다른 정서 따위가 내게 없어서다. 전라도가 고향인 부모님으로부터 강원도에서 태어나서 서울에서 자라고 경기 일원에서 살며 한반도 남반부에서 반평생(그것도 기필코 내 수명이 길어야만 반평생이 될) 을 지내다 북미대륙 넓디넓은 땅 캐나다로 왔으니, 나의 '고국'은 명백하지만 고향은 딱히 꼽을 수가 없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이민초기의'맨땅에 헤딩'질에 여념이 없어선지 별 그리움도 없이 살다가 타향살이 3년된 그 해 여름 두 아이와 함께 나의 살던 고국, 코리아를 찾았다. 한국행을 계획하면서 드는 의문이, 나는 여행을 가는걸까, 집에 가는 걸까…부모님을 뵙고 친구들을 만나고 추억 더듬기 및 추억 만들기 말고도 내심 기대되는게 있었다. 이쪽저쪽 거리를 두고 바라보기. 3년동안 멀리 있다가 다시 찾은 나의 ‘고국’을 낯선 눈으로 바라보기. 이방인의 눈으로 최대한 ‘객관적으로’ 맞닥뜨려 그냥 다가오는 느낌을 추리기. 한편, 모국어의 바다에서 유창하게(?) 헤엄치며 모든게 익숙한 조건에서 태평양 너머 캐나다에서의 내 지난 삶을 돌아보기.
그런데 그러고 싶은 이유는 뭘까. 역시 한국은 살 곳이 못돼. 내 살 곳은 오직 캐나다. 나의 이민은 백만번 옮았음! 이란 결론을 얻어내고 싶어서? 오 노..그건 옳지않지. 부모님과 형제들, 친구들이나 그밖에 나와 관계하는 이들에게 어쩐지 미안한 노릇 아닌가. 아이고 안됐구마.이런데서 대갈빡 터지구로 우찌사노그래...? 하는 태도로 매사 캐나다는 이런데 한국은 어쩌구저쩌구 한다면 이건 밥맛 떨어지는 왕재수 아닌가. 혹시라도 나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을지 모를, 객관적인 정황에 근거하여 끌려가는듯 위장하며 사실은 의도된 결론에 도달하고야 말 우려를 견제할 장치가 필요했다. 좋아, 내 무의식에 입력된 어떤 선입견이나 편견의 프로그램을 싹밀어버리고 완전 초기화 상태로 가는거야, 오케바리, 겟셋, 뤠디투고투코리아~~
처음 공항에 도착. 아 알겠다 이 냄새. 각 나라마다 공항의 냄새가 있다는데 인도같이 뚜렷하게 유별난 데가 아니어도 우리도 있었군. 여태 몇박며칠 해외여행후 귀국은 해보았지만 몇 년 후 들어와보긴 처음. 그렇다고 뭐 고향의 내음 이런건 아니고 그냥 알겠다는 정도. 그런데, 단번에 기억나는 팔월 복더위라, 코끝에 훅 끼치는 더운 공기를 감지함과 동시에 온몸을 휘감는 습하고 끈적이는 공기에 등줄기로 흐르는 땀. 워메...간만에 찾은 한국에 예의를 갖추기라도 하듯 긴팔 셔츠에 긴 면바지 정성껏 다려 단정히 차려입은 아들내미 하는 말, 엄마 우리 가고싶은 곳 리스트중 찜질방은 빼자. 그려 빼불자, 이미 간거나 다름없응게. 여기서 날씨 얘긴 그만하고 본론으로.
에피소우드 #1
한때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잘먹고 잘사는 법'이 있던 걸로 기억한다. 얼핏 보기에 울나라는'잘먹고 잘 사는 나라'를 국시로 삼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어딜봐도 음식점이 즐비하다. 텔레비전에는 왠 연예인 남자들이 뭐 만들어 먹는 얘기를 항상 해대고 있는건지, 그런가하면 먹방은 또 뭔지. 그동안 헌법이 바뀐건 아닐까. '대한민국은 요리공화국이다... 모든 행복은 음식으로부터 나온다...' 앗, 혹시 초기화가 덜 된 모습을 보였나? 먹는 타령 많은 대한민국, 군침이 돌기보담 왜 입덧 증상이 느껴지지? 하긴 옛말에 '금강산도 식후경'이 있는 걸보면 근래 생겨난 현상이 아니리라.
