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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대로되는사람 Oct 21. 2021

이길 줄만 알고 질 줄 모르는
아이로 키워서는 안 된다

   오랫동안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해오면서 부모님들께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부탁의 말이 무엇이었나 생각해보았다. 바로 ‘칭찬 좀 많이 해주세요.’ ‘우리 아이는 칭찬받으면 더 잘하려고 해요.’라는 말이다. 아이가 잘못한 상황으로 연락을 드려도 ‘혼 좀 내주세요.’ ‘따끔하게 얘기 좀 해주세요.’라고 말씀하시는 부모님들은 요즘 거의 없다. 솔직히 가르치는 선생님 입장에서는 부모님이 어떤 식으로 말씀을 하셔도 한쪽으로 치우친 교육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칭찬이 필요한 부분은 강조해서 얘기해주고,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정확히 그 사실을 알려주려고 한다. 어떤 경우에도 감정에 치우치지 않는 대화가 이끌어지면 경험상 대부분의 아이들은 잘 알아듣는다. 그리고 그런 아이들을 볼 때면 기특함에 한번 안아주고 싶은 생각이 든다. 내 아이가 잘못한 상황에서도 목소리를 높이며 아이를 감싸려는 어른들보다 낫다는 생각이 든다. 


 한 번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남자아이 두 명이 주먹이 오고 가는 작은 몸싸움이 벌어졌다. 주변의 아이들은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어서 말릴 틈도 없었고, 다행히 이제 막 시작될 때 내 눈에 띄어 큰 싸움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얘기를 들어보니 한 아이가 계속 듣기 싫다고 말을 해도 먼저 때린 아이는 집요하게 그 아이의 별명을 부르며 놀리더란다. 그래서 별명을 부르는 아이에게 자신이 그 친구 대신 그만하라는 말을 했을 뿐인데, 갑자기 별명을 부르던 아이가 멱살을 잡으며 “무슨 상관이야, 나서지 마라.”하며 얼굴을 때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맞은 아이도 참지 못해 싸우게 되었다는 것이다. 두 아이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사실관계를 파악한 다음, 아이들끼리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시간을 주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을 다시 만났을 때 기분 좋은 화해가 이루어졌을 거라는 내 기대는 무너졌다. 친구를 도우려고 했던 아이는 자신이 한쪽 편만 들어 상대 아이의 기분이 나빴을 것 같아 오히려 미안하다는 사과를 먼저 건넸다고 한다. 그런데 친구를 놀리고, 먼저 폭력을 썼던 아이는 내게 당당하게 자신은 잘못한 것이 없어 사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먼저 친구를 놀린 것도, 폭력을 사용한 것도 자신이 먼저였는데 사과할 수 없다니... 나는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나를 더욱 당황스럽게 만든 건 아이들이 돌아간 후 걸려온 먼저 폭력을 사용한 아이 엄마의 전화였다. 조금은 격앙된 목소리로 말씀의 요지는 아이들이 크면서 서로 놀리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면서 크는 건데 사과를 하라고 해서 사춘기 아들이 화가 나서 집에 왔다는 것. 그 어머니는 내게 아이와 다시 얘기를 나눠 아이의 상한 마음을 달래주길 부탁하셨다. 그리고 역시 장점을 찾아 칭찬을 많이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부탁도 빠뜨리지 않고 전화를 끊으셨다. 나도 아이 키우는 부모이기에 마음 상한 아이로 엄마의 기분이 언짢은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지만 왠지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가끔은 부모님들의 일방적인 요구사항을 받아들이는 것이 힘들 때가 있다. 오히려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며 감정을 교류할 때 어른들보다 낫다는 생각도 들고 문제 해결도 빠른 경우가 있다. 이럴 땐 자식을 사랑하는 것에 요구되는 정도와 원칙을 지키지 못하고 잘못된 방법으로 아이를 사랑하고 있는 쪽은 부모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온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내 아이만큼은 고생시키지 않고, 마음 상하지 않게, 귀하게 키우고 싶은 마음이 어느 부모인들 없겠는가? 더욱이 요즘 세상은 아이의 자존감을 키워주는 것이 모든 육아의 화두가 되고 있다. 자존감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칭찬교육’이다. 아이는 칭찬과 격려 속에서 키워야 한다고들 말한다. 나도 이 말에 크게 공감하며 아이를 키웠다. 아이가 어릴 때는 격하게 오버하며 칭찬했고, 아주 작은 것에도 크게 칭찬했다. 4남매 중 셋째로 자라면서 늘 칭찬에 목말랐던 나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며 내 아이에게만큼은 아낌없이 칭찬해주는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칭찬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귀가 따갑도록 들어왔고 그것이 아이의 자존감과 긍정적인 성격 형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충분히 들어왔다. 그런데 어느 순간 잘못된 칭찬, 나쁜 칭찬도 있다는 사실을 서서히 알게 되었다. 칭찬에만 익숙해진 아이들이 이겨내야 할 또 다른 과제들이 있다는 사실, 그 사실을 알게 되면서 나는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늘 칭찬만 받으며 자라온 아이가 좌절과 실망, 때론 누군가의 비난에 대해 잘 견뎌낼 수 있는 단단한 마음을 기를 수 있을까? 어느 날, 세상에 자신보다 나은 사람이 없다고, 자신이 최고라고 알고 있던 생각이 착각이었고, 부모의 잘못된 칭찬으로 작은 시련조차 어떻게 견뎌내야 할지 모를 만큼 나약한 존재로 성장한 스스로의 모습을 깨닫게 되었을 때, 부모에 대한 배신감이 들지는 않을까? 부모가 자신에게 보여준, 부모가 만들어준 자존감이 부모와 함께 하는 세상에서만 통했다는 사실은 아이가 초등학교에만 들어가도 알게 된다. 아이는 부모의 세상과 학교의 세상, 그리고 학교가 아닌 공동체의 세상 사이의 괴리를 금세 눈치채게 될 것이다. 심한 경우 ‘적응 장애’까지 보일 수 있다. 


