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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거슬리는 요즘 한국어

by 오리진

지난 9월 한국에 다녀왔다. 3년만에 방문한 것이었는데, 이질적으로 확 느껴지는 것이 사람들의 언어습관. 해외에 살다보면 그때 그때 유행하는 신조어는 말할 것도 없고 내 경우 뭐든 줄여 말하는 것에 익숙할 수 없다. 그런데 이번에 느낀 현상은 어휘가 아니라 문장을 말할 때 끝부분에 관한 것.

의문형의 경우엔 ~ㄹ까요? 명령형의 경우는 '~ㄹ게요'.


듣자마자, 응? 싶었지만 의사소통이 안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들을 때마다 이상하다. 그리고 점점 거의 모두가 그렇게 말하는 것 같을때 거슬렸다. 좀 더 겪어보니 대개 손님을 상대하는 곳에서 그렇게 말하는 것 같다.


들을 때마다 자연스럽지 않아 한번 곱씹어 보았다. 잘못된 부분이 있어서 거슬리는 것인지 그냥 변형된 문장 패턴일 뿐인데 익숙하지 않아서 편안하지 않은 것인지. 문제가 없는 것 같다가 한편으론 이상한게 맞는 것 같다가 알기 어려웠다.


소비자가 상점에 가서 자신이 찾는 물건에 대해 물을 때 'OOO가 있을까요?' 하면 틀린 것일까. 'OOO가 있습니까?'또는 'OOO 있나(어)요?'로 말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달리 말한 것뿐인가.

전에도 이런 식으로 말하는 상황이 있긴 했다. 자신이 특수하게 처해진 상황을 설명을 하고 이런 경우 내가 이러이러해야 하는 데 그럴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하는 식으로 문의할 때. 그런데 그럴 때도 ...방법이 있습니까? 있나(어)요? 할 수도 있지 않은가. 딱히 틀린 것 같지는 않지만 어쩐지 직접적이지 않고 허공에 대고 이야기하는 느낌이랄까.


이런 경우도 있었다. '고객님, 신분증이 있으실까요?' 이건, '신분증 보여주세요.'일텐데 신분증이 있느냐고 묻는다. 있기만 한 것을 확인하면 되는 경우인가. 이 질문을 들은 사람은 거의가 맥락을 이해해서 '있는데, 왜요? 하고 되묻지 않고 신분증을 내놓을 것이다. 이런 경우는 매우 예의를 차리는 화법인가. 신분증 확인해야겠으니 줘라 하듯이 하면 너무 무례할까봐 '혹시...신분증이 있으실까요? 그것을 제게 보여주실 수 있을까요?'가 의도이리라. 그렇다면 이것은 혹시 영어의 영향일까. 'Can you ~~~''Would you~~~'하는 뉘앙스로?


'이러이러하는데 괜찮으실까요?'도 많이 들을 수 있다. 이 경우도 문제는 없어 보인다. 그런데 듣자마자 '또 이러네'가 떠오른다. 괜찮냐에 존칭은 붙일 수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괜찮으세요? 하고 물어보는 것보다는 살짝 옆으로 비껴나서 묻는 느낌?


3년 전에는 '드시고 가세이여?'로 하던 것이 이번에는 '드시고 가실까여?'로 싹 바뀌어 있었다. 가실거예요? 하면 바로 상대에게 묻는 느낌인데, 드시고 가실까요? 하면 배우가 무대에서 상대역이 아니라 관객들으라고 독백처럼 말하는 느낌이 든다.


생각해보니 내가 처음 들은 건 아니었다. 한때 즐겨 챙겨보았던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심리상담가가 출연자와 상담을 하는 장면이었는데, 질문하는 모든 문장이 이렇게 끝나는 것을 보고 매우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를테면, '그때 마음이 어땠는지 기억이 나실까요?' '그때 상황으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행동하고 싶으실까요?' 등등.


또하나 대세가 된 듯한 언어습관중 다른 하나는 '~실게요.' 이것을 처음 들었을 때, 오래전 아이가 유치원에 다닐 때, 교사들이 주로 하던 것이 떠올랐다. 이때 주어는 교사 자신으로 하는 상황에서. 선생님이 해주실게요~ 하는 식으로. 이는 존대어를 배우기도 해야 하는 어린아이들을 상대하는 상황에서 말하는 교사가 자신을 높이는 특수상황으로 이해해야 마땅하다.


이것은 문법적으로도 이상해보이는 경우다. '이쪽으로 오세요' 하면 될 것을 '이쪽으로 오실게요.' 물론 그 누구도 무슨 말인지 몰라서 오지 않고 그대로 서 있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지만 그것은 이상하다. 소위 '명령형'의 문장인데 정말 '명령'처럼 들리면 큰일나기 때문에 그것을 방지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일까.


이런 화법은 문법에는 아무 하자가 없이 다만 조심스러움, 겸손, 나를 낮춤 등의 사회적 제스처가 스민 언어습관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너무 직접적으로 요구하거나 묻거나 하면 실례될까 심하게 우려하는 태도 같은 것이 반영된.


존칭을 붙이는 것은 너무나 보편적이 되었다. 사물일지라도 상대의 영역안에 있는 것에 존칭을 붙이고 사람이라면 바로 그 대상이 그 자리에 있지 않아도 높임말을 붙이는 것이 꼭 타인을 존중하는 태도가 될까. 이를테면, 다른 사람에게 제3의 장소에 있었던 사람을 언급하면서도 '분'을 붙이는 경우를 흔하게 들을 수 있다. '내가 거기에서 외국분을 봤는데...' 하는 식으로.


유투브에서 본 한 방송에서 패널로 나온 출연자가 방청석의 누군가를 지칭하면서 '따님분'이라고 하는 것을 보고 느낌표 막대기가 내 귀를 살짝 때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아...


나는 국어문법을 잘 모르면서, 아니 특별히 의식하지 않으면서도 한국어를 모국어로 곤란함 없이 사용하는 원어민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을 느낄 수는 있지만 특별히 근거를 댈 수는 없다. 흔히 언어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언중이 많이 사용하면서 변하는 것이라고 한다. 또한 문법적으로 오류 하나 없이 완전무결하게 사용되어야만 한다는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다. 내 어설픈 추정대로 외국어의 영향으로 인한 것이라 해도 '오염'이라기 보다 아마도 확장으로 봐야 하는 일이겠지? 또 어느 시절엔가는 또다른 말하는 방식이 생겨날 것이다. 그럴 때마다 너무 예민하게 굴지 않아야 한다고 스스로를 달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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