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국내든 해외든 '한 달 살기'란 말이 눈에 많이 띄었다. 이에 빗대어 지난 9월 하순 나의 한국 방문을 이름붙여 보았다. 한국 2주살기. 정한 바 없이 하다보니 그리된 것인데 이번에도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3년 만이었다. 다른 것이 있다면 나의 마음가짐이었다. 아무런 숙제를 가지고 가지 말자. 천천히, 느긋하게 지내다 오자는 것. 늘 오랜만에 찾게 되니 온김에 뭣도 하고 뭣도 하리라 하는 조바심에다가 강박감이 많았던 듯한데 이번에는 정말 그러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 생신에 맞춰 가는 것이니만큼 가족들과 함께 좋은 시간이 되도록 계획하고 준비하는 것외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일정을 바쁘게 하지 않는 것은 물론 다닐 때도 천천히 느긋하게 다니리라. 한국인의 천성 '빨리빨리'의 본토에서는 굳이 다짐까지 할 필요가 내겐 있었다.
나라밖에 나가서 살다가 잠시 고국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것이 좋은 일일까. 추억을 더듬는 것과 새로운 것을 따라잡는 것 중에서. 선택을 하는 문제가 아니라 두가지가 동시에 공존한다고 할 수 있겠다. 어딜가든 '삐까번쩍 코리아'에서 그간 내가 겪지 못한 새로운 것들 속에서 어리버리하게되고, 한편으로 문득문득 실체가 없어진 정서나 기억따위로 문득 추억을 더듬게 되니까 말이다.
물론 그리웠던 얼굴들과의 훈훈한 만남이 있었고, 이번엔 완전히 관광객 모드로 혼자 다닌 시간을 전보다는 많이 가졌다. 한국에 살 때는 관심도 안가졌던 곳인데 왠지 꼭 가보고 싶던 서대문형무소엔 월요일에 가서 헛탕을 쳤고 경복궁의 정문 입구가 달라진 것을 보았다.
외국인 관광객들을 위한 공간이라고만 여겼던 북적거리는 명동거리의 인파속에서 찰옥수수와 어릴적 먹었던 한국식 핫도그를 사먹기도 했다. 그 길끝에 그 유명한 명동 성당을 이제야 '관광객'이 되어 들어가보기도 했다.
한국 최초의 김대건 신부가 고작 25세의 나이에 순교한 사실도 알게되고 김훈 소설 '흑산'에서 묘사된 천주교 박해 사건을 떠올리며 숙연한 감정이 들었다.
세계 그 어느 성당에서도 볼 수 없는 성당 안 모습.
어느 날은 동해의 절경을 끼고 있는 한 절을 찾기도 했다. 이미 가봤다고 여겨(그것도 몇 십년이 지난) 다 아는거라 퉁쳤던 그곳 양양의 낙산사는 전혀 새로운 느낌이었다. 내가 나중에 낙산사를 다녀왔다고 말하면 한결같이 불탔는데 지금은 괜찮은지 궁금해 했다. 찾아보니 20년 전의 일이었다.
앞으로는 동해물, 뒤로는 산
소속은 달라도 자태는 비슷하지 않은가. 고통받는 중생들에 사랑과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내게 한국살기를 말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분야(?)는 바로 주차문제. 정확히 말하면 불법주차인데 내가 한국에 살던 때부터 몇 년 주기로 돌아와 관찰할 때마다 개선되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나는 왜 그러는 것일까. 보통 어쩔 수 없는 문제로 여기고 그냥 그런 채로 살아가는 것 같던데...
그런중에 너무나 놀라운 일상이 된 불법주차의 도로를 걷게 되었다.
'삐까번쩍 코리아'의 핵심부에서 나는 불법주차의 심화된 형태, 이른바 '인도주차'의 충격적인 모습을 목격하게 되었다. 단언컨대 오직 한국에만 존재하는 '이중주차'에 이어 이제는 인도주차라니! 이제껏 나는 '관광객'이었는데 무슨 탐사취재라도 하는 양 열심히 사진을 찍어댔다. 그런데 어쩌다 한두군데가 그런 것이 아님을 보고 깨달았다. 이건 그냥 묵인된 불법이겠구나...
나는 한국에서 계속 살았으면 쌈닭으로 살다가 쥐도새도 모르게 칼맞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일찌감치 '순응'하게 되었거나.
찾아보니 불법주차를 신고하는 앱이 있던데 현장에서 앱을 통해서만 사진을 1분간격으로 두 번 찍어서 하도록 되어있었다. 그런데 내 스마트폰에 데이타가 없어서 하지 못했는데 그렇게 신고를 하면 당국에서 어떤 조치를 취하기는 하는지 궁금하다.
베트남에서 살다가 나와 같은 시기에 한국을 방문한 친척을 만났는데, 베트남에 사는게 좋다길래 어떤점이 좋으냐고 물으니 길을 무단으로 건너도 되는게 좋다고 말해서 함께 웃었다.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떤 사람들은 위와같은 주차를 '유도리'있게 할 수 있어서 좋다고 할지도 모르겠다고.
한국을 방문해서 친구나 지인들을 만날 때면 항상 받는 질문이 있다. 계속 캐나다에 살거냐고. 돌아오고 싶은 생각은 없냐고. 그동안 사느라고 바빠서 생각조차 안해봤는데,... 글쎄, 나는 프라이드 치킨에 열광하는 사람도 아니고, 새벽배송에 썩 환호하는 사람도 아니어서... 그보담 도로에서 보행자를 배려하는 운전문화나 불법주차 문제가 더 중요한 사람이어서... 현재로서는 음...말하기 어려운 문제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