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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대로되는사람 Oct 21. 2021

늦된 아이도 반드시 성장한다

  성격도 내성적이고, 발음도 정확하지 않아 또래 친구들이 자신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면서 아이는 더욱 말하는 것을 꺼려했다. 무언가 해야 될 말이 있거나 요청할 것이 있으면 언제나 “엄마가 해.”, “엄마가 말해줘.” 하며 내 손을 이끌거나 뒤로 숨었다. 몇 번씩 직접 해보라고 얘기했지만 쉽게 용기를 내지 못하는 아이를 보면 또 엄마인 나는 답답함과 속상함이 동시에 몰려오다가 때론 화가 나기도 하고, 때론 안타까움에 한없이 아이가 안쓰럽기도 했다. 그럼 나는 늘 “우리 딸이 내성이어서, 부끄러움을 많이 타서 말을 잘 건네지 못해요.”라고 설명하는 날이 많았다. 


 다른 집 아이들은 하루 종일 종알거리는 소리로 정신이 없다는데 어찌 된 일인지 우리 아이는 늘 말도 없고 조용하기만 했다. 묻는 말에도 듣는 둥, 마는 둥 할 때에는 못마땅하여 화를 내거나 야단을 쳐보기도 했다. 그러나 별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다그치고, 무서운 얼굴로 변한 엄마의 모습에 울음을 터뜨려 그 상황을 수습하기 바쁘고, 달래느라 진땀을 빼는 날이 많아졌다. 더욱이 오후에 출근해 밤늦은 시간까지 다시 일하는 엄마로 돌아가야 하는 그런 날은 나를 더욱 힘들게 했다. 몇 번이고 아이와 시간을 더 많이 보내주기 위해 일을 그만두어야 하나 고민하고 또 고민하기도 했다. 내성적이고, 말 늦은 아이에게 편하게 말할 대상, 말문을 터줄 누군가가 스물네 시간 붙어서 돌봐줘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형편상 여의치 않았고 또 한편으로는 육아도, 살림도 알량하게 간신히 해내는 내가 온종일 아이 옆에 붙어있는다고 해서 아이의 성격이 확~바뀌거나 늦은 아이의 언어가 확~트이는 일은 없을 것 같았다. 대신 짧은 시간 집중 육아를 계획했다. 아이의 시간을 3시간~4시간 단위로 나누어 엄마가 일하러 간 시간에도 누군가와 대화를 할 수 있도록 말할 대상을 다양하게 했고, 말할 방법들을 다양하게 찾았으며, 의도적으로 그런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할머니, 이모, 조카, 놀이터 친구들, 마트나 문구점, 커피숍 사장님들까지 동원하여 아이가 한 마디라도, 인사라도 나눌 기회를 만들었다. 또 아이가 말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들을 계획적으로 연출하기 시작했다. 정말 책이며, 역할극, 현장체험, 야외활동 놀이, 문화센터까지 다양하게 시도해 보았다. 그러는 사이 더디지만 아이는 변하기 시작했고, 시간은 내 편이었다. 


 병아리가 껍데기를 쪼는 것을 ‘줄’이라고 하고, 어미 닭이 알을 쪼는 것을 ‘탁’이라고 한단다.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부화가 가능하다고 하여 ‘줄탁동시’라는 말이 있다. 아이를 키워보고, 가르치는 일을 하다 보니 아이들은 매 순간 부모의 ‘탁’이 필요할 때 자신의 부리로 껍데기를 두드리는 신호를 보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와 동시에 그 신호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어른들, 부모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아이를 키우며 그 신호를 빨리 알아듣고 아이가 필요로 하는 것을 도와주고, 채워주려는 노력을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과 뒤늦은 후회가 찾아왔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때론 아이가 하는 거친 말, 거친 행동들이 신호일 수도 있고, 부모의 기대에 못 미치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나 반응들이 신호일 수도 있다. 그럴 때 늘 바쁘다는 이유로, 방법이 틀렸다는 이유로, 감정이 앞서 아이의 신호를 무시해버릴 때도 있었다. 육아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성격까지 급한 엄마 밑에서 자라는 우리 딸은 빨리 나오지 않는다고 재촉하는 엄마 때문에 자신이 두드린 부분이 아닌 여기저기 얼마나 많은 부분들을 쪼였을까? 그리고 얼마나 많이 아팠을까? 생각해보니 눈물이 난다. 제대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도 못할 나이였다. 말로 표현하는 것이 또래보다 늦고 서툴렀던 탓에, 내 아이는 더 많이 아파하고 상처 받았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무너진다. 이후 나는 기다리지 못해서 아이를 제대로 도와주지도 못하면서, 여리고 여린 딸아이의 보석 같은 알을 손상시킨 대가를 1년 남짓한 시간 동안 톡톡히 치러내야만 했다. 그 시간을 겪으면서 무엇이든 아이의 입장에서, 아이의 속도에 맞춰가는 엄마가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이 시기에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나 말 따위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아이를 저렇게 키워.’ 하는 한심한 시선, ‘저 엄마 참 힘들겠다.’ 하는 안쓰러운 시선, 그 시선에서 좀 더 자유로워지고 감정이 무뎌질 수 있으면 참 편안해진다. 아이에게는 잘못된 것에 대해 분명하게 말해주되, 감정을 가라앉히고 같은 상황이 되었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수십 번 반복시키면서 가르쳐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문제행동이나 늦된 언어로 무너질 때는 여전히 많았지만, 나는 더 이상 또래 아이들과 내 아이의 성장 속도를 같은 눈높이에 두지 않기로 했다. 아동심리학자들은 아이들에게는 결정적 시기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민감한 시기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이 말이 나에게 한 동안 참 위안이 되었던 적이 있었다. 수없이 많은 날들을 워킹맘으로 살면서 사람들이 말하는 아이의 결정적 시기들을 너무 많이 놓쳐버려서 늘 불안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준비도 안된 아이를 이것저것 시켜보고, 억지로 부여잡고 시도해 본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물론 여러 가지로 지금은 또래 아이들과의 거리를 좁히는데 도움이 되었지만 제대로 된 방법이었는지 늘 고민이 많았다. 가끔 아이가 상처 받는 일은 없었는지 아이의 입장이 되어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수정하고, 반성하며 여기까지 이끌어왔다. 그리고 내가 내린 결론은 아이에게 분명 결정적 시기가 있다 하더라도 언제나 되돌릴 수 없을 만큼 너무 늦어버린 때는 없다는 사실. 아이의 결정적 시기, 민감한 시기는 아이마다 다르고, 그 민감한 시기에 내 아이에 대한 세심한 관찰이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너무 멀리 와버린 것 같은 두려움과 걱정스러움 대신 좀 더 적극적인 액션을 취할 수 있다면, 아이는 분명 변한다. 


