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텐션'을 높이면

by 오리진

언어란 고정불변의 것이 아님은 나도 잘 알고있다. 그런데 어떤 것이든 변화가 자연스럽지 않거나 이해가 잘 되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냥 투덜이 스머프가 되는 수밖에 없을까. 해외에 멀찍이 떨어져 살면서 한국어의 본고장에서 생겨나는 현상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할 수 없으렷다.


그래서 마뜩찮지만 줄임말도 그냥 받아들이고 재치있게 생겨난 것이라면 신조어에 대해서도 군말없이 배우고 익혀서 원활한 소통에 지장없도록 할 용의가 있다. 그런데 원래 한국어도 아닌 것에 대해서 뜻이 확장되어서, 그것도 반대로, 일상적으로 쓰이는 것에 대해서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언젠가부터 '텐션'이라는 말을 종종 듣게 되었다. 긴장이나 갈등 같은 말을 뜻하는 단어인줄 알았는데 가만보니 좋은 뜻으로 쓰이는 것을 보고 나는 헷갈렸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기분이 좋아서 흥분된 상태나 분위기가 활기찰 때' 사용하는 말이라고 나와있었다. 뿐만 아니라 거기서 파생된 말도 있었다. 하이텐션은 에너지가 가득한 상태. 억지텐션은 주변 사람들을 의식해 억지로 분위기를 맞추거나 흥을 돋우려 할 때 사용하는 말이며, 찐텐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기쁨이나 열정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말이라고 억지학습했다.


그렇게 사용되고 있는줄은 알게 되었지만 저항감이 든다. 왜 그래야 하나. 우리말이 변형되거나 뜻이 확장되는 것은 배경과 흐름이 있는 가운데 있을 수 있겠는데 왜 외국어까지 끌어와서 다르게 사용하는지 나로선 이해가 가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사용해서 이해하면 그만이지 뭘그리 따지냐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얼마전 대통령 선거 개표방송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저녁부터 시작해서 자정 무렵 바톤을 이어받은 새 진행자가 이렇게 말했다. "늦은 시간이기 때문에 텐션의 강도를 좀 높여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악~~~ 안돼~~~~ 전문 방송인인 당신마저!


이내 탄식과 함께 나는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내가 졌다. 언어에 관해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방송인이 공중파 방송에서 말할 정도면 이미 한국어에 안착한 말인데 나는 혼자서 쓸데없이 고약떤 것임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여전히 나는 그 말을 들으면 불편하다. '텐션'이란 말을 들으면 내 내면에 '텐션'이 느껴진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출가외인'의 한 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