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난 20세기에 중고교를 다녔다. 당시 선생님들이 늘 하시던 말씀이 있었다. 그것은 항상 두가지 활용형태로 존재했다. '정신 상태가 해이해졌다'와 '정신 상태가 해이해지지 않도록'. 거의 모든 선생님들은 예외없이 한결같이 그 말을 했다. 혹시 교육학 개론에 나온 말인가 싶을 정도로.
소풍 -20세기엔 '현장학습'을 이렇게 불렀다-이나 수학여행, 운동회 등 학교 행사를 치를 때면 전후로 이 두가지 활용형을 다 들어야 했다. 즉 가기전에는 제2 활용형 '수학여행을 다녀와서 자칫 정신상태가 해이해지지 않도록 정신 똑바로 차리라'는 당부를 들어야 했고, 다녀와서는 제1 활용형 '이 녀석들 수학 여행 다녀와서 정신 상태가 해이해졌어. 그래가지고 어쩌고 저쩌고...'
이 말을 수 년간 하도 많이 들어서 국어 교과에서 배우는 문장의 '호응관계'마저 성립될 지경이었다. 누군가 '정신상태'를 외치면 나는 자다가도 '해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정신상태'란 말 뒤에는 '해이'말고는 올 수 있는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니 당시 중고교생들의 정신상태는 오히려 해이할밖에 도리가 없지않았나 싶다.
중고교 시절을 통과한 후 훗날 큰 물(?)에 나갔을 때, 멀리 떨어진 동네에서 학교를 다닌 연령도 좀 차이나는 사람으로부터 똑같은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그들도 학교 다닐 때 나와 토씨 하나 다르지 않은 말을 듣고 다녔다는 사실에. 지금같이 인터넷이 있지도 않은 시절이었는데 어떻게 선생님들은 지역을 막론하고 똑같은 말로 학생들을 '단도리'하셨는지.
알고보면 어려운 어휘 '해이'는 무슨 뜻일까. 지금에서야 찾아본 국어사전에 이르기를, '긴장이나 규율이 풀려 마음이 느슨함' 이라 한다. 정확한 뜻을 당시엔 머리로 알지 못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하지만 감으로 받아들인 뜻은 사전풀이에 견줘 손색없이 정확했었다.
요즘 신문을 통해 이태원 참사에 관련된 고위공직자들을 보면서 오래전 그 말이 떠올랐다. 외신 기자회견 자리에서 객적은 농담이나 하는 자, 잠 자느라 보고 전화를 놓친 자, 바쁜거 하나없이 먹을 거 다 먹고 현장에 나가는 자, 국정감사 자리에서 '웃기고 있네' 따위의 낙서나 하는 자 등등.
이제 국민들이 그 말을 대신해야 할 때.
저 자들 ooo 되더니 정신상태가 해이해졌군.
이미 한 자리 차지하게 되었더라도 정신상태가 해이해지지 않도록 언제나 국민 무서운줄 알고 정신 똑바로 차리시오~~
아, 어쩜 좋단 말인가. 정신상태가 너무나도 해이한 저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