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된 아이를 키우다 보니 엄마의 과잉 염려가 아이의 성장에 방해가 될 때를 여러 차례 경험했다. 그중에 하나를 꼽으라면 책 읽기였다. ‘듣는 독서도 독서다.’라는 믿음이 강했던 엄마는 말로 표현이 어려운 아이를 대신해 어떤 질문이나 독후활동 없이 책만 열심히 읽어줬다. 독서를 꾸준히, 많이 한 아이들은 글을 읽고 이해하는 문해력이 높아져 학습에 큰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를 수없이 들어왔고, 내심 내 아이에게 그것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나 또한 사교육 현장에서 다양한 연령층의 아이들을 만나며 이 부분을 크게 공감하고 있었다. 그래서 다른 것은 몰라도 내 아이에게 책만큼은 정말 많이 읽어주고, 많이 읽히는 엄마가 되고 싶었다. 밤늦게까지 일하는 엄마였지만, 엄마의 책 읽기도, 아이에게 책 읽어주기도 게을리하지 않으려고 지금도 노력 중이다. 아이가 아침에 눈을 뜨면 아이에게 그림책 읽어주기로 하루를 시작했다. 책을 좋아하는 아이는 아니었지만 거부감을 보이지 않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면서 말이다.
아이에게 책 읽기가 즐거운 일이라는 사실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책을 읽은 후 내용을 묻거나 집중하여 들으라는 잔소리는 꾹꾹 묻어두었다. 아이가 스스로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기가 되면 충분히 읽기 독립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올 거라는 기대 가득으로 말이다. 아이에게 책 읽기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엄마가 들려주는 것도 읽는 것이다.’라는 강한 믿음으로 읽어주는 것에만 집중했다. 말하기를 좋아하는 아이도 아니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던 것 같다. 아이에게 처음 책을 읽어줄 때는 끊임없이 확인하고 싶고, 책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곧 마음을 접었다. 책을 읽으며 대화를 시도하면 귀찮아하는 반응만 보이는 아이를 붙잡고 독후활동을 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읽어주는 것만으로도 아이에게 무언가를 해주고 있다는 엄마 스스로의 만족감에 취했고, 아이를 품에 안고 책을 읽는 동안 서로 교감하며 느끼는 사랑의 감정이 무척 컸기 때문에 그 시간이 어떤 시간보다 행복하고 귀한 시간이었다. 별것 아닌 것 같은 엄마의 책 읽어주기 덕분에 글자에 익숙해진 아이는 한글을 깨쳐야 할 시기에는 큰 어려움 없이 글을 읽고 쓸 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단순히 글자를 읽을 수 있는 능력과 그 의미를 읽을 수 있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나는 아이를 초등학교에 입학시킨 후 그 사실을 알았다. 책을 많이 읽어준 아이는 어휘력도, 독해력도 좋다는데 왜 내 아이는 다를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교과서에 나온 문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닌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겨울 2~3개월 동안 수 개념을 익히고, 논술 문제집을 함께 읽으며 보냈다. 그때까지 학습을 위한 문제집 같은 것은 풀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옆에서 누군가 도와주지 않으면 혼자서는 문제를 읽고 푸는 것을 매우 어려워했다. 단지 문제를 풀어본 경험이 없어 혼자 해결하지 못한다고만 생각했지, 아이가 문장 이해력, 독해력이 안돼서 그런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었다. 교과서를 술술 읽으면서도 그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니 수학 익힘 책 속의 스토리텔링식 문제들은 어김없이 틀려왔다. 어찌나 어려워하고 힘들어하는지 아이는 아침에 등교하여 교실 칠판에 그날 공부할 내용으로 ‘수학 익힘’이라는 과목이 있으면 들어가지 않겠다고 떼를 쓰기도 했다. 그렇게 4월 한 달을 보냈다. 더하기, 빼기를 모르는 것도 아니고, 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닌데 아주 단순한 내용조차 식으로 세우지 못하는 아이와 함께 초등학교 1학년 4월을 보내면서 나는 책 읽기 방법에 약간의 변화를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혼자 읽어주던 것에서 한 줄씩 읽기, 질문하며 읽기, 소개하며 읽기 등 다양한 방법으로 읽은 후, 아나운서가 되어 발표하기, 한 줄 독서록 쓰기(이 방법은 7세 때 시도했다가 아이의 거부감이 있어 잠시 멈췄던 방법이지만 다시 시도했다.), 기억나는 단어 찾기, 책 속 단어로 문장 만들기 게임 등을 시도하며 아이의 이해력은 차츰차츰 나아졌다. 