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빼로와 퍼피
11월11일, 한국에선 일명 '빼빼로 데이'라 하여 무슨 발렌타인 데이에 준하는 대접을 받는 날이다.
이건 해도해도 너무 억지스러워 외면하고 싶었지만 아이들 세상에선 이또한 얄궂은 '문화'로 자리잡아 한바탕 호들갑을 떠는 날이어서 장단을 맞춰주자니 영 못마땅하고 속내대로 마구 깍아내리자니 혼자 너무 고지식해 아이들로부터 원성을 사게되는 날.
그러다가 캐나다에 오니 여기선 이 날이 remembrance day라 했다. 뭐 나라마다 다 있기 마련인 그런 날, 우리에게 있어 현충일같은 그런 날이겠거니 했을 뿐 특별한 관심도 뭣도 있을리는 딱히 없었다. 매년 11월11일 이 오면 설쳐대는 빼빼로가 사라졌다는 것에만 후련해하며.
캐나다의 remembrance day의 대상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더불어 한국전쟁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 정도가 내가 아는 전부였는데, 언젠가 한국방문중 전쟁기념관에 갔을 때, 캐나다가 1950년 한국전쟁 당시 UN국중 두번째로 큰 규모의 병력을 파병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당시에 'Thank Canada'하고 잊어버렸다가 해마다 이맘때면 잠시나마 'Thank Veterans'의 마음을 되살리곤 한다,
캐나다의 Remebrance day 의 상징은 poppy다. 11월에 들어서면 이 붉은 꽃을 가슴에 달고다니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여기저기서 나눠주기도 하고 집집마다 우편으로 오기도 한다. 이 꽃이 상징이 된 데에는 한 이야기가 있다.
이 시는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의사 John McCrae (November 30, 1872 – January 28, 1918)가 쓴 것인데, 전사한 동료의 장례식에서 영감을 받아 썼다고 한다. 이 꽃들은 치열한 전쟁터를 뒤덮어 붉게 만개했고 이것은 전쟁터에 흩뿌려진 피를 상징해왔다고 한다.
캐나다는 참전용사들을 상당히 예우하는 분위기다. 이들의 희생덕에 오늘날 후손이 있다는 의식.
'lest we forget'.
'Those who sacrificed their lives.
Remember them'
'Let us remember'
'We will remember them'
교회나 학교, 상점, 버스에까지
저런 글귀들을 내걸어
remembrance day의 의미를 기리고 있다.
전날밤엔 vigil이라해서 참전기념비앞에서 밤새도록 불을 밝히고 조를 짜서 돌아가며 지키는 행사를 비롯해서 당일엔 퍼레이드와 기념식 등 많은 행사를 한다. 각 지역마다 Cadet(정부와 국방부에 의해 지원되는 청소년 프로그램으로 육,해,공 3군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동네를 돌면서 관공서 등을 지날때 국기를 향해 일동이 거수경례를 하면서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한낱 구경꾼 생각이지만, 오늘날 국가의 형태를 존속케 한 것은 순전히 그들의 공으로 돌린다는 의미가 아닐까.
아이에게 들으니 학교에서는 기념행사 때 선생님으로부터 단단히 주의를 듣는다고 한다. 말 하지도 말고 웃지도 말고 친구와 눈 마주치지도 말라고. (아이들이란 눈 마주치면 키득대거나 까불어댈게 뻔하니까)
학교에서 비디오를 보며, 역사란 무엇인지에 대해 배우는 시간, 그리고 역사속에서 자신을 희생한 사람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그들을 기억하는 이 날,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그런다. "비디오 보면서 눈물 났어. 아우 빼빼로 데이가 얼마나 시시한 건지..."
천만관객이 봤다던 영화 '암살'에 나오는 대사, '우릴 잊지마...'
우리에게도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며 현충일이 있긴 하다. 우리에게는 잊지 말아야 할 '호국영령'들이 훨씬 많지 않은가. 독립운동가들부터 전쟁 전사자뿐 아니라 4.3, 4.19, 5.18... 역사속에서 이들을 소홀히 대접하는 문제가 아닌 이들의 희생이 억울하게 매도되는 현상까지 목격해온 우리.
초진지, 초엄숙한 태도의 캐나다판 현충일이 되면, 한국판 Remembrance day가 떠오르게 마련이다. 자기 개인의 영달을 위한 것이 아닌 일에 희생된 존재들을 진정성 담아 기억하는 날, 고속도로가 몸살을 앓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궁금해진다. 그들을 존중하기 위해 후손인 우리는 그들의 후손에게 이런 때를 맞이하여 어떠한 '감사표시'라도 하고있는지. 그러던중 인터넷 어디선가 본 배너하나가 내 눈에 들어왔다.
유엔참전용사 국제추모 기념행사로써 'Turn towards Busan' 이라는 이름으로 11월11일 11시에 부산을 향해 1분간 묵념을 한다는 것. 정확한 내용은 알지못하지만 뭐라도 해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11월11일 11시, 많은 사람들이 잊지않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