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꿈대로되는사람 Oct 21. 2021

아이가 좋아하는 일이
아이의 재능이다

  나는 서른이 넘도록 나의 재능이 무엇인지 찾지 못했다. 정말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살면서 나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교육을 받아본 기억도 없다. 초등교육부터 대학원 교육까지 20년 가까이 가방끈을 늘려가며 학교에 다녔건만 한 번도 내게 무엇을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지 묻는 교과목은 없었다. 그것을 찾기 위한 교육이나 활동들도 없었다. 그저 공부와 성적에만 초점이 맞춰진 교육을 받았을 뿐이다. ‘나’라는 사람에 대해 생각하고, 무엇을 좋아하는지에 관심을 두는 그런 교육환경이나 가정환경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냥 그렇게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에 대한 스스로의 물음도 없이 스무 살이 되고, 서른 해를 넘기는 나이가 되었다. 그래도 문제 될 것 없다고 느낄 만큼 잘 살고 있었다면 괜찮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어느 순간 나 한 사람조차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사람이 되어 있었다. 


 안정된 마땅한 직업도, 꿈도 없이 그렇게 뒤늦은 진로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20대 후반의 내 모습은 평생 일용직으로 살아야 할 것 같은 두려움까지 안겨주며 버겁고 당혹스러운 마음으로 나와 마주하게 했다. 남들보다 우월한 위치에서 누구나 부러워하는 일을 꿈꾼 것도 아닌데, 스스로 남들보다 열등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고서야 책을 읽으며 나를 찾아 나섰다. 뭐 대단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적어도 지금껏 나를 가장 사랑해 주시며, 믿어주셨던 부모님의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 싶었다. 나를 바라보는 부모님의 시선이 안타까움으로 변하기 전에 어떤 노력이라도 해야 될 필요를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죽을 때까지 곁에 두며 가지고 놀고 싶은 나의 마지막 장난감, 책을 찾아냈고, 눈을 감는 순간까지 하고 싶은 놀이, 글쓰기를 만났다. 우리 집에서 나의 최고의 놀이터는 가장 작고, 온갖 물건들이 놓인 골방 같은 서재다. 하지만 그곳은 세상 어떤 놀이공원보다 멋진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최고의 놀이터이다.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으니 특별한 재능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좋아하는 일이 재능이 될 수 있다면 적어도 나는 그것을 발견한 것 같다. 그래서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기회를 주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른 아침 2시간의 책 읽기와 글쓰기로 매일 가장 눈이 빛나고 가슴 뛰는 흥분으로 나를 만난다. 그렇다고 삶이 크게 변하거나 풍요로워진 것은 아니지만, 감사할 일들이 조금씩 늘고, 마음이 충만해지는 삶을 살아내고 있다. 


 이런 경험 때문인지 나는 엄마가 되면서 내 아이만큼은 좀 더 빨리 재능을 찾아주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세상의 모든 아이는 천재로 태어난다고 한다. 저마다 특출한 재능을 타고나기에 그 많은 재능 중에서 최고의 것을 찾도록 도와주는 것이 부모의 큰 역할이다. 많은 육아서는 아이의 재능을 찾아 키워주라고 말하고 있다. 아이에게 이것저것 간섭하며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면서 무언가를 시키고 강요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그저 아이에게 다양한 기회를 주고, 내 아이가 무엇에 관심을 보이며, 어떤 것에 흥분하며 떠들어대는지 면밀히 관찰하여 부모가 반응해주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부모라면 알 것이다. 아직 아이가 어려서 재능이라고 생각되는 어떤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 나로서는 그저 기다리는 시간들로 채워지고 있지만 아이가 커갈수록 엄마의 마음은 초조해진다. 그런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태연한 듯하지만, 어느 순간 또 아이 앞에 이것저것 기회를 준답시고 펼쳐놓는 엄마가 된다. 그것들 속으로 아이를 억지로 밀어 넣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면, 도대체 어느 선까지 개입해 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인지 궁금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정말 속 시원한 처방을 누군가가 내려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긴다. 마냥 기다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엄마의 욕심대로 이끌 수도 없으니 답답할 때가 많다. 하지만 아이가 어릴 때는 좀처럼 보이지 않던 재능들이 뒤늦게 피어나는 경우도 있고, 지나친 간섭이나 무관심으로 아예 피지도 못한 채 시들어 버리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며 조급한 마음을 달래 본다. 그래서 아이가 어릴 때는 아이가 좋아하고, 원하는 것들에 마음껏 최대한 노출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때론 아이가 버겁다고 느낄 수도 있고,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 영역도 있을 수 있으며, 흥미와 관심을 보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어려워하거나 시큰둥해지는 것들도 있을 수 있다. 다 잘할 순 없으니까. 그럴 땐 강요보다는 기다림이 우선이다. 


