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어라, 그리하면 열릴 것이다'
한때 '터프가이'라는 말이 유행했던 적이 있었다. 외모는 물론 성품이나 하는 행동에서 풍기는 '터프함'은 곧 남성미의 상징이자 매력의 원천이었다. '터프가이'를 자신의 닉네임으로 삼은 배우도 기억난다. 최근엔 내가 그 뜻을 이해하는 데 꽤 오래 걸린 '츤데레'가 보태어져 '신 터프가이'로서 기존의 매력이 한층 보강된 인상을 받았다.
'여자들은 나쁜 남자에게 끌린다'란 말이 있다. 이는 동서고금을 막론한 현상인듯 하다. 한때 유행가 가사에 나오는 '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눈물의 씨앗이라고 말하겠어요'의 대목을 빌자면 사랑이 눈물의 씨앗이라기 보다 '나쁜 남자'가 눈물의 우물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나쁜 남자의 정의는 무엇일까. 정의를 내리지 않아도 수많은 문학작품이나 영화속에 등장해온 '나쁜 남자'를 우리는 보면 알 수 있다. 그런데도 현실에서 나쁜 남자를 대하면 막연하나마 알 수 있는데도 끌리곤 하는 무언가가 여자들에겐 있는 것도 사실이다. 착한 남자보다 나쁜 남자에게 끌리는 이유는 여자에게 아픈만큼 성숙하는 과정이 필요해서일까.
나쁜 남자의 레벨은 다양하겠지만 여기서는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일반적인 경우만을 들기로 하자. 온라인에서 우연히 보게된 IT동아 서동민 기자의 글에서 인용하자면,
대체로 평상시에는 무뚝뚝하지만 중요한 순간에 배려할 줄 아는 남자, (이게 왜 나쁜 남자에 들어가는지 조금 의아하다)
본인은 여기저기 집적거리면서 여자친구가 이성을 만나는 것은 용납 못하는 이기적인 남자,
마음 설레게 만들 땐 언제고 언제 그랬냐는 양 무덤덤한 태도의 남자.
내가 눈여겨 본 것은 세번째, 마음 설레게 만들 땐 언제고 언제 그랬냐는 양 무덤덤한 태도의 남자. 그것이 소위 '밀당'의 한 테크닉인지 모르겠으나 그것은 좋지 않다고 본다. 제 잘난 줄 스스로 아는 능수능란한 남자에게 휘둘리며 잡힐듯 잡히지 않는 모호한 감정놀이를 즐기는 여자가 있을까.
이런 종류의 나쁜 남자와 정 반대지점의 좋은 남자는 바로 '묻는 남자'다. 최근 이십년은 더 된 미드 '크로싱 조르단'을 봤다. 내게 확 꽃힌 인물은 바로 호이트 형사. 그는 시치미를 떼지 않는 남자다. 함께 일하는 여자와 우발적으로 키스를 나누게 되었을 때도 그게 무엇이었는지 대화를 하고 싶어한다. 일로써 자주 접하면서 자연스럽게 사적으로 어울리는 과정에서 둘 사이에 흐르는 모호한 연애감정의 기류에 대해서도 대화를 시도한다. 여기에서는 오히려 여자가 이런 대화를 애써 회피하는 탓에 이들의 관계는 어정쩡한 상태로 오래 지속되는 설정.
서로 엇갈리기만 하는 상황에서 다른 연인을 두게 됐을 때도 그는 일관계상 마주친 상대에게 묻는다. 내가 다른 사람 만나는거 괜찮냐고. 의도치 않게 둘이 잠자리를 하게 됐을 때 다음 날 아침 눈 뜨자마자 묻는다. 지난밤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냐고. 여자가 크게 곤란한 처지에 있을 때도 일하는 현장에서 짬을 내어 다가와 또 묻는다. 괜찮냐고. 바보같은 질문에 사과하고는 다시 묻는다. 이럴때 누군가 얼마간 네 옆에 있어줄 사람 있냐고. 뇌에 종양이 있는 사실을 혼자만 알고 있는 상태에서 평소와 다르게 종종 이상 행동을 보이는 여자에게 남자는 또 묻는다. 너 요즘 정말 괜찮은거 맞냐고.
시즌 6까지 죽 이어서 보는 동안 나는 이 남자에게 완전 푹 빠져버렸다. 그리고 감히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남자들이여, 물어라 그리하면 (여자마음이) 열릴 것이다.
여자들이여, 보아라 너를 진정 궁금해하고 묻는 사람이 누군지를.
단, 여자와 잠자리를 갖고나서 여자의 느낌이나 감정을 묻기보다 자신의 '퍼포맨스'를 확인하고 싶어서 묻는 '어땠어?''좋았어?' 따위의 질문은 말고.
'아. 유. 오케이?'
참 쉽고 간단해 보이는 말이지만 이 각박하다는 세상에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건넬 수 있는 말 같다. 인류 보편의 그 짧은 말로써 인간과 인간 사이에 다리가 놓아지는 말. 만일 '오케이'라면 둘 사이엔 느슨한 안도감이 공유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바로 도움의 손이 건네어질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