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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진 Feb 05. 2022

'차이니즈 뉴 이어' 퇴치 투쟁 3

(2편에서 계속)


한밤중에 장장의 댓글을 올리고 나서 잠자리에 들었다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앱에 접속했다. 직장안에는 나말고도 많은 아시안들이 일하고 있기에 나는 그들의 생각도 궁금하던터. 그들도 나와 같은 심정이었는지 내 밑으로 줄줄이 "옳소~!'의 댓글이 줄줄이 이어졌다. 마치 소리없는 평화시위처럼. 


그 안에는 타 아시안들이 올린 응원의 메시지도 있었는데, 그동안 아시안의 모습을 보면 그저 무심코 중국인이겠거니 짐작한적 많았고 '차이니즈 뉴 이어'란 말에도 별 생각이 없었으며 아시안들의 문화는 모두 비슷하겠거니 여기고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반성하게 되었다는 제법 감동적인 댓글도 있었다. 이어 원글을 쓴 사람의 진심어린 사과의 글을 대했을 때, 내 심장은 더이상 심하게 뛰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위와 같이 되었으면 얼마나 기뻤을까. '옳소'의 댓글? 썰렁하게 하트 두 개가 전부였다. 아시안이 하나, 비 아시안이 하나. 원글에도 그것을 반박하는 내 댓글에도 똑같이 부여한 어떤 머저리의 너풀대는 박수 이모콘이 하나. 다들 아무렇지 않은데 나만 유별난건가? 그게 뭐 대수라고? 스스로 머쓱했다. 실망한채 다른 일을 하다가 몇 시간이 지나 다시한번 접속해보았다. 어? 왜 내 댓글이 안보이지? 내가 스마트폰이니 앱이니 이런 것에 익숙치 않아 그런가 하고 출근준비하느라 밀쳐두었다가 나가기 직전에 다시한번 확인하니 없는게 맞았다! 아예 댓글 쓰는 창이 닫혀 있었다. 이건 무슨 경우지? 


출근후 잠시 잊은채 일에 몰두하고 있던중 원글 쓴 작자가 내게 다가왔다. 무언가가 프린트된 종이 한 장을 내밀며 읽어보라고, 그리고 내일 executive director 와 함께 미팅을 갖자고. 내가 내 댓글이 아직 있는거냐고 물었더니 없단다. 그리고 나서 잠시후 이번에는 그 executive director가 왔다. 내일 일을 마치고 만나서 이야기를 하자고. 내 댓글을 누가, 왜 지운거냐니까 누가 했는지 모른단다. 그럴 수도 있나? 나는 그때 다시 심장이 뛰고 얼굴에 열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집에 와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건가 생각이 많아 결국 밤을 꼬박 새웠다. 내 생각엔 원글을 쓴 작자가 지운 것 같은데 곤란해서 그런거라면 자기의 원글도 함께 날릴 일이지 그 엉터리는 놔둔채 내 댓글만 삭제하다니. 전의가 점점 불타올랐다. 혈압상승과 함께. 


다음날 새벽에 일을 하러가야 했기에 잠을 청하려 애썼지만 도저히 잠은 오지않아 포기하고 혈압이 너무 높아 마음을 가라앉히려 새벽 3시에 108배를 했다. '잘 싸우겠습니다.'를 반복해서 뇌이며... 그들의 잘못된 것에 끝까지 당당한 것뿐 아니라 필요이상의 자기의심과 자기검열과도 싸우겠노라는 다짐이었다. 


출근 후 한참 일을 하다가 브레이크 시간에 디렉터를 찾아갔다. 나는 이따가 (원글 쓴) 그를 만나러 오지 않을 것이라고. 무엇때문에 이야기를 해야하는지, 누구를 위해 이야기를 해야하는지 모르겠다고. 댓글을 누가 지웠는지 진짜 모르냐고. 나는 그 사람이 한줄 안다고. 그랬더니 끝까지 그사람은 아니란다. 논란이 있던 것도 아니고, 온라인상에서 왈가왈부 싸움이 벌어진 것도 아니고 무례한 것도 아니고 욕설을 한 것도 아닌데 왜 지웠는지. 나는 그 사람을 만날 이유가 없고 댓글을 지운 사람은 꼭 알아야겠으니 알아내면 꼭 알려달라. 그리고 댓글을 당장 복구해달라 요구했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댓글이 다시 그자리에 있었다. 이 사람들 대체 뭔가. 누가 했는지 알아내겠다면서 빨리도 알아냈단 말인가. 그렇게 제깍 복구가 될 수가 있나. 하지만 어쨌거나 작은 승리! 

처음엔 그런줄 알았다. 요구사항이 관철된줄 알았다. 그러나 곧이어 숨어있는 자와 거짓말하는 자를 내가 상대하고 있구나. 이게 그럴만한 일이라도 되나. 


혈압은 계속 높은 가운데 구글에 검색해보니 조금만 더 높으면 풍맞을 위험수위라고 나온다. 기가막혀. 이쯤되니 내가 그놈의 '차이니즈 뉴 이어'가지고 오버하나 싶어진다. 이젠 그보다도 그들의 비겁함과 거짓말이 더 큰 문제가 되었지만. 


여전히 온라인은 조용하고 일터의 분위기도 그것과는 너무나 무관하게 평상시와 같다. 그 많은 아시안들은 안녕하기만 한데 내가 그것에 빈정상할 이유또한 없겠지. 혼자 공연히 생쑈를 한 느낌? 박노자 선생이 늘 주장하는 '연대'의 힘을 절실히 체험하는 계기였다. 연대는 커녕 아무런 공감이나 동조없이 계란으로 바위치기만도 못한 일을 벌였나 싶은 자괴감. 


문제의 음력 새 해의 설날은 고혈압속에 지나가고 세상은 아무일이 없는듯한데 나만 너무 외롭고 이 북풍한설에 가슴이 시린 느낌이다.  

'차이니즈 뉴 이어' 퇴치 투쟁 보고를 하자면, 음...승리도 패배도 아니지만 내상을 입었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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