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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 Sep 18. 2020

오키나와에서 생긴 일

그렇게 나는 오키나와에서 눈부시게 피어났다

오키나와에 갔다. 2019년 4월. 남들은 한창 벚꽃 축제에 갈 때 나는 일본 오키나와 행 비행기 표를 끊었다. 그것도 모르는 사람들과 같이 가는 여행이다. 일반 패키지 여행은 아니다. 처음 가는 ‘명상 여행’이다. 친한 친구의 추천으로, 난생 처음 명상 여행을 가기로 했다. 말만 많이 들었던 오키나와. 그렇게 좋다던 그 곳에 나는 이제 명상을 하러 간다. 다음 주 APAC 헤드가 오는 일정 때문에 팀 원들 모두 회의에 정신이 없었지만, 비행기 표를 미리 끊어 놓은 이상, 일에 대한 압박은 잠시 내려놓기로 한다. 우선, 나는 지금 당장 명상이 필요하다. 더 정확하게는 힐링, 그리고 더 정확하게는 ‘멈춤’과 ‘비움’이 필요하다. 지금 나는 지쳐 있다.


오키나와 공항은 생각보다 소박했다. 제주도에 갔을 때 보았던 나무들이 보인다. 그냥 일본어 간판이 써 있는 작은 제주 공항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여행에는 열 다섯 명이 모였다. 일정은 요가와 명상, 강의와 나눔, 영화 감상 등으로 타이트하게 짜여 있다. 한 방을 쓰게 된 룸메이트는 세 살 어린 친구로, 결혼을 한 지 몇 년 되는 전업 주부였다. 아기를 갖기 위해 평안을 유지하려고 프로그램에 등록했다고 했다. 나는 회사 생활이 힘들어 자연에서 힐링하고, 좋아하는 요가와 명상을 마음껏 하고 싶어 왔다고 했다. 



자연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하는 요가, 바다 앞에서 비를 맞으며 하는 명상. 그것 만으로도 평생 해보지 못한 경험을 한, 의미 있는 여행이었다. 그러나 이 여행이 준 더 큰 의미는 여기 있었다. 내 과거를 치유하게 됐다는 것. 내 과거를 놓아주게 됐다는 것. 그래서 더 가벼워졌다는 것이다. 구름이 걷히면 자연스럽게 빛나는 해가 드러나는 것처럼, 과거를 놓아주고 나는 눈부신 나를 만났다. 


나는 취업이 어려워 MBA에 갔다. 졸업 이후에 회사가 아닌 창업을 했지만 망했고, 이후에 다시 취업을 했다. 그래서 나는 항상 나를 ‘실패자’로 보는 버릇이 있었다. 물론 대 놓고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결정적인 상황, 결정적인 순간에 나는 언제나 나에게 당당하지 못했다. 움츠러들었다. 다른 사람은 모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내가 움츠러드는 순간을. 내가 나 자신에게, 세상에게 당당하지 못한 순간을. 극복하기 위해 애를 쓴다고 했지만, 언제나 결정적인 순간에 나는 고개를 숙였다. 


오키나와에서의 여행은 내 삶의 가장 소중한 순간을 다시 기억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나의 그 모든 삶의 여정이 눈부신 축복이었음을 깨닫게 해주었다. 세계적인 영상 철학자, 디팩초프라의 저서 ‘바라는 대로 이루어진다’에서 그는 자신 스스로에게 내가 왜 이 지구에 있어야 하는지, why에 대해 질문하라고 말한다. 나는 그 질문을 스물 여덟, MBA 덕분에 갔던 보스턴에서 처음 스스로에게 하게 됐다. 취업이 되지 않아 MBA에 갔지만, 여행이 준 영감 덕분에 그 때 나는 어떻게 취업할까 보다, 어떻게 삶을 살아야 할까, 내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삶이라는 이 여행을 어떻게 사는 것이 나에게 가장 기쁨을 주는 것일까 난생 처음으로 생각해볼 수 있었다. 나 자신에 대해 관심을 갖고 더 깊게 살펴볼 수 있었다. 



20대 때 취업이 되지 않았던 것은 정말 나에게 큰 축복이었다. 보스턴에 다녀온 이후로, 나는 나 자신을 진실되게 만나는 축복의 순간들을 삶에서 경험할 수 있었다. 좋은 책도, 명상도, 요가도 모두 그 후에 만났다. 이 모두를 나눌 수 있는 친구들도 말이다.


이렇게 실패를 축복으로 바꾸고 나니, 다시 스스로에게 묻게 됐다. 그럼 나는 이제 무엇을 줄까. 세상에 무엇을 줄 수 있을까. 그 때 언뜻 꽃이 조금씩 활짝 피어나는 모습이 떠올랐다. 사람이라는 꽃이 활짝 피어나는 모습. 나는 사람들이 활짝 피어나게 하는 일을 하고 싶다. 우리 모두가 가진 가능성이라는 꽃이 활짝 피어나는 모습. 그래서 눈부신 기쁨과 사랑이라는 빛이 우리의 삶에 가득한 모습. 그렇게 나는 오키나와에서 눈부시게 다시 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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