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꿈대로되는사람 Oct 21. 2021

세상에서 정말 기뻐서 하는 희생

 아이를 낳고, 아이를 키우면서 알게 되었다. 세상에는 정말 기뻐서 할 수 있는 희생도 있다는 것을. 아마도 엄마가 되고 부모가 된 사람만이 경험할 수 있는 특권이 아닐까 생각한다. 엄마의 헌신적인 사랑으로 아이의 인생이 결정될 수 있다는 말의 뜻을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다. 


 유난히도 내성적이고, 까다로운 아이, 말까지 늦되어 가슴 졸이게 했던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어느 순간에든 아이가 세상으로부터, 다른 사람들로부터 상처 받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해야 하는 엄마가 되었다. 그중에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사람들의 시선과 생각 없이 내뱉는 말들이었다. 아이가 다섯 살 때까지는 겪지 않아도 될 경험이나 느끼지 않아도 될 감정들에 부딪힐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고, 나는 지금도 그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엄마인 나에게 다른 아이들과 어울릴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아 아이의 언어도, 사회성도 늦어진다고 얘기했지만 나는 생각이 달랐다. 만약 아이가 그런 기회를 원했다면 나도 언제든 그렇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는 몇 번을 물어도 그런 환경을 원하지 않았고, 오히려 낯선 환경에 놓인 몇 시간으로도 많이 피곤해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나는 내 아이의 성향을 잘 알고 있고 전적으로 사랑을 보여주는 사람들과의 만남이나 돌봄에 우선했다. 여섯 살에 처음 유치원이라는 곳에 갔을 때 예상대로 어려움이 있었지만, 여전히 아이를 보호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강했다. 하지만 어느 곳에든 아이를 맡겨본 엄마들은 알 것이다. 불만이 있어도, 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라도 엄마이기에 자존심 따위는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을. 나는 아이의 성장 속도, 적응속도에 맞추어 진심을 다해 부탁한다는 말을 수없이 했다. 집중력도 떨어지고, 언어도 늦고, 단체 생활도 처음 해보는 아이가 규칙을 잘 따를 수 있다는 것이 오히려 잘못된 생각 아닌가? 하지만 어쩌겠는가? 아이를 맡겨두었으니 선생님께 미움을 사면 어쩌나, 친구들에게 따돌림이라도 당하면 어쩌나, 어릴 때 받은 상처들은 고스란히 아이의 가슴에 씨앗으로 남아 언제든 그 흔적이 드러난다는데... 나는 엄마이기에 내가 할 수 있는 무엇이든 했고, 참아낼 수 없는 감정 따위는 없다고 생각했다. ‘자식 키우는 엄마가 참고, 머리를 숙이며, 겸손한 것은 엄마의 당당한 모습이다.’, ‘교만하고 잘난 체 하는 엄마는 열등의식으로 똘똘 뭉친 엄마다.’ 마음속으로 이런 말들을 주문처럼 되뇌며 자존심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모든 시간들을 나는 참 잘 견뎌내고 있었다. 아이를 보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수없이 갈등하면서도 등원을 시켰다. 내 아이가 겪는 힘듦이 고스란히 느껴지고, 아이를 바라볼 때마다 느껴지는 안쓰러움이 마음을 아프게도 했다가, 무겁게 짓누르기도 했지만 나는 엄마로서 감당해야 할 희생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말로 다 못할 마음고생도, 눈물도 있었지만 살면서 내가 얻은 가장 큰 행복이 무엇인지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내 아이와 엄마인 내가 함께 서로의 몫을 담당하며 지나온, 힘들었지만 귀하고 감사한 8년의 시간이었다고. 그렇게 나는 엄마로 살면서 세상에는 정말 아름답고, 기뻐서 하는 희생도 있다는 것을 처음 배워가고 있다. 


