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그랬지. 요즘 내 출근길 운전중 반복해서 듣는 노래 제목이다. 아무 맥락없이 어떤 노래의 한 소절이 그냥 어느 순간 툭 튀어나와 흥얼거리게 되는 때가 있다. 아 이런게 진정한 '갑툭튀'가 아닐까. 왜 이 노래가 갑자기 지금? 하다가 조금씩 나직이 불러나가다 보면 가사도 얼추 생각이 난다. 참 신기하고 희한한 일이다.
이 노래도 그랬다. 그냥 기억의 어느 구석에 쳐박혀 있다가 이 '갑툭튀'의 순간을 기점으로 다시 들어보고 싶어지고 찾아서 들어보면 새롭게 들린다. 그걸 또 반복해서 듣다보면 반드시 이전에 인식하지 못했던 매력과 마주치게 된다. 나는 이 노래의 시작 부분에 완전 빠져버렸다. '참 어렸었지~' 하는 대목. 뭔가 껄렁한 듯한 음색에다 '지'와 '쥐'사이로 들리는 발음이 살짝 오만한듯 하면서 젊음 특유의 어설픈 자신감을 뿜어낸다고나 할까.
다시 보이기 시작하면 알고 싶어지게 마련. 도대체 이게 언제적 노래였지? 찾아보니 1997년도 곡이었고 더욱 놀란 것은 이게 김동률과 이적이 부른 거였다는 사실. '기억의 습작'과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등 잔잔하고 풍성한 감성을 담은 창법의 주인공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섹시한 창법을 구사하기도 한 가수였다니.
문득 궁금해졌다. 나는 어떻게 소위 예전 '히트곡'이란 노래들을 상당부분 알고 있는걸까. 특별히 팬이거나 좋아죽겠어 하지 않고도 왠만하면 알겠는 까닭이 무엇일까. 얼마전 영화 '밀수'를 보는 때에도 예전 가요들이 많이 나왔다. 나는 그 삽입곡들을 완전히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아주 꼬맹이였을 때 유행했던 노래마저도.
요즘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서 누군가 내게 크리스마스 하면 떠오르는 노래는? 하고 갑자기 질문한다면 나는 주저없이 대답할 수 있다. 라스트 크리스마스! 하고. 이건 심지어 외국곡이잖아. 이것도 한번 찾아보니 이건 그떈 그랬지보다 10년 전에 세상에 나온 노래였다. 80넌대에 인터넷이 있나 유투브가 있길 하나 이걸 어떻게 자주 듣고 친숙해지기까지 하느냐 말이다.
이또한 오래된 노래속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90년대 말에 나온 가수 김장훈의 노래 '나와 같다면'엔 이런 대목이 나온다.
또 우울한 어떤날
음 비마저 내리고
늘 우리가 듣던 노래가
radio에서 나오면...
라디오. 라디오가 생활이었던 시절, 그땐 그랬다. 라디오는 버스는 물론 많은 이들의 생활속에서 일상으로 틀어져 있던 매체였었다. 어딜가나 자주 듣게 되고 이것은 기호와 상관없이 청각을 통해 기억 어느 구석엔가 저장되는가 싶다.
라디오뿐 아니라 길거리를 지나면서도 음악을 들려주는 것은 또 있었다. 바로 레코드 가게. 그리고 무점포 불법 레코드 가게가 있었다. 당시 히트곡들을 공테이프에 녹음해 리어커에 진열해놓고 판매하는 것. 불법이었지만 그건 참 좋았었다. 무엇보다 값이 싼데다 이 가수 저 가수의 히트곡들만을 쏙쏙 뽑아 모아놓은 것이니까.
아무튼 레코드 가게에서든 길거리 불법 '주크박스'에서든 길거리에서 노래 듣는 일은 일상이었다. 상상해보라, 방금 연인으로부터 이별을 통보받고(혹은 하고) 집에 가기 위해 버스 정류장에 서 있는데 리어카에서 이런 노래말의 노래가 들려온다면.
날 사랑하지 말아요 너무 늦은 얘기잖아요
애타게 기다리지 말아요 사랑은 끝났으니까
사랑은 이제 내게 남아있지 않아요
아무런 느낌 가질 수 없어요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
바로 뮤직비디오의 주인공 되는거다. 그렇게 저렇게 우리 안에 감성 세포 어딘가에 새겨진 그 시절 그 노래들은 세월이 아득하게 흘러 어느날 '갑툭튀'로 등장하는가보다. 추억이 노래를 싣고 오는건지 노래가 추억을 싣고 오는건지 알 수 없지만 묵혀있는 추억의 조각들을 오늘은 한번쯤 꺼내어 보듬어 달라는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