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처음인데 늦된 아이를 키우려니 참으로 버거웠다. 언어가 늦된 아이는 더욱 신경 쓸 것들이 많았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레 유난스럽고 예민한 엄마가 되어가고 있었다. 아이의 마음과 욕구를 읽어내기 위해 또래 엄마들보다 더 촉을 세워야 했다. 특히 사람들이 많고, 아이들이 많은 공간에서는 아이에게 눈을 떼지 못할 정도였다. 혹시라도 곤란한 상황이 되면 의사표현이 자유롭지 못한 아이의 대변인 역할까지 해야 했기 때문이다. 단 몇 시간 놀이터에서 놀고 오는데도 너무 아이에게 집중한 나머지 두통이 생기는 날도 있었다. 말 늦은 아이의 어설픈 표현과 울음과 떼쓰기 속에서 엄마의 온 감각기관을 동원해 아이의 욕구를 추측해 내는 일은 정말 만만치 않은 일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제대로 의사표현을 할 수 없는 아이도 자신의 욕구를, 마음을 엄마에게 전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감각들을 총동원하는 모습이 보였다. 어느 순간 그 모습을 마음으로 읽게 되었고, 그런 아이가 한없이 안쓰럽기 시작했다. 또래 아이들처럼 한 마디면 될 것을 진땀을 흘리며 혹시라도 엄마가 화를 낼까? 불안한 눈빛까지 보내며 말을 건네 올 때는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렇게 어눌한 말 때문에 스스로도 진을 빼고, 엄마도 진이 빠진 날의 외출은 마음이 더 힘든 날이 되었다. 그렇게 집에 돌아오면 나와 아이는 침묵이라는 가장 빛나는 언어로 서로를 꼭 껴안았다. 그리고 음악을 듣기도 하고, 서로의 몸을 마사지해주기도 하면서 가장 따뜻하고 가치 있는 사랑의 눈빛을, 사랑의 몸짓을 나누다 잠이 들곤 했다. 잠이 깨어 옆에 잠들어 있는 아이를 바라볼 때는 그냥 눈물이 나는 날도 많았다. 그런 아이를 돕기 위해서라도 엄마는 좀 더 강해져야 했다. 아이를 향한 마음은 더욱 뜨겁게, 아이에게 내뱉는 말과 눈빛은 세상 가장 따뜻하게, 하지만 아이를 돕고자 하는, 변화시키고자 하는 엄마의 마음은 더욱 강하고 독해져야 했다.
나는 아이를 성장시킬 수 있는 방법들을 하나씩 찾아가고, 그것을 우리의 하루에 적용하면서 자연스럽게 아이와 만들어지는 루틴들이 생겼다. 엄마의 루틴, 아이의 루틴, 그리고 우리가 함께 하는 루틴들이 생겨나면서 서로 더 많이 성장하고 있음을 실감하는 날들이 많았다. 오래간만에 아이를 만난 지인들이나 가족들은 모두들 딸아이의 변화를 한눈에 알아보기 시작했다. 클수록 좋아지는데 엄마가 그동안 걱정이 많았다며 시간의 힘으로 딸아이의 언어발달과 모습이 자연스레 좋아진 것으로 생각했다. 그저 웃음으로 넘겼지만, 아이와 나는 알고 있다. 자연스러운 시간의 힘과 우리만의 피나는 노력이 더해져 우리는 조용히 성장하고 있었음을... 그리고 그 성장 뒤에는 엄마와 아이가 함께 성장하도록 했던 힘, ‘루틴의 힘’이 있었음을... 매일매일 작은 성공 벽돌을 하나씩 쌓아가는 ‘루틴의 힘’은 대단했다. 나는 ‘아침 독서’를 통해 이미 그것을 알고 있었지만, 아이와 함께 하는 엄마와 아이의 루틴은 또 다른 결과물들을 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더욱 힘을 썼다. 물론 의사표현, 감정표현 안 되는 아이와 이것저것 시도하려니 아이와 실랑이를 벌이는 날도 있고, 꾸준함이 따라주지 못한 일들도 있고, 슬럼프가 찾아와 발목을 붙들 때도 있었지만 우리는 지금껏 잘해오고 있다. 엄마만 지치지 않으면 된다. 엄마의 감정만 오락가락하지 않으면 된다. 그러면 아이는 어느 정도 잘 따라온다. 만약 아이가 따라주지 않는다면 그것들에는 참 많은 이유가 있었음을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그중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아이의 의사와 상관없는 엄마의 강요나 설득 때문이었다. 아무리 엄마의 성에 차지 않는 것들이라도 아이가 공감할 수 있도록 아이의 의견을 들으며 조율하려는 지혜가 필요함을 깨달았다. 엄마의 요령이 절실히 필요한 작업이 바로 엄마와 아이가 함께 만드는 루틴이다.
