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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 Sep 20. 2020

그렇게 나는 백수가 되었다

내 선택이 현실이 된다는 것

오키나와에 다녀온 후, 내 삶은 꿀이었다. 하지만 그 꿀같이 달콤한 일상이 무너지는 건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정신없이 쏟아지는 업무와 미팅들. 그 안에서 나는 아주 쉽게 평정을 잃고 방황하기 시작했다. ‘역시 좋은 건 한 순간이구나. 이렇게 쉽게 무너질 것을 왜 그리 좋아했을까. 어차피 이렇게 될 건데… 어차피 이렇게 될 거였는데….’


사람의 마음이 참 간사하다. 다녀온 후에는 그렇게 좋더니, 이내 상황이 바뀌어 그 때의 감동이 사라지자, 왜 다녀왔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3개월 뒤 나는 포지션이 없어지는 초유의 사태와 함께 회사를 갑작스레 나오게 된다. 갑작스런 퇴사였다. 한 번도 생각해 본적 없는 갑작스런 퇴사 앞에서 나는 한번 더 처참히 무너졌다.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게 인생이라더니, 어떻게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는지 억울했다. 내가 뭘 잘못했을까 자괴감도 들었다. 회사에 대한 분노와 원망이 내 마음을 쓰나미처럼 뒤덮었다. 그렇게 나는 분노와 절망에 휩싸인 백수가 되었다. 




나는 사우나를 좋아한다. 사우나 뿐 아니라 사우나 하러 가는 길도 참 좋아한다. 생각할 거리가 있을 때면, 일부러 한참을 걸어 사우나에 간다. 사우나와 함께 내가 좋아하는 일 중의 하나인 산책을 하기 위해서다. 퇴사를 하고 일주일이 지난 날, 나는 산책을 하며 나 자신에게 물었다. 왜 이런 상황이 내 앞에 펼쳐졌는지. 전혀 내 계획에 없었던 이 일이 왜 지금 내 앞에 다가왔는지 나 자신에게 물었다. 그리고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꽤 오랜 시간, 내가 하는 이 일을 좋아하지 않았음을 직면했다. 


1년 계약직. 1년만 버티는 게 내 목표였지, 나는 내 일을 사랑하지 않았다. 내가 일을 하는 그 시간들을 사랑하지 않았다. 오키나와에서 느꼈던 감동이 사라지는 순간, 나는 내 일을 마음 속 깊이 원망했다. ‘역시 일을 하면서, 회사 일을 하면서, 이렇게 바쁘게 돌아가는 산업 군에 속한 일을 하면서,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 건 불가능하구나.’ 그 때부터 나는 내 일을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원망했다. 일은 그 자체가 기쁨이 아니라, 꿈을 방해하는 장애물이었고, 하루 빨리 이 일에서 벗어나는 게 내 목표였다. 그리고 나의 목표는 그대로 빠르게 내 삶에 이루어졌다.  


‘결국 모든 게 다 내가 만든 거였구나. 진짜 책에 나오는 것처럼, 모든 상황을 내가 만드는 거구나.’ 이 모든 게 보이는 그 순간, 나는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이 상황, 회사, 나 자신에게 갖고 있던 분노와 원망, 수치심이 눈 녹 듯 사라졌다. 내가 스스로 만들었다는 것을 안 이상, 그 모든 감정은 무의미했다. 



이렇게 삶은 실제 상황을 통해, 진실을 드러낸다. 내가 어디 다른 데로 도망가지 못하게, 바로 내 현실을 도구로 그 진실을 알려주는 것이다.



내가 선택한 것이 나의 현실이 된다는 것.
선택을 통해 끊임없이 나는 나의 삶을 창조한다는 것.

 

비록 이른 퇴사였지만, 나는 삶의 중요한 진실을 뼛속 깊이 새기게 되었다. 


1년이 지난 지금, 그 때의 퇴사는 삶의 축복으로 내 가슴 한 켠에 남았다. 삶의 여정에서 또 하나의 축복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절대 잊지 않을 삶의 진실을 함께 선물로 받았다. 삶의 모든 순간은 진실을 숨기고 찾아오는 축복임을 그 일을 통해 나는 한 번 더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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