 아이가 더 어렸을 때는 미처 몰랐다. 엄마 손을 많이 필요로 했지만 보채고 매달리다가도 일하는 엄마의 상황을 스스로 받아들인 듯, 엄마가 가고 나면 잘 논다는 얘기에 어느 정도 마음을 놓고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내 아이 같은 성향의 아이에게 그 시간은 얼마나 힘든 시간인지, 엄마에겐 또 얼마나 많은 후회들을 만들 수 있는 시간이었는지 나는 아이가 커가면서 알게 되었다. 내성적이고 수줍음이 많은 데다가 늦되기까지 하는 아이에게는 스스로 적응해 갈 수 있는 기회보다는, 모든 것을 받아주고 맞춰주기만 하는 양육자보다는, 더 적극적인 양육방법이 필요했다. 함께 소통하며 배울 것들, 느껴야 할 것들을 적극적으로 가르쳐주며 끊임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대가 필요했음을 뒤늦게 알았다. 그것은 엄마밖에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더욱이 외동으로 크는 아이였기 때문에 엄마가 늘 곁에서 함께 하고 있다는, 사랑하고 있다는 마음의 안정을 주어야 했다. 그것은 애착의 문제가 아니라, 채워지지 않은 욕구의 문제였다. 아이가 늦되다는 사실은 참으로 엄마에게 많은 것을 깨닫고 공부하게 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내 아이에게 ‘엄마 품에 안겨서 클 권리’를 주지 못한 엄마였다. 일하는 엄마여도 얼마든지 아이와의 시간을 만들 수 있었을 텐데 나는 그런 노력이 부족했던 엄마였다. 그래서 아이는 늘 엄마를 고파했고, 자신의 의사표시를 어느 정도 할 수 있게 되었을 때는 얌전히 있을 테니 엄마의 일터로 데리고 가달라고 사정까지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아이가 원할 때는 언제든지 아이를 데리고 출근을 했다. 일하는 시간을 줄여 아이와 함께 했다. 이것도 엄마인 내가 개인사업을 하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니 감사했다. 그러면서 직장맘들의 마음고생과 경력 단절 엄마들의 속사정을 비로소 충분히 이해하고, 백번 공감할 수 있게 되었다. 새로운 사업장을 오픈할 때 나는 아이가 머물 난방이 되는 작은 공간을 만들어 두는 것을 우선으로 했다. 하지만 엄마가 일하는 시간 아이를 방치하는 것 같아 여러모로 신경이 쓰였다. 아이를 돌봐주던 아이의 이모가 퇴근하는 시간에 맞춰 아이를 보내고, 아이가 저녁을 해결할 그 시간 동안 빨리 일을 마치고 들어갔다. 하지만 아이는 늘 곁에 있는 엄마가 좋은지 초등학생이 된 지금도 일주일에 2~3일은 엄마와 함께 일터에 함께 머물며 늦은 시간 귀가를 원한다. 혼자 놀다 지쳐 잠든 아이의 모습이 안쓰러울 때도 있지만, 아이는 전보다 훨씬 안정적이고, 밝아졌다. 그 옛날 늘 농사일로 바쁘신 내 어머니가 들판과 멀리 떨어진 시골집에 아이들만 둘 수 없어 볏 짚단을 쌓아 우리 어린 형제들을 그 안에 두고 일을 하셨단다. 그 말씀이 떠오를 때마다 내가 느끼는 그 감정, 그 고맙고 따뜻한 감정을 먼 훗날 내 아이가 느끼고 떠올릴 수 있다면 지금의 어린 자신을 데리고 조금은 불편한 환경이지만 함께 하려고 했던, 돌봐주고 싶었던 엄마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해주지 않을까? 아이를 일터로 데리고 출근하기까지 많은 생각과 용기가 필요했다. 그리고 눈치를 봐야 하는 여러 상황들과 마주할 때마다 무슨 큰 죄라도 저지른 것처럼 운영자로서 기가 죽고 할 말을 할 수 없을 때도 있었다. 부모님들이 상담을 오시거나 학생들의 공부에 조금이라도 방해가 된다 싶으면 나는 언제나 가시방석이었다. 하지만 아이 앞에서는 그런 내색을 할지 말았어야 했다. 아이도 가끔 눈치가 보였던지 “엄마, 이제 내가 조용히 할게.”라고 말을 할 때면 우리는 서로를 꼭 껴안았다. 그리고 나는 불편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직이 얘기했다. “괜찮아, 엄마가 마음 한번 숙이면 될 일이야. 널 위한 일이라면 무얼 못하겠어. 넌 엄마에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이고, 있는 그대로의 널 정말 사랑해. 그리고 언제나 엄마는 네 편이야. 맨날 조용히 하라고 해서 미안해. 엄마한테 미안한 마음 갖지 않아도 돼.” 앞으로도 아이가 어느 정도 클 때까지는 수없이 겪어내야 할 과정들을 매일매일 경험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나는 지금 너무 행복하다.      


 이 글을 쓰는 내내 부모님이 떠올랐다. 지금은 세상을 떠나신 내 아버지는 너무도 가난한 살림에 농사일로 우리 4남매를 키우시면서도 늘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빠가 머슴을 살아서라도 너들 하고 싶은 것은 시켜줄 테니 뭐든지 미리 포기하지 말고 아빠한테 얘기를 혀.” 어떤 희생도 나를 위해 각오가 되어있다는 아버지의 그 말씀이 지금껏 살면서 어느 순간에도, 아무리 힘든 어떤 위기의 상황에서도 나를 포기하지 않고 버티게 했다. 아버지의 그 말씀은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고, 누리며 살 수 있다는 믿음으로 살아가게 했다. 그처럼 내 아이에게 나도 그런 엄마가 되고 싶다. 엄마가 되어 아이 때문에 힘든 순간마다 이미 세상을 떠나신 아버지께서 해주신 그 말씀이 내가 기댈 수 있는 보루인 것처럼 내 아이에게 엄마인 내가 마지막 보루가 되어 힘들고 지칠 때마다 찾아와 위로를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어떤 잘못을 해도, 어떤 문제가 생기더라도, 어떤 고난이 있을지라도 엄마는 모두 품어줄 거라는 그런 마음이 내 아이 가슴속에 심어지면 좋겠다. 세상에서 정말 기쁜 희생을 경험할 수 있게 해주는 내 아이. 지금 내 곁에 잠든 아이에게 한없이 고맙다. 

이전 12화 늦된 아이의 문해력, 책 읽기 방법에 달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