루틴의 힘은 수많은 성공한 사람들의 일상에서도 많이 엿볼 수 있다. 자신만의 루틴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주도적이다.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망설이는 시간에 자신이 원하는 일들을 하나씩 완성해가는 사람들이다. 루틴 그 자체가 주는 힘을 이미 경험한 사람들은 그것을 믿는 힘이 대단하다. 작가 무라 키마 하루키는 달리기를 하는 작가로 유명하다. 그는 새벽 5시부터 오전 10시까지는 글을 쓰고, 낮 시간은 날마다 10킬로미터를 달리는 루틴을 가지고 있다. 자신만의 규칙적인 루틴 덕분에 그는 하루를 알차게 채웠고, 훌륭한 작품들을 남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뭐든 작심삼일에 끝이 났던 나에게도 몇 가지 루틴이 만들어지면서 삶의 변화를 경험했고, 워킹맘으로 살림과 육아에서도 루틴의 힘은 엄마의 에너지를 덜어주는 고마운 힘이 되었다. 이른 아침시간에 눈을 뜨자마자 짧은 기도를 하고, 쌀을 씻어 밥을 올리고, 아이가 먹을 아침식사와 과일을 간단히 준비하고, 책 읽기를 시작한다. 1시간~2시간가량 독서와 글쓰기가 끝나면 20분 정도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고 아이를 깨우고, 입을 옷과 아침에 볼 수 있는 영상이나 책을 챙겨주고 씻으러 들어간다. 아이에게 아침식사를 차려주고, 아이가 밥 먹는 동안 아이 옆에 앉아 화장을 하며 간단한 얘기를 나눈다. 모든 준비가 끝나면 아이를 등교시키고, 오전 시간에 처리해야 될 업무나 하고 싶은 엄마만의 시간과 활동들을 한다. 그리고 점심을 먹고 출근을 한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거의 변화가 없는 나의 오전 일상이다. 아이가 등교하고 특별한 일이 없는 오전에는 주 2~3회 한 시간 가량 걷기를 하기도 했다. 그래서 한동안 아침운동이 루틴이 되어 늦된 아이를 키우는 엄마, 워킹맘으로 살면서 챙기지 못한 나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들을 쫓아낼 수 있는 힘을 얻기도 했다.
