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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진 Dec 29. 2023

"나도 먹고 좀 삽시다"

우리집엔 나름 크리스마스 전통(?)이 있다. 엄밀히 말하면 크리스마스와는 관계없이 그냥 그 무렵을 보내는 방식이라고 하는게 맞다. 평소에는 손이 많이 가고 가성비가 떨어져서 잘 안 해(사)먹던 메뉴를 큰 맘먹고 해먹는 것. 이를테면 프라이드 치킨, 탕수육, 오뎅 등. 그러고보니 먹는 것으로 떠나온 한국을 가까이 느껴보고자 하는걸까. 모르겠다. 그리고 영화보기. 주로 한국영화를 많이 보게된다. 


지난 주말엔 '머니백'이란 한국영화를 봤다. 내가 본 중 가장 완벽한 코미디 영화였다. 어쩌면 그리도 난처하게 되는 상황들의 '와꾸' 가 딱딱 들어맞는지 웃음을 유발하는 짜임새가 탁월했다. 별로 건실하지 않은 분노조절 장애환자 형사, 출신이 의심스러운 가식이 넘치는 악덕 정치인, 곤궁한 처지의 공시생, 피도눈물도 없는 사채업자와 그의 '꼬붕', 고객으로부터의 갑질이 괴로운 택배기사, 그리고 나날이 일감이 떨어지는 딸리는 킬러 등으로 엮어지는 이야기다.   


킬러 박씨는 명색이 킬러이지만 총을 잘 다루지 못하며 진짜 총과 비비탄 총조차 구분하지 못하여 직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지 못한다. 본인은 칼을 더 능숙하게 다룬다고 주장 하지만 어리버리하다. 그런 그에게 한때 잘나가던 시절이 있었는지조차 알지 못하나 현재는 일감이 없어서 투잡을 뛰어야 하는 처지. 집수리 현장 등에서 미장일 (건축 공사에서 벽이나 천장, 바닥 따위에 흙이나 회따위를 바르는 일) 을 하다가 어느날 살인 의뢰 전화를 받고 당황한 나머지 엉겁결에 미장...원에 머리하러 왔다고 둘러대는 감떨어지는 킬러다. 


그는 사채업자로부터 정치자금 명목으로 삥 뜯는 정치인을 죽여달라는 의뢰를 받지만 한차례 실패한다. 어쩌다가 똑같이 생긴 진짜총과 비비탄총을 같이 지니고 있다가 정치인의 유세현장에서 원거리 저격한후 정치인을 쓰러뜨리지만 비비탄을 사용한 탓에 또 실패. 이번엔 과감하게 가까이 다가가서 수차례 방아쇠를 당기지만 발사된 것은 여러 발의 비비탄 총알뿐인 상황을 그 자신은 끝까지 납득하지 못한다. 적성에 안맞는 직업을 선택해 딸리는 이 생계형 킬러를 어쩜 좋으냐고.


체포되어 조사받고 나오면서도 도무지 총이 영 이상했다며 혼잣말을 하며 의아해 하는 그에게 취재진이 묻는다. 왜 그런 일을 벌인 거냐고. 

가던 걸음을 멈추고 골똘하던 킬러는 취재진을 향해 천천히 몸을 돌려 말한다. 


"나도...먹고 좀 삽시다" 


아, 이 한마디. 이 숭고한 명제는 우리네 삶의 시작점이 아니겠는지. 나는 국민소득 몇 만 달러 어쩌구 하는 구호나 자아도취성 선진국 빵빠레가 어쩐지 우려스럽다. 사회는 날이 갈수록 휘황찬란해지지만 한편으로 적잖은 사람들이 갖는 어두운 절망은 그 그림자에 가려져서 우리 눈에 보이지도 않는 것이 아닐까. 세상은 온통 삐까번쩍한데 그것을 한번에 따라잡기 위한 길은 남을 속여서 그들의 것을 가로채는 길밖에 없다는 생각이 만연하게 된다면? 과소비를 과시함으로써 자신의 고급스러운 취향을 뽐내는 것으로 삶의 의미를 삼는 이들이 많아진다면? 사기는 근절은 커녕 앞으로 점점 유망분야(?)가 되지 않을까. 


킬러 박씨가 킬러일을 완전히 그만두고 가진 미장 기술로 먹고 살며, 공시생이 말단 공무원으로 자신의 일을 충실히 하며 먹고 살고, 택배기사가 갑질없이 규정대로 택배를 의뢰받고 배송하며 먹고 살고, 남 등쳐서 선거에 한번 당선돼서 국민위에 다만 군림하는 정치인은 영원히 정치판을 떠나서 저 알아서 먹고 살며, 직업 윤리 따위 없는 형사는 개과천선하지 않는다면 형사직을 떠나 분노라도 잘 다스리며 다른 일을 찾아 먹고 살면서 모두 그럭저럭 사는 것만으로도 족한 세상이길 꿈꿔본다. 적어도 상대적인 박탈감 또는 빈곤감 따위에 정신건강을 위협받지는 않으면서 사는 세상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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