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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진 Oct 19. 2022

세계 폐경(완경)의 날

인터넷을 둘러보다가 오늘이 (10월18일) '세계 폐경의 날'이란 걸 알았다. 폐경이라니. 초경을 입에 올릴 때처럼 당당하지 못하게 하는 말이 아닐까. 정확히 이유는 대지 못하지만 어쩐지 말이다. 우리는 '폐경'또는 '완경'이란 현상에 따른 직접적인 표현보다 '갱년'이란 두루뭉실하면서도 다소 낭만(?)적인 말을 써왔다.  


갱년(更年). 생애주기상 하나의 주기를 마치고 다른 주기를 맞이함. 생식기능상 필요한 것들이 그 필요를 다하고 그것들을 뒷받침하기 위해 몸에서 분비되던 호르몬들이 줄어들다가 안나오는 현상을 사실 그대로 표현하기 보다는 한 깊이 더 들어가 그런 즈음에 변화된 몸의 처지에 맞게 삶을 재구성하는 시기라며 완곡하게 존중하는 모양새가 돋보이는 말같다. 그렇다고 그 말 또는 그 현상을 아름답게 인식하고 있지는 않는 이유는 뭘까. 


말을 만든 취지는 꽤 우아했으나 용례가 영 가벼워서 탈이었다. 소위 '갱년기'가 거론될 때 희화화 되지 않거나 우스개 용도로 쓰이지 않는 경우는 드물다고 본다. 중년 이상된 여성이 전화기를 냉장고에 넣었다는 식의 건망증을 논할 때, 우울이나 짜증 등이 이야기될 때 누구나 가볍게 '갱년기 장애'쯤으로 쉽게 진단하며 퉁치는 행태, 참 흔하게 보아오지 않았나.  


얼굴이 붉어지는 증상은 이 연령에 속해 있지 않은 그룹에 놀림감처럼 언급되며 스스로도 수치감을 갖는 흔한 증상이다. 밤에 자다가 땀으로 온몸이 젖는 증상은 그야말로 일상생활의 '장애'가 아닌가. 여성 호르몬 에스트로겐이 점차 분비되지 않게 되면서 여성의 몸은 혈관, 심장, 관절, 뼈, 신진대사 등 온몸에 영향을 받고 감정까지 좌우되며 수면 패턴도 달라져 삶의 질이 떨어진다. 이 모든게 신체 기능상의 문제로 건강 측면에서 이야기될 부분일뿐, 여성이 나이들어 게을러서 둔해지고 더는 '관리'하지 않아 살찌고 피부는 처지며 건강이 시원찮아 지는 현상으로 여기고 말 일은 아닌 것이다. 


미디어에서 흔히 그 연령대의 연예인을 다루는 방식은 두 그룹으로 나뉜다. 젊을 때 미모로 한몫해왔던 부류라면 '세월이 비껴간' '방부제 미모' 등으로 수식하며 그저 여전히 젊고 아름답다는 데에 포커스를 맞추는데 천편일률이다. 그 외에는 보통 사람들처럼 '갱년기 증상'을 토로하면서 우리도 '한물갔다'는 식으로 서로 공감대를 형성하지만 그러고 마는 식. 진지하게 논하면서 그에 도움되는 정보를 공유하는 모습은 없다.  


생각해보면 첫번째 부류의 기사를 보면 얼마나 공허한가. 앞머리 귀엽게 내리고 염색한 머리 풍성하게 늘어뜨린채 젊은 감각의 옷을 입고 '60세 ooo 최강동안' 해봤자 그도 생리는 끊겼을거고 여성호르몬도 고갈되었을텐데? 그로인해 밤에 자다가 땀에 젖은 옷갈아 입느라 잠 설치고 다시 잠들기 어려운 남모를 고통을 겪고 있을지 모를일이다. 


반면 이런 이들도 있긴 하다. '나이들어가는게 행복하고 감사해요~주름은 인생이 주는 선물~어쩌고 저쩌고 '라는 부류. 정말로? 가슴에 손을 얹고 진심으로? 이또한 공허하긴 마찬가지. 솔직히 그 누구도 그럴리는 없잖은가. 사춘기 소년소녀가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쳐 변화된 자아상을 받아들이고 나름대로 정립해가며 성인으로 성장하듯이 중년 여성도 인생에서 두번째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쳐 성숙한 자세로 의연하게 받아들인 경지에 간신히 다다를 수 있는 것 아닐까. 그러기에도 누구에게나 가능한건 아니라고 본다.  


미국에서만도 매 년 130만 명이 새롭게 이 '갱년'의 세계에 들어온다고 하는데 여태 이들의 고충은 별로 공식적으로 이야기되지 않고 따라서 이들의 건강상의 변화와 그것이 삶의 질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정보가 부재하다는 깨달음이 여기저기에서 대두되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이 그룹에 속하는 여성 창업자들의 이 인구계층을 위한 다양한 창업이 잇다르고 있다고 한다. '뷰티' 업계에서는 이들 '제껴져 있던 인구계층'(neglected demographic)을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기사도 있었다. 결국은 그들의 지갑을 열기위한 연구고 개발이 될지언정. 


이 터널을 통과하는 각자의 개인적인 고충으로 여겨지고 말 일이 아니라 특정의 인구계층의 보편적인 문제로서 수면위로 올라왔다는 사실만으로도 한 발 나아간 셈이라고 생각한다. 여성들의 폐경후 노년으로 가는 이 진지한 여정에 애처로운 자기 희화화는 물론 공허한 미화도 무지로 인한 의도치 않은 폭력도 더는 보지 않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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