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초 나는 투표를 했다. 한반도에서 지구 반대편에 사는 나를 비롯 전세계 해외에 있는 이들은 모두 20일 시작해서 25일까지 미리 투표를 하게 돼있다. 사실 갈까 말까 망설였다. 왜냐하면 투표 장소인 영사관까지 가까운 거리가 아닌데다가 이번 주 내내 밤근무를 하는 일정이기 때문에.
사실 하루 휴가를 낼 생각이었었는데 이번 달에 아파서 3일을 이미 쉬었기 때문에 그냥 밤새워 일하고 바로 먼 길을 다녀와야 했다. 이른 아침 퇴근하는데 날씨가 좋아서 바로 가는 걸로 결정했다. 왜 투표날 날씨가 투표율에 영향을 주는지 확실히 알게됐다.
살아오면서 투표를 많이 해왔지만 이번은 느낌이 사뭇 달랐다. 내 한 표가 그저 표도 안나는 표가 아니라 티끌로서 태산에 이르도록 하리라는 비장함같은 느낌이랄까. 투표장 바깥으로 나오니 봄햇살이 눈부셨고 아주 오래전 유행어가 떠올랐다. '자~알~ 돼야 할텐데...'
피곤하긴 했지만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 초록이 만발한 공원을 찾아 주전부리로 점심을 먹으며 햇살을 만끽하고는 마음 가벼이 집에 돌아왔다. 저녁에 한국에 계신 아버지와 카톡으로 대화를 나누는데 투표를 하고왔다고 하니 잘했다며 '잘 했겠지?' 하시길래 아...네..뭐...잘 했죠.
아버지와 오빠가 나누는 선거이야기를 구경하는데 좀 뭔가 불편했다. 음... 내가 행사하고온 한 표와는 방향이 달랐다. 하지만 한마디도 끼어들 여지는 없었다. 나는 이른바 출가외인. 딸이라서 출가외인이 아니고 나라밖에 나가사는 처지에 이렇다 저렇다 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게 느껴졌다. 주어진 권리를 당당히 행사할 수는 있으나 목청높여 주장하기는 찔금 위축된 무엇. 더우기 가족간에 정치 논쟁은 명절 밥상을 뒤엎게 만드는 민감한 사안이지 않은가.
난 출가외인의 심정으로 다소곳하게(?), 날씨가 아니라면 버려질 수도 있었던 한 표를 살려낸 것으로 할 일을 다했다고 봐야한다. 이제 본토의 동포들에게 뒷일을 부탁하며 나는 지켜보련다. 과연 선거를 시작으로 두고두고 '사필귀정'은 역시 세상사에 진리임을 확인하게 될 것인가 몹시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