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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진 Aug 04. 2022

초짜널스의 제법 선방한 하루

가수 장사익이 부른 '삼식이'란 노래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그에 공감하는 때를 보내본 적이 있는가. 


소낙비는 내리구요~

업은 애기 보채구요~

허리띠는 풀렸구요~

광우리는 이었구요~

소코뱅이 놓치구요~

논의 둑은 터지구요~

치마폭은 밟히구요~

시어머니 부르구요~

똥오줌은 마렵구요~


나는 오늘 노래 '삼식이' 같은 하루를 보낸 것 같다. 

8시간 근무에 초과근무 1시간, 도합 꼬박 아홉시간동안 쉬는 시간이 단 10분을 못넘겼다면? 피넛버터 바른 맨 식빵 1장과 작은 고구마 한 개 먹는 동안만큼 앉아 있다가 일어난게 전부라면? 가지러 갈 시간이 없어 그 흔한 커피나 물도 없이? 


새벽 여섯시, 간단히 그 전 24시간 동안 있었던 일들을 한 쉬프트에서 함께 일하는 스태프들과 공유하는 미팅 시간을 갖고 나서,  나의 친애하는 서른 여 '님'들이 간밤에 안녕하옵신지 살피는 라운딩을 했다. 그 때 '숨진 채 발견'된 한 님이 있었다. 시간은 6시 반. 전에도 한번 그런 적이 있었는데 딱 그 시간이다. 100년을 꽉 채운 생애 끝에 전날부터 의식이 없어 모든 약이 중단된채 오로지 진통제만 남아있는 터였다. 차팅에는 새벽 4시 반에 진통제 주사맞은 것으로 되어 있었으니 내가 발견하기 까지 두 시간 사이에 그의 삶은 멈춘 것이었다. 아무도 모를 그 순간이 만일 여섯 시 이전이었을 때 좀 더 일찍 발견되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순간 스쳤다면 너무 비정한가. 


얼핏 보아 얼굴빛이 다르고 호흡이 없는 것 외에도 정확히 심장박동이 없음이 체크된 후 사망이 선고되었다. 그때부터 할 일이 줄줄이다. 우선 알려야 할 사람이 많다. 가족, 담당의사, 장례식장, 약국, 산소 공급처 그리고 널싱 책임자까지. 그리고 팔에 있던 주사 포트와 코에 연결한 산소줄 제거, 전에 있던 의료기관에서 손목에 채워진 이름 팔찌도 그대로 있다가 제거되었다. 죽음에 가까워가는 몸을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해주고자 침대 머리와 다리 부분을 조금 높여 두었던 침대를 평평하게 하고 살이 포개지거나 뼈가 배겨 불편하지 않도록 여기저기 고여두었던 베개를 빼내고 주검을 반듯이 정돈했다. 


그 와중에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손톱. 그 '님'은 널싱홈에 들어온지 1주일도 안된 상태였는데 손톱 상태가 청결하지 못했었다. 단지 길기만 한 것도 아니고 매끈하지 않았다. 할 일 많은중에 나는 그게 왜 그토록 마음에 걸렸는지 모를 일이다. 마치 그 손톱 하나가 주검의 존엄을 해치는 것만 같았다. 아무도 없는 방에서 내가 한 일은 바로 손톱깍기. 산 자가 이제 막 삶으로부터 이탈한 자의 손톱을 깍는 소음은 마치 그의 삶에 마지막 말줄임표를 찍는 느낌이었다. 아직 온기가 남아 있지만 생명이 사라져 더는 자라지 않을 손톱을 다듬노라니 조금 으스스한 느낌이 들었다. 


장례식장에서 와서 주검을 운반해 나갈 때 스태프들이 보통 운구차까지 따라 나가는데 나는 참여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 일이 내 손에서 떠나자마자 나는 며칠 전 입소해서 격리중인 한 '님'과 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재입소한 후 격리중인 다른 한 '님'의 코로나 검사를 해야했기 때문에. 


한 님은 가슴에 통증이 있어서 울먹거린다고 연락을 받았는데 가서보면 통증이 사라졌다고 했다. 다시 돌아와 다른 일을 하고 있으니 또 가슴 통증을 호소하는 벨이 울려댔고 가보면 그 사이 통증이 사라졌다. 그러길 몇 차례. 통증이 반복되고 있으니 바이탈을 체크해야 했다. 


그 사이 누군가는 대변을 보아 엉덩이 부위의 욕창이 오염돼 드레싱을 갈아야 했고, 전날 오더받은 누군가의 소변채취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어진 점심 무렵의 투약 시간엔 당뇨병이 있는 한 '님'의 현저하게 낮은 혈당이 체크되었다. 뭔가 예기치 않은 특별한 이벤트가 있었다면 나머지는 평범하게 흘러가주면 좋으련만. 당분을 섭취하게 한 후 계속 신경쓰며 주기적으로 자주 체크한 끝에 혈당이 안정범위에 들지 않아 결국은 의사에게 연락해 오더를 받아야 했다. 


이게 다 코로나 이후 현장에 인력이 부족해 나홀로 커버할 수밖에 없는 탓이다.  

어찌어찌하여 일이 마무리되고 끝으로 차팅을 하는 시간엔  집중력이 뚝뚝 떨어지는게 느껴지는 가운데 빨리 집에 가고 싶은 생각밖에 안들었다. 


집에 돌아와 냉장고에 있는 아이스크림이 격하게 반갑고, 진하게 내린 커피에 설탕과 우유를 듬뿍 넣은 달달한 커피가 간절하게 땡긴 이유는 너무나 당연했으리라.  


이런 저런 일이 한꺼번에 몰린 쉬프트를 그럭저럭 치명적인 사고없이 마친 것만으로도 선방한 하루를 보냈다고 안도하던중, 살짝 '뭐 놓친 게 있으면 어쩌지?'하는 생각이 스쳤다면 이 일은 세상 못해먹을 일이 되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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