아침 독서와 글쓰기가 루틴이 되면서는 내면이 단단해지는 내공을 갖게 되는 것 같다. 읽는 책의 분야가 넓혀지고, 관심분야가 생기고, 배우고 싶은 것들을 배워가고, 글쓰기 훈련을 하면서 멋진 인생 적금통장에 작은 성공의 기쁨을 아침마다 적립하는 기분이다. 아침 몇 시간에 이루어지는 그 일들을 통해서 육아에 지치고, 일에 지쳐 사사건건 신경질로 짜증을 내며 뾰족했던 날들을 과감히 정리할 수 있었다. 요즘은 뭔가 시도해보고 싶고, 집중해서 끝내 보고 싶은 일들이 생기면 일단 하루의 루틴이 될 수 있도록 시간을 계획한다. 내가 그동안 독서를 할 때 사용했던 독서 학기제처럼 특정 기간을 정해두고 그 일에 대한 결과물을 가지려 시도한다. 예를 들면 12주 50권 읽기 인증, 12주 영어회화 100개 대화문 암기, 하루 30분 8주 한 시간 걷기 운동 완성 등 나름의 기한과 할 일을 정해 실천하고 있다. 물론 모든 것을 완벽히 끝내지 못할 때도 많지만 적어도 멈추지 않고 움직이고 시도하는 나를 만나는 것만으로도 뿌듯하다. 아이와도 마찬가지다. 보통의 엄마들보다 나는 아이와 해야 될 일들이 많았다.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성장과 발달이 더딘 아이를 키우려니 생각지도 못한 활동들과 남다른 육아를 위한 설루션들이 정말 많이 필요하고 이루어져야 했다. 그래서 아이와 함께 하는 짧은 오후 시간, 퇴근 후 시간, 주말 시간들을 때마다 다양한 활동들로 채우며 우리만의 루틴을 만들어 지내왔다. 우리는 그것을 ‘최선 마라톤’이라고 부른다. 그렇게 아이와 시도하고 완성해가는 것들이 시간이 갈수록 점점 쌓여가기 시작했고, 이제는 아이도 자연스러운 습관이 되어가고 있다. 이동하는 차 안에서 조차도 아이는 자연스레 한자카드를 꺼내고, 나는 영어동요나 한국어 동요, 오디오북 등을 틀어놓게 된다. 아이의 발음 교정과 언어를 위해 시작했던 활동이었는데 어느새 습관처럼 이루어지고 있다. 잠들기 전에 동화책 2권 읽기, 하루에 영어단어 5개 알려주기, 영어동화책 2권 읽어주기, 주제 글쓰기, 소리 내어 짧은 글 낭독하며 말하기 연습하기, 한자 5개씩 익히기, 쉬운 논술 책으로 생각하는 훈련과 어휘력 익히기, 중국어 동요까지 정말 다양한 것들을 요일별로 바꿔가며 아이와 엄마의 요일별 루틴을 만들어왔다.
아이와 함께 무언가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엄마의 치밀함과 인내심이 좀 더 필요하다. 가끔 실천하지 못한 날들을 돌아보면 예외 없이 엄마의 게으름이나 바쁨이 있었을 뿐이었다. 나는 아이와 엄마가 함께 만드는 루틴에는 반드시 아이의 의사를 가장 먼저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오늘 해야 될 양을 채우는 것이 우선이지 질을 높이려고 아이를 다그치는 일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엄마의 질문이나 테스트 확인 같은 것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단 10분도 걸리지 않는 작은 활동들도 많았지만, 아이가 약속한 양만 채우면 일단 크게 칭찬했고, 아이가 해야 될 일의 목록의 마지막에는 항상 ‘실컷 놀기’를 추가시켜 주었다. 어쩌면 아이는 그 마지막 항목을 향해 자신에게 주어진 일들을 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가끔은 너무 대충 하는 게 보이기도 했지만, 어찌 되었든 어린아이에게는 작은 성취감을 맛보는 경험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엄마가 처음 책을 읽을 때 그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도, 독서량을 채우며 독서습관을 만든 것처럼, 내 아이도 분명 그럴 것이다. 자신이 완성해가는 하루의 루틴 속에서 느끼는 성취감으로 조금씩 성장해 갈 것이라고 확신한다. 내 아이가 스스로 매일 적립해가는 작은 성공의 기쁨으로 나는 더 많은 것들을 꿈꾸는 아이가 될 거라 믿는다.
