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된 '바가지 요금'?
이번 여름 4년만에 한국을 방문했다. 3주가량 머물다 그날은 다시 캐나다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올 때보다 짐이 많아진데다 시간이 촉박해서 원래 계획이었던 공항버스를 타지 못하고 할 수 없이 집 앞으로 택시를 부를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평소 필요할 때면 성남시 푸른콜 택시를 종종 이용하시기 때문에 핸드폰에 번호를 가지고 계셨기에 대신 택시를 불러주셔서 아이 둘과 나는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지금은 어엿한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고 하지만, 내가 나고 자라는 내내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개발도상국'에 속해 있었다. 간혹 국제행사를 치를 때면 택시 얘기가 빠짐없이 등장하곤 했던 기억이 있다. 그중 가장 으뜸인 '86 아시안 게임'과 '88 올림픽'을 앞두고는 마치 행사의 성공 여부가 택시기사에 달리기라도 한 것처럼 신문지상에서 택시기사의 외국어 의사소통 능력을 강조하는 기사를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밖에 당시 큰 국제행사를 치르는 입장에서 손꼽히는 국가의 이미지를 실추시킬 우려가 있는 고질적인 행위는 이른바 '바가지 요금'. 외국인 관광객에게 주로 행해지던 그 '바가지 요금'은 그 후 완전히 개선이 되어 먼 옛날 이야기가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결코 외국인 손님의 입장이 될 일이 없기에 그 흔한 바가지 요금이나 그들의 외국어 의사소통 능력이 어떻든 나와는 전혀 무관한 이야기일뿐이다. 다만 언제부터인가 내가 가진 택시기사에 대한 인상은 두가지. 밤늦은 시간에 타게 되면 혹시라도 '나쁜 아저씨'로 돌변할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는 것과 말하기를 좋아한다는 것. 하루종일 다양한 승객들과의 대화를 통해서인지는 몰라도 정치를 비롯하여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에 해박하다는 것 정도다.
트렁크에 짐을 실은후 우리 일행은 뒷자석에 나란히 앉아 별말없이 조용히 가고 있었다. 차안에 켜져 있는 라디오에서 정치 뉴스가 나오고 있었는데 그는 택시기사로서의 예의 해박한 정치 평론 및 시류의 분석을 하기 시작했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듣기를 한참 하던중 나는 의아했다. 그는 우리중 누구에게 영양가 없는 '썰'을 풀어내고 있는 것인지. 왜냐하면 그는 완전한 반말을 구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왜 있지않은가. 뚜렷이 존대나 하대는 아니면서도 '짧은' 말을 적절히 섞어서 다소 애매하지만 잘하면 친근하고도 자연스럽게 들릴 수도 있는 정도의 반말. 그러나 그 기사의 문장과 어투는 완벽한 반말이었다. 그 기사는 설마 그런 반말을 내게 하는 것은 아닐테고 갓 스물을 넘긴 나이라 해도 명백히 성인인데 처음 본 사람으로부터 그런 말투를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하는건가. 슬슬 불쾌감이 올라갈 무렵 차가 공항에 도착했다.
요금을 묻는 내게 그는 팔만칠천백원을 불렀다. 3주전 입국할 때 거꾸로 탔던 택시요금보다 월등히 많다고 느꼈고 그것을 표현했더니 통행료 포함해서 그렇다고 했다. 운전석 바로 뒷자석에 앉아 있던 나는 미터기를 보지않은채 만원권, 오천원, 천원권으로 요금을 챙겨서 주었다. 기사가 아이들에게 캐나다에 갔다가 언제 돌아오느냐고 묻고 아이들은 집에 가는거라고 답하는 말을 들으며 나는 끝으로 차에서 내렸다.
아침부터 서두르느라 제대로 먹은 것이 없어 비행기에 타기 전에 요기삼아 만두를 사먹고 막 일어나는데 아버지가 전화를 하셨다. 기사로부터 전화가 오기를, 오만원권대신 오천원을 받았다면서 덜받은 사만오천원을 아버지에게 달라고 했다고. 나는 기억을 더듬어 착오가 없었다고 확신했다. 지난 방문때인 4년 전에 비해서 오만원권이 상당히 보편화되었다고 느끼며 눈여겨 보았던터라 내가 오만원권과 오천원권을 혼동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아, 이것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바가지 요금이 진화를 했구나. 순간 25년 전 소싯적에 인도 여행할 때의 일이 떠올랐다. 그곳 택시기사가 했던 방법과 어쩜 그리 똑같은지. 현지 화폐에 익숙하지 않는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전형적인 수법이라 했는데, 25년이 지난 내나라에서 외국인도 아닌 입장으로 똑같은 수법의 꼼수를 접하니 입맛이 쓰디썼다.
소일삼아 아동지킴이 활동을 하고 계시는 아버지는 동네 지구대로 기사를 오라고 했고 그곳에 근무하는 경찰이 이야기를 듣고 조서를 쓰겠냐고 하자 소란을 피워 죄송하다며 그냥 갔다고 들었다. 캐나다에 도착한후 기사에게 전화를 걸어 그 일을 따져묻자 그는 도리어 내게 양심을 지키고 살라고 말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미터기는 70800원이 나왔고 통행요금을 합하면 총 79100원이었는데 왜 나에게는 87100원을 불렀는지. 택시회사에 전화를 걸어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요즘에는' 요금 가지고 그런 행위를 하는 기사는 없다고 했다. 요즘에는...
나는 이번 일을 겪으면서 결심을 하나 하게 되었다. 앞으로 언젠가 고국을 방문할 때는 왠만하면 택시를 타지 말 것. 부득이하게 택시를 타게 되었다면, 기사의 일방적인 정치평론 따위의 일장연설을 초반에 정중히 사양할 것, 미터기를 반드시 확인할 것, 신용카드를 사용할 것. 그리고 '해외동포'임을 드러내지 말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