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영국 여왕이 세상을 떠난 소식이 전해졌다. 아흔 여섯의 나이에.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해외소식란에서나 간혹 접하는 '왕'이니 '여왕'이니 하는 칭호가 낯선데 거기에 더해 그 많은 왕자와 공주라니 그저 동화속 이야기같기만 했다. 영국 왕실 이야기에서 내 관심을 끌었던 것은 두 가지, 다이애나 왕세자비와 언젠가 올림픽에서 승마 선수로 출전했던 앤공주. 어린 내겐 그들은 그저 비현실적인 순정만화속 주인공들이거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의 주인공이었다.
그들에게 아이들이 나고 자라면서 장차 뭐해먹고 살지에 대한 걱정이 있을텐가, 은퇴를 앞두고 노후 걱정이 있을텐가, 집값이 오른다고 집 살 걱정을 할 것인가 대출이자가 오른다고 늘어날 이자 걱정을 할 것인가. 배추값이 비싸졌다고 금치 담가 먹을 걱정을 할 것인가. 그러다가 다이애나 비의 이야기엔 그들도 마음대로 안되는게 있긴 있구나 싶었다. 남편의 마음을 얻지못해 방황하는 부분에선 인간적인 공감을 하기도 했고 젊은 엄마로서 어린 아들들을 남겨두고 세상을 떠났을 때는 괜히 그 아들들의 정신건강마저 염려하는 오지랖을 부리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캐나다에 살고 부터는 그 집구석이 더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왜냐하면 영국 여왕은 캐나다에서도 군주이기 때문에. 널싱 홈(Nursing home)에서 일하는 나는 그 '용안'을 사진으로 가끔 알현할 수 있다. 캐나다에서는 100세를 맞는 노인들이 영국 여왕으로부터 축하 메세지를 받기 때문에.
(사진 출처. Google Lens)
오래 살아 100세 생일을 맞는 영연방 국가들의 노인들에 축하 메세지를 보내던 그는 정작 자신의 100세 생일 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엄마가 왕의 자리에 70년을 있는동안 그 아들은 왕좌에 오르는 일에 야망을 품고 있었을까 궁금하기도 했었는데 결국은 용상에 앉았다. 마침내.
며칠 전 근무중 한 님에게 약을 줄 때, 그는 여왕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슬프냐고 물었더니 대답대신 영국의 새 왕 찰스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는 왕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다고. 자신의 결혼생활과 비슷한데가 있는데, 그의 남편도 이름이 찰스였다고. 순간 당신의 이름이 다이애너가 아닌게 다행이라고 할까 하다가 이것이 농담으로서 적절한지에 대해 확신이 서지않아 입을 다물었다. 그처럼 개인적인 관점에 의해 곱게 보지 않는 시선도 있다는 것을 알게됐다.
내 경우, 아무 이해 관계도 있을리 없고 딴 세상 이야기로 느껴질뿐이지만 싫증은 좀 나던 터였다. 포탈사이트같은데에 보면 왕가 사람들 소식이 참 많은데 그들 '로열 셀러브리티'의 한결같은 표정에 물릴 지경이었던 것. 다이애너비의 장남 부부 모습은 어찌나 얼굴 표정이 똑같은지. 행복해 죽겠는 표정을 대중에 보이는 것이 이들 존재의 소명이자 삶의 본분인걸까 의아할만큼. 나아가 21세기 현재, 이들 존재의 명분은 도대체 무엇인지에까지 내 의문은 확장되었다. 아니 살짝 그런 생각이 들다 말았다는게 맞는 표현이겠지만.
그러다가 이번 영국 여왕의 죽음을 계기로 왕창 쏟아져 나오는 그 집안 소식을 보고있다. 영국 전체가 슬퍼하는 것 같은 모습을 기사에서 접하면서 나는 문득 생각한다. 만약에 사람들 머리속에 '왜 그래야 하지? 어떻게 그러지? 그게 뭐지?' 하면서 오랜 과거부터 존재해온 '왕의 집안' 안에서 대대손손 부와 권력이 주어지고 마치 정신적인 지주와도 같이 존재하는 일에 대해서 그 효용과 가치를 파고든다면, 사진마다 한결같은 저들의 행복해죽겠는 표정은 어떻게 되는걸까. 그리 된다면, 하늘아래 영원한 것은 없다 했거늘 해가 지지않는다는 대영제국의 왕가는 영원할 수 있을까.
이런 나의 망상같은 생각을 실제로 진지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기사에서 보고 알게됐다. 런던에서 여왕의 주검이 지날 때 운집한 추모 인파속에서도 간혹 군주제를 부정하는 뜻을 내걸어 시위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영연방 국가들중에서도 이참에 공화제로 탈바꿈을 꾀하는 나라도 있다는 소식을 보았다.
이곳 캐나다는 영국여왕의 장례식이 치러지는 9월19일을 국가적인 공휴일로 선포했다. 이는 주마다 다른데 법정 공휴일로 정한 주는 학교도 쉬고 관공서도 휴무인데, 내가 사는 주처럼 공휴일로 하지 않기로 한데도 있다. 포탈 사이트에서 임의로 한, 공휴일로 해야 하는지 아닌지에 대한 투표 결과를 보니 공휴일로 해야 맞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영국뿐 아니라 영연방 국가들에서 자주 불리어지던 'God save the queen'의 덕담빨로 여왕은 70년동안 권좌를 지켰을까 . 설마 '퀸'을 '킹'으로 살짝 바꿔 부를 것 같지는 않은데, 이제 앞으로 찰스에겐 어떤 노래가 불리어질지 궁금하다면 내 오지랖은 못말리는 수준이다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