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에게 '다정함'은 미덕일까. 환자나 널싱 홈 등의 거주인(레지던트)에겐 득이 될지도 모르고 간호사 본인에게는 독이 될지도 모른다. 나는 내가 간호사로서 다정하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했었다. 내가 일하는 널싱 홈에 다른 직종의 한국인 스테프가 있는데 일하는 스케줄이 겹쳐서 한 쉬프트에서 만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서로 바쁘게 일하며 스쳐지나던중 짧은 대화를 나누곤 하는데 어느날 그이는 나 스스로 생각도 안해본 이야기를 해줬다. 나로선 다른 사람들이 어떤지 알 길이 없는데, 그이가 여러 널스들을 두루 겪어본 후 나에 대한 일종의 평가는 '다정함'이었던 것.
"내가 다정하다구요? 그 정도는 뭐... 다들 그렇지 않나요?"
"안 그래요. 자기 할 일은 열심히 하겠지만 누구나 그런건 아니에요"
음, 내가 그런가. 그래서 나는 항상 바쁜거였나. 노동하는 자의 권리이건만 쉬는 시간을 챙기기 어려운게 다 그 다정함 때문일 수 있다니. 내가 보기엔 사소해보여도 그들에겐 중요한 것일 수 있다고 여겨 최대한 성의있게 'respect'하는데에 마음을 쓰노라면 나는 언제나 시간에 쫓기고 동시에 지쳐갔다. 내가 보이는 태도에 따라 그들 자신이 존엄한 존재로서 존중받는다고 느끼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늙고 병든' 생애 끝무렵 삶의 질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에. 내가 좋아하는 치료적 관계(theraputic relationship)를 형성하는데에 필수인 것은 물론이고.
그런데 일을 하러 갈때면 내 내면에는 갖가지 부정적인 생각들이 피어오르고 부쩍 신경이 날카롭고 표출할 수 없는 짜증이 안으로 쌓여가는 나를 느끼던 중이었다. 이름하여 번아웃 증후군. 그이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확연히 알아졌다. 아, 그동안 내가 무던히 감정노동을 해왔다는 것을.
'다정도 병인 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라는 옛 시조의 글귀가 떠오르면서 나는 나의 '다정함'을 두고 딜레마에 빠졌다. 이 노릇을 어찌하면 좋을꼬. 나보다 연차가 훨씬 많은 간호사들은 헌신적으로 환자를 대하면서도 노련하게 적절히 조절하여 분리할 수 있을까.
그러다가 문득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다정함 총량의 법칙'. 그날 하루치의 다정함을 설정한 후 그 양이나 강도 및 농도를 안배하는 거다. 급한대로 과도하게 뽑아 쓰다가 끝내 텅빈 무력감에 이르지 않도록. 그렇게되면 차별대우는 불가피한 일이 될까. 오늘은 다른 누군가에게 다정함을 다 써버려서 당신에게는 지금 국물도 없음을 양해바랍니다 하듯 싹 안면 바꾸는 일이 가능할까. 물론 형평의 원칙에 따라 골고루 돌아가면서. 그렇게되면 나는 누군가에게 어느날은 다정한데 어느날은 냉정한 변덕쟁이 널스가 되는건 아닐까.
속으로 골병들어가는 다정한 널스가 될 것인가 냉정과 다정을 오가는 변덕쟁이 널스가 될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