 나는 아이와 새로운 놀이를 하거나 게임을 할 때 대부분 아이보다 약한 인물을 담당했고, 져주려고 했다. 조금만 잘해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아이가 놀이에 흥미를 갖게 하고, 좀 더 긴 시간 집중하여 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싶은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매번 아이는 이기려고만 하는 것이다. 어쩌다 한번 엄마가 이기면 ‘다시 해.’ ‘한 번만 기회를 줘.’ ‘이거 아니야.’ 하면서 화를 내기도 하고 억지를 쓰기 시작했다. 결국 즐거운 마음으로 시작한 놀이는 짜증으로 마무리되고, 아이를 훈육하는 시간이 되는 상황으로 몇 차례 이어지면서 나는 아이에게 질 줄도 알아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쳐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지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라는 사실, 졌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정말 예쁜 모습인지 보여주기 시작했다. 자신이 원했던 상황이 아니거나 실패했을 때,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며 자신이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땐, 어떤 태도와 말투가 오해를 풀 수 있는지 끊임없이 설명했다. 사실 아이가 초등학생인 지금도 횟수가 줄었을 뿐, 여전히 되풀이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마주한 그런 상황에서 어떤 마음으로 대하는지에 따라 얼마나 그 상황이 달라질 수 있는지 설명했다. 아직 아이가 어렸지만 알아듣든, 못 알아듣든 위인전이나 동화책을 활용해 그런 상황을 간접 경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서서히 아이는 영혼 없이, 옳고 그름의 판단 없이 무조건 봐주고 칭찬해주던, 오버하며 반응해주던 엄마를 잊어갔다. 듣기 좋은 말만 해주던 엄마, 놀이시간이 기분 좋아 끝나지 않아 곤란한 상황이 되지는 않을까 안절부절못하던 엄마, 그런 마음 약한 모습을 매번 들켜버렸던 엄마 대신, 좀 더 단호한 엄마 곁에서 오히려 안정되어가는 모습이었다. 양보도 할 줄 알고, 나눌 줄도 알며, 질 줄도 아는 아이로 조금씩 마음을 열어갔다.


 아이는 부모가 함께 하지 않는 세상에서 수없이 많은 좌절과 직면해야 한다. 그런 세상에 엄마 없이 홀로 놓인 아이를 상상해보면 마음이 어떨지 수백 번 상상했다. 피할 수 있다면 내 아이에게만큼은 결코 그런 세상도, 그런 상황도 없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이제 제대로 된 가르침만이 아이를 온전히 살아갈 수 있도록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칭찬에도 방법이 달라지고, 한결 엄마 마음도 편안해진다. 질 줄 알고, 넘어질 줄 알며, 좌절할 수도 있고, 실패할 줄도 아는 아이가 정말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아이로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이 엄마 마음속에 들어와 자리했다. 그 순간 아이의 아픔이나 잠깐의 실망이 더 이상 엄마에게 큰 상처로 남지는 않았다. 세상에 이기기만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소심한 엄마는 아직도 아이의 눈물에, 아이의 풀 죽은 모습에 마음이 편치는 않다. 무턱대고 아이에게 가르치려 하는 ‘실패 교육’ ‘좌절 교육’이 내 아이를 잘못되게 하면 어떡하지? 아이 가슴에 상처로 남으면 어떡하나? 이러다가 아이와 사이가 멀어져서 거리감이 생기면 어떡하지? 참 많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과연 내가 엄마로서 잘하고 있는지 나의 칭찬 방법과 훈육 방법을 찬찬히 되짚어보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 일곱 살 아이에게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 아이는 학교 생활을 해야 한다. 아이가 마주할 환경은 결코 선생님도, 친구들도, 학교도, 엄마처럼, 집처럼 자신의 모든 것들을 이해심 있게 받아주지는 않을 거라는 사실을 가르쳐야 했다. 그리고 그 작은 세상에 놓인 초등학생이 된 지금의 내 아이를 바라보면 이런 시도가 더 늦었더라면 어쩔 뻔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 글을 쓰면서 참 많은 생각과 깨달음을 준 책이 있다. 『유대인 엄마의 힘』이라는 책이다. 참 의미 있게 읽었다. 유대인 부모는 아이를 위해 없는 시련도 만들어 내며 좌절 교육을 시킨다고 한다. 그 정도의 엄마는 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최소한 아이에게 분별없는 칭찬을 하거나 근거 없는 자존감을 키워주는 엄마는 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길 줄만 알고 질 줄 모르는 사람은 성공하면 뿌듯해 하지만 실패하면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절망에 빠져 허우적댄다고 한다. 이에 대해 교육 심리학자들은 성공하는데 지능 지수가 미치는 영향은 20%에 불과하며, 나머지 80%는 역경지수와 감성지수에 달렸다고 단언한다. 아이가 열등감은 극복하고, 역경은 이겨낼 수 있는 힘을 키우기를 바란다면, 이길 줄도 알고, 질 줄도 아는 아이로 키워야 한다. 실패했을 때, 좌절했을 때 담담히 맞설 수 있는 힘, 다시 일어나 시작할 수 있는 힘은 어릴 때 많이 넘어져보고, 잘 넘어져 본 경험이 만들어내지 않을까? 더 나아가 멋지게 질 줄 아는 방법까지 배울 수 있도록 가르쳐주는 엄마, 그 안에서 같이 배우고 성장하는 엄마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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