물론 처음부터 아이의 반응이 긍정적이지는 않았다. 질문이 귀찮다며 짜증을 내기도 하고, 마치 공부를 해야 하는 것처럼 학습으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그럴 땐 아이가 좋아하는 끝말잇기나 초성게임을 하면서 책 속에 나온 어휘들을 살짝 끼어넣는 식으로 놀이를 유도했다. 그때 아이가 모르는 어휘에 대해 “엄마, 그게 뭐야?, 그런 단어가 어디 있어?”라는 반응을 보이면, 엄마인 나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열심히 단어를 설명했다. 그 단어로 간단한 문장도 만들어 적극적으로 대답해 주었다. 아이 스스로 자연스럽게 알아가도록 하는 방법은 늦된 내 아이에게는 늘 커다란 부담처럼 보였다. 그래서 아이와 하는 모든 놀이에는 항상 엄마인 내가 먼저 보여주는 것이 도움이 되었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짜증이 폭발하고, 자신감을 잃어갔다. 옆에서 살짝살짝 힌트를 주거나 엄마가 먼저 보여주는 방법으로 아이와 즐거운 독후활동을 해보려고 정말 많은 시도와 노력을 해보았던 시간들이 있었다. 이후에도 한동안 이런 활동들을 이어갔다. 독서 후 간단한 질문과 대답만으로도 아이는 대화가 이어질 수 있을 만큼 성장해갔다. 마냥 아이를 어리게만 보았던 엄마, 책을 싫어하게 만드는 행동은 해서는 안 된다는 엄마의 과잉 염려가 그동안 아이를 발전된 독서가로 이끌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오랫동안 듣는 독서를 꾸준히 했음에도 결국 아이의 문해력을 지체시키며 결국 아이의 성장을 방해했다는 생각을 하니 스스로 한심했다는 반성도 되었다. 그러나 솔직히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변명을 하자면, 우리 아이는 워낙 성격이 내성적이고, 자기표현도 서툴고, 말도 늦되고, 발음도 부정확해서 한 때, 언어치료까지 받았던 아이다. 그런 아이에게 무언가 적극적인 시도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한다는 것은 소심한 엄마에겐 엄두가 나지 않았다. 엄마의 요구들이, 욕심들이 혹시나 아이의 말문을 닫아버리면 어쩌나, 그러다가 마음의 문까지 닫아버리면 어쩌나 온갖 걱정들이 자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아이를 세심함을 넘어, 지나친 걱정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던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책 읽기 방법에 변화를 주면서 아이의 더디지만 발전되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이제는 좀 더 적극적인 엄마 모드로 전환해야겠다 생각했다.
그렇게 늘 아이와 무엇으로 어떤 대화를 하며 놀아줘야 할지가 숙제처럼 고민이었던 엄마에게 책은 아이와 대화를 나누는 최고의 도구가 되어주었다. 책을 읽은 후 아이와 다양한 방법으로 대화를 나누고, 질문을 하면서 상대방의 이야기에 좀처럼 집중하지 못했던 아이는 다른 사람 이야기에 집중하여 들어주는 능력도 조금씩 생겼다. 매일 아침 일어나 소리 내어 책 한 권 읽기도 거뜬히 해내고 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수학이 어려워 학교생활이 재미없다는 아이가 수학에 자신감이 생기면서 즐거운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 또 한 가지 다양한 책 읽기 방법을 통한 큰 수확이 있다면, 초등학교 1학년 아이가 엄마가 읽어주던 논어 책에 관심을 보였다. 책 속 한자를 보며 “이것도 글씨야?”라는 질문으로 호기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나는 한자 관련 만화책 몇 권을 함께 읽으며 궁금한 것들에 대해 아이와 얘기를 나누고 질문하는 독서를 할 수 있었다. 아이가 관심을 보이니 책 읽어주는 맛도 나고, 귀차니즘 엄마는 관련 영상도 찾아보는 적극성도 보이면서, 그 사이 아이는 한국어문회에서 주관하는 5급 한자능력시험까지 치를 수 있을 만큼의 실력으로 한자를 익혔다. 남들에게는 별것 아니겠지만, 어떤 활동이든, 어떤 성장에서든 늘 한 템포씩 늦된 아이를 키우는 내게는 모든 엄마들이 한 번쯤 가져본다는 ‘우리 아이 천재 아니야?’ 하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보았다. 아이의 능력을 과대평가해서도 안 되겠지만 너무 과소평가해서 그동안 시도해보지 못한 것들이 너무나도 많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 엄마가 아이와 책 읽기 방법, 학습 방법을 바꿔 일단 시도해보고 싶은 활동들을 하나씩 꺼내 아이와 시간을 보내면서 느꼈다. 아무리 늦된 아이라고 할지라도 아이에게 맞는 재미있는 책 읽기 방법, 도움이 되는 책 읽기 방법은 있다는 사실을. 그것을 찾기 위해 엄마가 깊이 고민하고, 적용하고, 다시 시도하기를 반복하다 보면 방법은 꼭 찾아진다는 사실을. 어느새 아이는 훌쩍 자라 엄마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성장해있을 거라는 사실을.
