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꿈대로되는사람 Oct 21. 2021

아이가 원하는
엄마의 유효기간이 고작 10년

  어느 날 초등학교 4학년 아이가 굉장히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엄마의 전화를 끊는 것을 보았다. 이유는 친구들과 놀고 싶은데 엄마가 모처럼 직장을 쉬는 날이니 학원 앞으로 데리러 오겠다고 하신 것. 아이에게는 학원 수업이 끝나면 부모님이 퇴근하여 돌아오실 때까지 그 짧은 시간이 친구들과 놀 수 있는 가장 즐거운 시간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엄마가 데리러 오겠다고 하니 짜증이 난다고 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제 4학년인데 벌써 엄마보다 친구가 더 좋구나.’ 그렇다면 아이가 부모를 찾는 유효기간은 고작 10년 남짓. 순간 마음이 씁쓸해졌다. 

    

 부모 입장에서는 결혼해서 아이 낳아 기르는 그 10년이라는 시간이 사실 가장 행복하면서도 정신없는 시간들이 아닌가? 주택 대출금도 갚아 나가야 하고, 직장 내에서도 승진 등을 위해 한 참 바쁘게 일해야 하는 시기가 아닌가? 부모에게도 오로지 아이에게만 집중하고 있을 수 없는 시기가 또 이때다. 그런데 아이 입장에서 보면 세상에서 엄마, 아빠가 제일 좋을 때이고, 또 가장 필요한 때이기도 하다. 일하러 가는 엄마, 아빠에게 매달려 따라가겠다고 울어대는 아이에게 금방 오겠다는 거짓말을 하고서야 출근할 수 있는 때도 바로 이 시기뿐이지 않은가? 그럼 아이는 온종일 울음과 짜증으로 엄마를 기다린다. 돌봐주시는 분들이 아무리 사랑을 주셔도 아이에게는 오로지 엄마, 아빠뿐이다. 그런데 아이에겐 정작 자신이 함께 놀고 싶었던 부모를 애타게 필요로 할 때에는 함께 놀아줄 수 없었던 부모, 이제는 함께 놀고 싶은 대상이 바뀌었는데 어떻게 엄마와 시간을 보낼 수 있겠는가? 오히려 방해가 된다며 짜증을 내지 않으면 다행이다. 나도 결혼하기 전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일을 쉬어본 적이 없는 워킹맘이다. 오히려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 키우기 시작했던 5년이라는 시간이 나에게 가장 바쁜 시기였다. 30대 중반에 첫 아이를 낳았고, 그동안 하던 일의 경력을 발판 삼아 사업을 시작한 시기이기도 했기에 주말도 없이 일을 했다. 달력에 빨간 날조차 명절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 일을 했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도 아니고, 어느 누구의 도움도 없이 여기까지 왔는데 실패하면 안 된다는 오로지 그 생각뿐이었다. 사업을 시작하면서 생긴 부채도 이런 마음에 더해져 더욱 나를 압박했다. 빨리 자리를 잡으면 아이와 더 많은 시간 놀아주고, 함께 해줄 수 있다는 생각에 엄마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주지 못했다. 


 엄마가 함께 있어주기만 해도 신나 했던 아이를 떼놓고 출근할 때면 아이는 어김없이 울어댔고, 밤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퇴근하는 엄마를 기다리며 아이는 늘 눈물자국을 남기며 잠들어 있었다. 해가 질 무렵이면 엄마를 찾으며 2시간씩 울어대는 아이 때문에 돌봐주시는 이모나 할머니는 아이를 업고 아파트 주변을 서성이다 아이가 잠들면 들어가시곤 했다. 그 사이 엄마 목소리라도 들려줘야겠다며 몇 통씩 전화를 받아야 하는 날이면 일을 그만두어야 할지, 어찌해야 할지 수없이 갈등하며 지금 여기까지 왔다. 어쩌다 일찍 퇴근해서 오면 아이는 나를 향해 달려와 계속 놀아달라고 떼를 썼다. 하루 종일 일로 지쳐있어 피곤한 몸이지만 아이와 놀아주기 위해 잠시 다른 일들을 멈춘다. 엄마와 놀 수 있는 그 짧은 시간을 부여잡고라도 있는 듯 아이는 잠을 자야 되는 시간을 훌쩍 넘겨 잠을 이겨내면서까지 놀아달라고 한다. 그런 아이를 억지로 재우고 나서야 늦은 저녁을 먹었던 날들이 스친다. 엄마가 간절했을 그 시기에 내 아이는 얼마나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하루하루 어린 가슴에 쌓아가고 있었을까 생각하니 또 가슴에 눈물이 맺힌다. 엄마 품에 안겨 엄마의 심장소리를 편하게 마음껏 들려주지 못한 것이 어찌나 후회스러운지 모른다. 아이는 수없이 내게 엄마가 필요하다는 신호를 참으로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여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엄마는 그 신호를 모두 받아줄 수 없었고, 때론 무시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랑 놀고 싶어.’ ‘엄마랑 함께 있고 싶어’라는 그 소리 없는 아우성을 무시한 대가로 나는 한동안 언어발달이 늦어진 아이의 엄마로 혹독한 시간을 보내야만 했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아이에게 얼마나 미안한지 시간을 되돌려 내 딸아이의 세 살 나이로 돌아가 다시 키우고 싶은 마음이다. 그럴 수 있다면 세상에서 가장 안정된 환경 속에서 가장 즐겁게 놀아주는 추억을 가득 선물하는 엄마가 되고 싶다. 지금의 미안하고 미안한 이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온 마음과 시간을 아이를 위해 몇 배로 갚아주고 싶은 마음이다. 부모의 유효기간이 이렇게 짧다는 것을 진작 알았더라면 나는 더 좋은 엄마가 되는 일에 집중하려고 했을 것이다. 경력단절까지 각오하며 아이를 돌보는 이 땅에 엄마들이 나는 세상에서 가장 존경스럽다. 솔직한 마음이다. 적어도 세 살까지 엄마의 얼굴을 실컷 보며 부모의 보살핌으로 안정된 환경에서 자란 아이는 학습과 인성 발달에 좋은 전두엽이 활성화된다고 한다. 이미 그 시기를 지나 뒤늦게 책을 통해 육아의 고수들로 가득한 세상의 많은 엄마들의 경험담을 들으며 ‘엄마 노릇’이 어떤 것인지 배워가는 나로서는 안타까울 뿐이다. 하지만 얼마나 다행인가? 아이가 부모를 찾는 부모의 유효기간이 아이 나이 열 살 남짓 정도, 초등학교 정도 까지라면,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아직 남아 있다는 사실이. 마음이 급해진다. 아이와 쌓을 수 있는 추억의 시간들이 오늘도 이렇게 흘러가고 있으니. 아이와 함께 놀 수 있는 시간, 아이가 엄마와 놀아 줄 마음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 하루하루가 아깝다. 어린 시절 부모님과 좋은 추억이 많은 아이들은 훗날 힘든 일, 나쁜 일을 경험할 때에도 그 시간들을 잘 극복해낸다고 한다. 그 아이 내면에 그런 상황들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부모와의 추억 속에서 이미 키워내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또 어린 시절 부모와 시간을 자주 보낸 아이들은 성장을 해도 부모와 친구처럼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니, 아이가 부모를 필요로 할 때 마음껏, 온 힘을 다해 시간과 마음을 내어주어야 할 것 같다. 