누군가는 말할지도 모른다. 그런 루틴 속에서 살면 아이가 너무 숨 막히지 않겠냐고? 그것은 아이와 함께 하는 엄마의 자세나 방법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를 엄마의 욕심으로 몰아붙이고, 평가하고, 판단하고, 지적한다면 숨이 막힐 수도 있다. 하지만 다그침 없이, 재촉하지 않고 아이가 주어진 것들을 해낼 때마다 엄마가 보내주는 자랑스러운 눈빛, 따뜻한 응원과 칭찬이 있다면, 아이는 오히려 ‘자기 통제력’을 키우고 ‘자기 주도력’을 키우면서 성장할 수 있다. 하루 종일 집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는 아이들, 마땅히 할 것이 없어서 습관처럼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고 있는 아이들, 그렇게 무계획적으로 방치된 아이들이 오히려 더 숨이 막힐지도 모른다. 부모의 무관심과 방치, 방관으로 생기는 아이의 불안과 외로움, 슬픔, 공허함은 어디서, 어떻게 채워지겠는가? 아이에게 자유를 허락하는 것과 부모의 무관심을 착각해서는 안된다. 나도 아이가 다섯 살이 되고서야 그것을 깨달았다. 아무 생각 없이, 왜 휴대전화를 몇 시간씩 붙들고 있는지 자신도 모른 채, 흐릿해진 지친 눈으로 앉아있는 내 아이를 내 눈으로 확인하고, 가슴으로 바라본 날, 나는 밤새 울었다. 그리고 그 시간들을 다시 되돌릴 수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수없이 생각했다. 바쁘다는 이유로, 육아에 지쳤다는 이유로 쉬는 날이면 종일 TV 앞에 어린아이를 앉혀두곤 했다. 수시로 작은 아이의 손에 휴대전화를 쥐어주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조금 더 늦게 정신을 차렸다면 나는 돌이킬 수 없을지도 모를 만큼 미디어에 중독된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되었을 것이다.
스스로 계획표를 실천하며 직접 기록하는 ‘자기 돌봄’과 ‘자기 돌아봄’이 되는 아이들은 그 안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경험을 하게 되고, 성취감과 함께 찾아오는 휴식 속에서 진정한 자유로움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맞벌이가 많은 요즘 세상에 소리라도 꽥 질러주는 엄마의 관심이 오히려 아이에게는 정서적인 안정을 느끼게 해주지 않을까? 매일 이루어지는 루틴 속에서, 눈에 보이는 몇 가지 규칙 속에서, 정해진 타임테이블 속에서 아이는 숨이 막히는 것이 아니라, 숨통이 트이는 경험을 할지도 모른다. 엄마의 관심과 통제가 사랑인지, 권위적인 엄마의 욕심인지, 엄마의 마음을 아이만큼 잘 느끼고, 아이만큼 정확하게 아는 사람도 없을 테니 말이다. 몇 시간째 글쓰기에 집중하고 있는 엄마에게 슬쩍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게임과 유튜브에 빠져있던 아이는 내게 다가와 묻는다. “엄마, 이제 나도 책 좀 읽어볼까?” 아이의 그 질문 속에서 나는 여러 가지 마음을 느끼게 된다. ‘엄마, 나에게 관심 좀 가져주세요.’, ‘엄마, 내가 게임을 너무 많이 한 것 같아요.’ 이런 마음이지 않았을까? 아이는 스스로 안다. 자신이 어떤 타이밍에 멈춰야 하는지... 하지만 어떤 루틴도 가져보지 못한 아이, 제대로 된 통제를 받아보지 못한 아이는 스스로 멈춰야 하는 때를 알지 못한다. 아이에게 통제가 없다면 불안한 마음이 자리하기도 하고, 관심받고 싶어 하는 욕구도 더욱 커질 수 있다. 그래서 아이에게 자신만의 루틴을 완성해가고, 때가 되면 스스로 만들 수 있도록 엄마는 도와주어야 한다. 그것이 엄마와 아이가 함께 성장하고 서로의 삶을 응원해가는 멋진 루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