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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진 Jul 08. 2022

소변줄이냐 정신줄이냐

초짜널스의 소변줄 교체 첫경험 

오늘의 아침반 근무는 유독 긴장이 되었다. 새벽에 눈을 딱 뜨자마자 오늘 쉬프트중 해야할 중요한 일이 생각나서. 소변줄 교체. 3개월마다 하게 되어있는 건데 그동안 내가 일할 때 걸리질 않아서 실전에선 한번도 해본적이 없었다. 학교다닐 때 전신 혹은 특정부위만 있는 부분 마네킹 놓고서만 실습하고 연습하고  또 선생님 앞에서 시험도 봤었던게 전부다. 


사실 며칠 전이 원래 그 날인데 무지 부담이 되었다. 어떻게든 피하고 싶어 차팅된 내용을 찾아보니 이전 교체 날짜가 3개월에서 아직 며칠이 남아 있길래 내가 일하게 되어있는 오늘로 미루어 놓았다. 그동안 나 아닌 누군가 할 사람이 있길 바라며. 한편 마음 한 켠에는 언제까지 피하기만 할건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운좋게 잘 피해가기만 한다면 연차가 많이 쌓였는데도 뭘 제대로 해본적 없는 허당 널스는 절대 되고 싶지 않기도 했다. 


그런데 쉬는 날이었던 어제는 까맣게 잊고 있다 자고나서야 떠오른거다. 오랜만에 학교다닐 때 공부했던 두꺼운 학교 때 텍스트북을 펼쳤는데, 아~ 그동안 눈이 침침해져설랑 글씨가 흐릿해서 잘 읽히지가 않는다! 유투브에도 튜토리얼 클립이 많겠지만 출근준비만으로도 빠듯한 조용한 그 시간에 차분히 보고 앉았을 처지가 아니라 구글에 나오는 간략한 설명을 쓱 훑어보고는 나가야 했다. 


요즘 실제 코로나 양성반응이 아니어도 조금의 증상만으로도 일할 수 없기 때문에 거의 매 쉬프트마다 인원이 부족한 실정이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오늘도 float staff (정해진 곳 없이 여기저기 다니며 필요한 일을 돕는 인력) 가 없었다. 나 말고는 오늘의 소변줄 과제를 해결할 사람이 없다는 자명한 사실앞에 나는 자못 비장해졌다. 소변줄을 붙들고 정신줄을 놓아버릴 수는 없다! 


이때 널스 아닌 다른 스태프가 거들어 주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실전에서 처음 해보는거 하면서 버벅대는거 보이기 싫다는 초짜 널스의 어줍잖은 자격지심. 좋아, 혼자 해보자. 준비물을 챙기면서도 나는 나 자신을 완전히 믿지 못해서 두 개씩 챙겼다. 그림 그리다 망쳤는데 도화지가 하나뿐이면 안되지 않겠느냐는 심정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균이 없는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데 자칫 오염원에 노출되면 아예 쓸 수가 없기 때문에.

소변줄 교체에 필요한 도구들(구글 이미지 캡처)

겁도 났다. 일 벌려 놓고 수습 못하면 어쩌나 싶어서. 줄이 잘 안들어간다고 넣다 뺐다 할 수도 없기 때문에 순서에 맞게 한번에 일을 끝마쳐야 하는 일이다. 난이도에 있어서 댈 바가 아니지만, 나로선 마치 의사가 환자 배 열어놓고 어찌할 바 모르고 수습못하는 상황에 견주어지는 상황이었다. 

잠시 전에 두 명의 스태프가 있다가 일을 마치고 방을 빠져나간뒤 이제 방에는 환자(실제로는 레지던트가 불리워지는)와 내가 단 둘이 남았다. 챙겨온 준비물을 늘어 놓으면서 학교 때 시험보던 생각이 떠올랐다. 침대위의 마네킹, 나, 그리고 당시 그렇게나 곤혹스럽게  느껴졌던 선생님의 시선. 그때 내가 실수를 해도 실제 환자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 아니고 배우는 상황이니 편안하게 하라며 격려하던 선생님의 말이 그때는 다가오지 않았었는데 맞는 말이다 싶었다. 그렇다 나는 마네킹을 해칠 수는 없다. 그 실습과목에서 패스를 못할지언정. 그런데 지금은 누군가를 해롭게도 할 수 있는 상황을 앞에 두고 있는 것이다. 


기존의 소변줄을 죽 빼고 새 소변줄을 집어넣는데 생각외로 잘 들어간다고 느껴졌다. 온 집중을 다해서 조심조심 집어넣다가 다 들어가 그의 방광에 잘 안착되었다고 느끼는 순간 알아차렸다. 지금까지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쪽에서 아무 소리가 없었다는 것을. 어? 괜찮은가? 불편하거나 아프지 않은가? 어머나 내가 생각보다 너무 잘하고 있나봐~ 하하하 어찌저찌 다 끼우고 이제 튜브를 통해 수액을 집어넣을 차례. 이렇게 시원스레 잘 들어갈 수가. 교체하기 전 어제까지만해도 조금 저항이 느껴졌었는데. 


그 방을 나와 카트를 밀고 나오는데 어찌나 홀가분하던지. 몇날며칠 끙끙대던 과제를 제출하고 난 기분이랄까. 그 후에 종종 그의 방 앞을 지나갈 때면 흘깃 살피곤 했다. 뭔가 잘못돼서 통증을 호소하지나 않는지. 그가 평소와 같이 앉아서 '소도쿠'같은 것을 하고있는 모습을 보면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무난했던 그의 특정부위에마저 감사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나중에서야 문득 한 생각이 스쳤다. 그가 날 믿었던건가? 긴장하지 않아서 줄이 잘 들어간건가? 음...증명할 수 없지만 그랬던 거라고 나 혼자서 막연히 느껴졌다. 나를 못미더워 해서 바짝 긴장했으면 잘 안됐을거라는. 초짜 널스를 믿고 맡긴채 편안히 있어준 고마운 존. 


내가 간호사로 일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하고 또 좋아하는 '치료적 관계(therapeutic relationship)' 가 형성되었다고 느끼는 지점이었다. 신뢰와 존중을 주고받는 관계가 바탕이 될 때, 널싱 홈(nursing home)에서의 그들 말년의 삶의 질이 유지되는 한편, 나또한 일하는 사람으로서 효능감을 가질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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