 나는 아이가 피아노에 관심을 보여 일주일에 한 번 놀이처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아이는 재미없다는 얘기를 자주 했고, 피아노 대신 우쿨렐레를 해볼 기회도 주었지만 아이는 배우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래서 아이가 원할 땐 언제든지 다시 할 수 있다는 얘기를 해주고 멈췄다. 그런데 아이가 관심을 보여 시작한 한자는 1년이 넘도록 지속하고 있다. 중간중간 급수시험에 응시하며 성취감을 느끼더니 5급까지 한자를 익혔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가 4급까지 계속 얘기하는 걸 보면 기특해진다. 그런데 어느 날 친구가 방과 후 수업으로 중국어를 하는데 자신도 해보고 싶다는 얘기를 꺼내서 아이에게 또 기회를 주려고 한다. 엄마가 간절히 바라는 악기교육은 아니지만 아이가 좋아하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재능은 분명 타고나는 부분도 크다. 나는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공부도 재능이라는 생각을 수없이 해왔다. 노력만으로 안 되는 아이들을 만나기도 했고, 어릴 때 부모의 남다른 교육방법 덕분에 시간이 갈수록 빛을 내는 아이도 있었으며, 아이 스스로 배우는 것을 좋아하고 욕심이 있어서 뭐든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계획하고 즐기는 아이도 보아왔다. 그런데 이 모든 아이들이 나에게 보여준 모습들은 어떤 경우든 타고난 것만으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재능을 발견해 키워가는 아이들의 부모들은 대부분 끊임없이 자신의 아이들을 잘 관찰해 직접 경험해 볼 수 있는 많은 기회들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또한 다양한 책들을 통해 아이들에게 간접경험도 충분히 제공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결국 아이의 재능을 찾아주는 데는 부모의 역할이 크고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부와 성적만을 위한 교육은 그저 평균적인 아이로 키워낼 뿐이다. 모든 과목을 잘하는 아이보다 특별히 잘하는 과목이 눈에 띄는 아이는 오히려 잠재 가능성이 높은 영역을 찾아내기가 더욱 쉽다. 부모의 선입견, 비교하려는 마음, 욕심만 버리면 아이의 남다른 부분이 서서히 눈에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정말 아이가 좋아하는 것조차 없다면 싫어하지 않는 일에 새로움을 더하면 된다. 싫어하는데 꼭 시키고 싶다면 그것에 좋아함을 더해보자.

 

 우리 아이는 정말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온갖 종류의 미술도구들과 색칠공부 책들을 앞에 두어도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아이가 최근 푹 빠져서 보던 유튜브 속 캐릭터들을 활용해 관심을 이끌어냈다. 엄마 눈엔 온통 귀신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그 영상이 맘에 들지는 않았지만, 아이와 함께 해당 캐릭터 색칠놀이 책을 구입해서 색칠놀이를 하고, 영상을 보며 따라 그리기도 하고, 도안을 출력해 색칠한 후 가위질을 하는 등 아주 다양한 놀이를 즐겼다. 캐릭터를 코팅해 인형극 놀이도 하고, 함께 주제곡도 부르며 푹 빠져보기도 했다. 이후 아이는 한동안 만화 캐릭터 그리기에 빠져있었고, 나름 이런 덕질을 통해 좋아하지도, 흥미도 없었던 그리기에 관심을 보였다. 결국 ‘시간여행’이라는 주제로 시행된 도내 그리기 대회에 자신도 참여하고 싶다는 의사까지 밝혀 엄마인 나를 놀라게 했다. 주제에 맞게 평소 그리던 만화 속 귀신 캐릭터와 함께 우주 놀이터에서 함께 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 제출했다. 결과에 상관없이 아이가 싫어하던 것에 좋아하는 요소를 추가하니 또 다른 기회를 만들어줄 수 있었다. 지금은 해당 캐릭터를 이용한 학습서들로 사자성어, 속담 익히기, 수수께끼 놀이는 물론 글쓰기까지 시도하고 있다.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발견했다면 이제 훈련하고 지속하기만 하면 된다. 싫어했던 일이지만 좋아하는 일들을 포함시켜 흥미를 이끌어내었다면, 그래서 새롭게 좋아할 수 있는 영역이 개발되었다면, 이제 부모의 열렬한 지지와 후원만이 남았다. 이것이 맞는 방법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아이가 할 수 있는 영역들을 넓혀주고, 적어도 자신이 무얼 못한다는 생각은 가지지 않도록 도울 수는 있었다. 그리고 기대해본다. 수많은 자기 계발서에서 말하듯, 좋아하는 것이 재능이 된다면 아이가 더 많은 것들을 좋아해 다양한 재능으로 키워주기를... 그것을 위해 아이가 좋아할 만한 경험들을 많이 가질 수 있도록 기회를 주며 노력하는 엄마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아이가 좋아하는 일은 그 아이 안에 그것을 재능으로 키워낼 수 있는 잠재력이 숨어있다는 뜻이다. 작은 노력으로도 남들보다 앞설 수 있다는 뜻이다. 꼭 직업과 연관 짓고, 밥벌이 도구와 연관 지어 저 하고 싶은 일을 막아서는 안 될 일이다. 결국 부모가 바라는 것은 아이의 행복이지 않은가? 내 아이가 무엇을 하고 있을 때 가장 행복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 보자. 싫은 일을 억지로 하면서 살면 아무리 돈을 많이 벌고 성공했다 하더라도 후회가 남는다. 결국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뒤늦은 나이에 진로를 고민하느라 혹독한 시간의 대가를 내 아이만큼은 치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 엄마의 가슴이 시키는 일이 아닌, 세상의 눈치가 시키는 일이 아닌, 아이의 가슴을 뛰게 하는 좋아하는 일을 찾아주고자 노력하는 엄마이고 싶다. 좋아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잘한다는 칭찬을 아끼지 않으며 부족한 부분을 함께 채워가는 엄마, 엄마의 선택보다 아이가 선택할 수 있는 기회와 환경을 만들어줄 수 있는 그런 엄마가 되기 위해 오늘도 엄마인 나는 내 아이가 필(feel)이 꽂힌 일이 어떤 것인지 세심하게 관찰하고 있다. 오로지 내 아이의 행복을 위해!

이전 16화 헤어짐을 목적으로 하는 자식에 대한 엄마의 사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