에피소우드 #2
21세기 현재 대한민국의 최대 가치는 도(道)도 아니요, 덕(德)도 아니요, 복(福)도 아니요, 바로 용모(容貌) 되시겠다. 한때 입사요강 따위에 버젓이 '용모단정한 자'가 들어있던 적이 있었지만, 작금의 용모지상주의는 유사이래 하나의 신앙에 가깝지 않은지. 모든 의료 행위가 결국 '용모'에 귀결되는 인상을 받았다. 보톡스, 팔자주름이 얼마에서 얼마, 싸요 싸~ 골라골라 보톡스 맞고 앞틔임, 뒤틔임에 언제언제까지 특가쎄일하는 성형외과야 원래 그렇다치지만, 치과의 상호가 왠 '예쁜얼굴 치과'? 피부과도 빠질 수 없고, 기의 흐름이니 혈의 흐름이니 하던 한의원도 결국 '준수한 용모'에 귀착되더라. 친구에게 이 얘길 하니 배경설명은 이러했다. 요즘 우리사회에서 '좀 사는' 행세는'관리'여부에 있다라는 것. 꽤 설득력있는 이야기였다. 조만간 이런 실적을 내는 건 아닌지 모를일이다. 'OECD국가중 동안 보유률 1위! '닥치고 예쁘게'의 대한민국, 눈이 즐겁긴 한가.
에피소우드 #3
빨리빨리 코리아, 바쁘다 바빠 코리아에서 꼴랑3년만에 난 바보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좋아요'클릭 백번쯤 해주고 싶은게 있다면 촘촘한 지하철망이다. 지하철 타고 빨빨거리고 다니던 어느날, 환승하느라 잰걸음의 사람들 물결따라 가다가 지하철 도착 신호음이 들리는가 싶더니 사람들이 저마다 다다다다 계단을 내려가기에 덩달아 흐름을 잘 탄것 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출입구에서 그만 딱 멈춰설 수밖에 없었다. 이미 출입구 바로 앞에까지 사람들이 서있었는데 나도 타려면 좀 지그시 밀어주어야 가능할터. 덩치로 봐도 그렇고 중년여인이라면 보편적으로 인식되는 무교양 무대뽀의 면허소지자인 아줌마 신분에 못할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의 전두엽에서는, 그렇게되면 승객간의 'physical contact'가 불가피하다! 라고 판단하고 나의 수족에게 동작그만을 명령했나보다. 아, 이를어째, 이를어째 하다가 그만 지하철 문이 스르르 닫히고 난 창밖의 여인이 되고 말았다. 알고보니 난 반대편에서 타야하는데 다다다다 물결에 그만 뭐에 씌인듯 휩쓸려와서는 그만...우물쭈물하다 차를 놓친건 결과적으로 다행인 일이었다.
에피소우드 #4
어느날, 친정엄마와 함께 장을 보러 갔다. 카트를 채운뒤 주차장으로 가서 트렁크를 열고 기합과 함께 아랫배에 힘을 살짝 주고 쇼핑한 봉다리를 들어올릴 순서. 하지만, '남조선 우아한 주부들은 그렇게 장을 보지 않아!' 그것은 바로 배달이 가능하다는것 아닌가. 캐나다에서 단한번도 직접 이용은 커녕 남들하는거 구경해본적도 없는. 저마다 카트를 하나씩 끼고 긴 줄을 서 있는데, 뒤에 서 계신 할머니에 가까운 아주머니, 자꾸만 카트를 밀어대신다. 아래등께에 가격되는 철체의 위협이라니. 발뒤꿈치를 공략하는 카트 바퀴가 거슬려 조용히 뒤를 돌아 보는 바디랭귀지로 싸인을 주기를 여러번 끝에 이야기를 했더니, 내 마음이 아주 바뻐서...내가 피곤해서 그래...아직 뇌가 몰랑몰랑 할때부터 캐나다 사회 교육 수혜자인 아이들 왈, 엄마 저 할머니 미안하다고도 안하네. 헐~ 어떻게 그래?..아해들아 그거 아느냐.'남조선 인민들은 그렇게 쉽게 사과를 하지않아!'
에필로그
그곳에서 사람들을 만났다. 내 나라, 나의 살던 고국, 하면 무엇이겠는가 내게. 10대 경제대국? OECD국가? 핸드폰을 비롯한 잘빠진 '쌤성'제품들? Life's Good LG 가전제품들? 일본차에 버금가는 인기있는 자동차 '현다이'자동차? 세계인으로부터 사랑받는 BTS? 결국 모국어로써 섬세하게 생각을 나누고 감정을 소통하며 추억을 공유하고 관계속에 이야기를 써나갈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겠는지.
이런 글을 쓰는 이유, 한국이 어떻고 캐나다가 어떻다는 얘기가 절대 아니다. 어디서건 삶은 계속된다. 행복을 경쟁하느라 행복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지만 않는다면, 내 발 딛은 곳에서 내게 주어진 것들로써 소소하나마 충분할 수 있지 않은가. 그거 소중한 우리 '삶'이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