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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진 Sep 16. 2022

'외제차' 타는 사람들

지난 여름, 4년만에 한국을 방문했다. 한국에 왔구나 하고 가장 먼저 실감하게 되는 것은 도로를 메운 차량들.필요한 경우에도 도저히 운전할 생각이 나지 않는 장면이다. 마치 차선 변경이 민폐를 끼치는 일인듯한 한국 특유의 도로교통 문화(?)가 기억나면서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주행하다가 필요해서 차선을 변경하는 일이 왜 '끼어들기'로 불리우며 뒤에서 오는 차의 운전자로 하여금 오기와 괘씸함을 일으키는 행위가 되는 것인지 이제는 납득이 안된다.  나도 전에는 다행히 너그러운 운전자 앞으로 차선을 변경했다면 변경후에 손을 살짝 들어 고마움의 표시를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아무튼 한적한 지방도시가 아니고서는 운전하는 일은 상당히 긴장과 스트레스가 수반되는 일이 틀림없다. 그런가하면 주차공간이 좁게 느껴져 주차하는데에도 부담스럽고 많은 경우 지하주차장이라 곳곳에 있는 노랑검정 칠해진 기둥이 나는 무섭다. 


지하에 촘촘하게 깔려있는 수도권 지역의 대중교통에 나는 충분히 만족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지상에만 올라오면 신경이 곤두섬을 느끼게 된다. 수 년 전에도 신호등이 없는 짧은 횡단보도앞에만 가면 차량의 운전자와 대치한듯 한바탕 치러야 하는 신경전에 언짢았던 적이 많았었다. 보행자가 있을 때 길을 다 건널 때까지 차가 멈추기로 판단하는게 그리 난해한 상황인가? 보행자가 서 있고 길을 건너려는 상황에서 차가 찔금찔금 움직이길래 보행자가 일단 멈출 수밖에 없는 것이었는데 그 틈에 결국은 차량이 먼저 지나가는 것을 보고 나는 적잖이 열받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몇 년이 지난 후, 도로에 선 나는 그 기억이 떠올랐고 보행자로서 피로감을 피할 길이 없음을 금방 알게됐다. 뜨거운 8월 어느날, 딸과 함께 지하철에서 내려 볼일이 있던 곳을 찾아가고 있던중이었고, 뜨거운 햇볕속을 걸어다니느라 갈증이 나서 아이스 커피를 사서 마시고 있었다.  


그런데 수 년이 지난 요즘 상황은 더 나빠진걸까. 이번엔 차량이 눈치를 보며 찔금찔금 움직이는게 아니고 당당하게 바로 앞을 쌩 하고 지나가는 것이었다. 내가 먼저 횡단보도에 진입해서 걸어가고 있었는데! 나보다 몇 걸음 앞서 있었던 딸의 팔을 확 잡아채야 할 만큼. 순간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자 나의 교감신경은 즉각 자극을 받았고 뇌로부터 어떤 명령을 받기 전에 나의 수족은 단독행동을 개시한듯 보였다. 아이스 커피를 다 마시고 나서 버릴 데가 마땅치 않아 들고있던 프라스틱 컵을 차의 뒷꽁무니를 향해 냅다 던졌던 것. 


그런데 우리 앞에서 그리 속도를 내서 지나가던 차는 속도를 줄이는 것처럼 보였다. 차에서 내리려나 보다 하면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경찰서를 가자면 가리라 하며. 무례한 눈빛으로 위아래를 훑으며 대뜸 이런 말을 내게 던질지도 모르지, "아유~ 아줌마, 뭐하는 거예요 지금?" 육두문자를 안날리면 감사할지도 모를 일. 난 재빨리 머리속으로 '입장정리'를 했다. 최근 우회전시 반드시 정차하도록 규정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얼핏 들어 알고있었기에. 횡단보도에 이미 반쯤 진입한 상태였는데? 그 차는 바로 우리 앞을 지나갔는데? 속도도 엄청 빨랐는데? 내 머리속에선 분주히 이런 문장들이 휙휙 지나가는동안 그 차는 그냥 가버렸다. 


관심사가 그닥 아니어서 당시엔 잘 몰랐지만 딸이 본 바로는 포르쉐였다고 했다. 운전자가 세차에 공을 들이는 사람인지 광택이 돋보이는 매끈한 파란색에 새까맣게 선팅을 한 차에게 당한 우리는 더위에 지쳐 상대적으로 처참한 몰골이었으리라. 차가 내빼고 난후 우리는 방금 일어난 일에 흥분하면서도 딸의 '엄마, 나이스~'하는 소리에 함께 낄낄대며 인도를 걸었다. 


그 후 한국에서의 여러 날이 지나면서 점차 내 지각작용에 감지된 게 있었는데 예전보다 소위 '외제차'가 많아졌다는 것. 지난 방문이후 4년이 지나는 도중에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에 접어들었다지... 그때까지 눈여겨 보지 않던 주차장을 훑어보니 정말로 그랬다. 그렇다면 4년 사이에 차를 바꾸거나 차 하나를 수입차로 더 장만한 집들이 엄청 많다는 뜻이 되나. 마치 거국적으로 대대적인 차량 교체 작업이 이루어진 것이나 다름없게 보였다. 그 차들은 하나같이 중후한데다 새까만 선팅으로 무장했기에 운전자는 보이지도 않으니 사람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초월적인 위엄이 있는 존재같게 느껴졌다. 


내가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순간 발끈한 이유도 사람을 상대하고 있지 않다는 느낌때문은 아니었을까. 보행자 대 차량의 대치상황(?)이지만 저쪽 운전자도 사람이라고 인식이 되면 바디 랭귀지로라도 어떻든 이쪽의 의사나 감정을 표현할 수 있겠지만 저쪽은 나를 훤히 보고 있는 상태에서 나는 저쪽의 윤곽조차 보이지 않는 상황이 아닌가 말이다.  


그러다가 우연히 알게됐다. '하차감이 좋다'는 표현을. 나는 구구절절 설명이 필요치 않은채 단박에 이해했다. 그 사회적인 말뜻을. '외제차'가 '하차감'이 좋다면 짙은 선팅은 주행감이 좋다고 해야할까. 보행자가 운전자에게 어떤 메세지를 보내고 싶어도 간단히 차단해버림으로써 무시하기가 더 쉬울테니까. 


국민소득이 높아지고 그 전에 개개인들의 소득이 높아져서 타고 싶은 차를 타는 것은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지금이 '물산 장려 운동'이나 '국산품 애용 운동'을 벌이는 시절이 아니잖은가. 그런데 '하차감'을 이유로 그런 유행이 되는 것은 좀 많이 씁쓸한 노릇이다. 흔히 우스갯 소리로 하곤 했던 말이 떠올랐다. 도로에서 주행중이거나 주차할 때 주변에 고가의 수입차가 있으면 조심하라는 말 말이다. 그것도 '하차감'과 더불어 '외제차'타는 쾌감을 주는 일이 아닐까. 몇 년 사이에 외제차가 그렇게나 많아진 이유를 알아버렸으니 그런 우스갯 소리는 더이상 웃자고 소리가 아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차량에 붙은 가격표에 압도되어 알아서 기는 꽤 남루한 꼴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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