글자만 읽는 아이가 아닌, 의미를 읽어낼 줄 아는 아이를 기대한다면, 아이의 성향에 따라 방법을 달리하며 내 아이에게 맞는 다양한 책 읽기 방법을 시도해 봐야 한다. 늦된 아이는 좀 더 적극적인 책 읽기 방법이 도움이 되었다. 아이를 키우며 아이를 향한 어떤 기대감이 생길 때마다 그 시작은 언제나 엄마의 판단이 아닌, 아이와 함께 이루어졌다. 엄마의 일방통행은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서로를 지치게 할 뿐이다. 엄마와 아이가 한 팀이 되어 같은 방향을 바라볼 때, 성장과 발전으로 이어지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이런 생각을 하며 되돌아보니 그동안 끝을 보지 못한 수많은 것들에는 언제나 엄마인 나의 ‘중도 포기’가 있었을 뿐이었다. 어린 내 아이는 한 번도 중도 포기가 없었음을 나는 뒤늦게 비로소 깨달았다. 책 한 권 읽어주는 것을 숙제처럼 생각하며 재미없는 책 읽기를 해왔던 엄마였다. 빨리 해치우고 싶은 마음, 아이가 힘들어할 거라는 엄마의 과잉 염려, 아이의 짜증을 받아주기에는 너무 지친 엄마의 마음이 먼저였다. 엄마인 나는 좀 더 다양한 방법을 찾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런 노력과 시도를 게을리했던 게 사실이다. 그러니 늦된 아이에게 영혼 없는 엄마의 책 읽기가 얼마나 도움이 되었겠는가? 몇 년을 읽어줬어도 아이의 문해력과는 거리가 먼 그저 글자만 읽는 아이, 의미를 읽어내지 못하는 아이로 남게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이유들을 제쳐두고서라도 아이와 책 읽기를 하든, 독후활동을 하든 중도 포기의 가장 큰 원인을 찾자면, 아이와의 활동에서는 어김없이 엄마의 감정조절이라는 큰 산이 앞에 놓여있었고, 또 어김없이 그 앞에서 무너졌던 것이 이유일 것이다. 이제 조금씩 늦된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의 시선을 바꾸고, 책 읽기 방법을 달리하면서 나는 아이에게 글자만 읽는 아이가 아닌 의미를 읽는 아이가 될 수 있도록 키워가려고 노력 중이다.
아직도 갈 길이 멀다. 하지만 조바심은 없다. 내 아이의 속도와 엄마인 내 마음의 속도를 일치시키는 것이 중요하지 다른 무엇이 더 중요하겠는가? 의미를 읽는 책 읽기는 분명 책을 읽어갈수록 아이의 호기심을 자극할 것이다. 거기에 세월이 더해지면 아이의 지적 호기심에 발동이 걸리기 시작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아이의 학습능력도 뒤처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기니 더욱 열심히 읽어주고, 함께 읽으며 생각하고, 책 속의 많은 것들을 같이 나누는 시간을 더 많이 가져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