 나는 아이가 이제 초등학교에 입학했지만 여전히 일을 하고 있다. 당장이라도 그만두어야지 생각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여전히 워킹맘이다. 하지만 예전과 상황은 달라졌다. 내 삶의 모든 중심, 우선순위는 언제나 ‘내 딸 아이다’ 아이의 시간에 맞춰 등하교를 시키기 위해 일하는 시간을 조절했다. 아이가 엄마를 필요로 하는 시간에는 나를 대신하여 일해 줄 사람들을 구했고, 살림은 정말 알량할 정도로 하고 있다. 청소며, 빨래, 반찬 만들기는 최소한으로 횟수를 줄여나가고 있다. 덕분에 수입은 줄고 지출은 늘었지만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엄청 늘었다. 일하는 동안 짬짬이 육아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면 오로지 아이에게만 집중한다. 적어도 아이가 엄마의 손길을 필요로 하고 찾는 시기까지 나는 계속 이렇게 할 생각이다. 하나밖에 없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 수 있는 기간이 평생이라고 생각했을 때에는 감히 그려지지도 않았던 모습이다. 하지만 아이가 엄마를 찾는 기간에도 유효기간이 있었다는 생각이 마음에 자리하자 육아에 대한 나의 모든 생각과 행동들에 변화를 감행할 수 있었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자기 계발을 위한 개인적인 일들을 한동안 할 수 없었지만, 이제 요령껏 짧은 시간, 주어진 자투리 시간들을 이용해서 나를 위해 사용하는 노하우도 터득해가고 있다. 놀라운 것은 오히려 시간이 많을 때보다 주어진 시간이 짧은 그 시간에 훨씬 몰입하여 무언가를 해내는 습관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바쁜 엄마들에게 주어지는 덤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 손을 잡고 아침마다 등교를 시키는 그 길이, 그 시간이 이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아이의 하교 시간에 맞춰 기다리는 그 시간도 설렌다. 학교 앞 문방구에 들려 뽑기도 하고, 불량식품도 사 먹고, 아이와 아이스크림 하나 쪽쪽 빨며 돌아오는 그 짧은 시간도 끝내준다. 이렇게 아이 키우는 재미에 빠져 있는 요즘, 육아는 체질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과거의 시간들이 떠오를 때가 있다. 그땐 입가에 쑥스럼 가득한 미소가 지어진다.

     

 어느 날 아이가 ‘엄마, 이제 뭐든지 혼자 할 수 있어요’라고 말하는 날이 오면 나는 어떤 기분이 들까? 아이와 함께 보고 싶은 영화가 생겼을 때 친구들과 함께 보기로 약속한 아이를 어떤 기분으로 마주하고 있을까? 어느 순간에든 아이의 성장에 감사하고 기뻐해야겠지만, 왠지 외로워질 것 같은 이 마음은 오로지 엄마 몫이겠지. 아이의 손을 너무 빨리 놓지 않는 엄마가 되고 싶다. 그 시간 동안 엄마로서 해줄 수 있는 많은 것들을 해주고 싶다. 엄마와의 따뜻한 시간, 추억들이 아이가 성장하며 마주할 힘든 시간들 속에서 힘이 되는 도구가 되었으면 좋겠다. 아이의 마음을 지켜주는 안전장치가 되었으면 좋겠다. 내 아이가 엄마 손을 너무 빨리 놓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작은 바람이 된다. 

이전 13화 세상에서 정말 기뻐서 하는 희생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