 엄마가 변화하려는 노력의 시간들, 더디게 더디게 따라와 준 아이의 시간들, 그런 시간들이 차곡차곡 쌓이는 동안 아이는 이제 자신의 말을 막지 좀 말라며, 자기가 말할 때는 끼어들지 말라며 내게 주의까지 주면서 천천히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말하고, 학교에서 있었던 상황들을 설명해준다. 가끔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하거나 논리적이지도 못하지만 나는 일단 무엇이든 말하려고 하는 아이가 기특하고 고맙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만 해도 엄청 걱정이 많았는데 날마다 결석 없이 학교에 다니는 아이를 보면 기적 같은 생각이 든다. 2개월 정도 학교생활을 끝낸 시점에 학부모 참관수업에 다녀온 날은 감격스러워 아이 아빠와 찍어 온 동영상을 보고 또 보며 얘기를 나누었다. “어쩜, 우리 딸 모둠활동을 이렇게 잘하지?”, “친구들에게 묻기도 하고 받아 적기도 잘하네.”, “선생님의 지시사항에 집중해서 듣고 반응하는 것 좀 봐.”, “자기 차례가 되니까 쭈뼛거림이나 망설임도 없이 나가서 발표하는 것 좀 봐.” 우리 부부의 대화는 밤늦은 시간까지 끝날 줄 몰랐다. 손을 들고 발표하는 아이가 아니면 어떤가?, 꼭 정답을 맞히는 아이가 아니면 어떤가?, 좀 산만해도 친구가 말할 때 들어주며 기다려주고, 선생님의 지시사항에 따를 줄만 알아도 훌륭한 1학년 아닐까? 아마 우리 아이가 자신의 차례가 되어도, 친구가 물어도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었다면, 선생님의 지시사항에 반응하지 않는 아이로 남았다면, 얼마나 가슴이 무너졌을까? 아이에게 말할 대상들이 날마다 늘어나고, 말할 환경들이 날마다 주어지는 학교생활을 목격하면서 나는 학교 교육에 믿음이 갔다. 잘 이끌어주신 첫 학교생활의 담임선생님께도 얼마나 감사했던지 학교생활의 첫 시작인 1학년 교실 환경에서 친구들과 선생님이 아이의 인생에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크게 깨닫는 시간이었다. 참관수업이 끝나고, 아이가 달려와 내게 안겼을 땐 고마움과 대견함에 순간 울컥했다. 잠시 후에 딸아이는 한 아이의 손을 이끌며 내게 다가와 “엄마, 나하고 가장 친해진 친구야. 나한테 친절하게 잘해주는 마음이 보석처럼 예쁜 친구야.”라고 말하며 지희라는 친구를 소개한다. 유치원을 졸업할 때까지 친한 친구 한 명 없이 말 잘하고, 야무지고, 똑똑한 친구들 사이에서 늘 혼자였던 아이가 단짝이 생겼다며 엄마에게 자랑하는 모습도 참 고맙고 나를 행복하게 했다. 내 아이와 말할 소중한 대상이 엄마가 없는 공간에 함께 해준다는 사실이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나직이 말했다. ‘지희야, 고맙다. 귀한 인연으로 어디를 가든 잘되길 늘 널 위해 기도할게.’ 처음 교실 안에 들어섰을 때 뒤에 서서 함께 했던 엄마들의 표정은 참으로 다양했다. 속이 터지겠다는 표정, 아쉬운 표정, 기대에 찬 표정, 걱정스러운 표정. 하지만 참관수업이 끝난 후에는 다소 아쉬운 표정을 한 엄마들은 있었지만 모두들 안심하는 표정에서 나는 읽을 수 있었다. ‘우리 아이, 괜찮아.’ 하는 엄마들의 속마음을. 아이들은 반드시 성장한다.


 그날 이후 나는 더욱 확신이 들었다. 내 아이의 민감한 시기에 엄마가 집중할 때 아이는 크게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늦된 아이, 내성적인 아이에게는 단 한 명의 대화 상대가 얼마나 인생에 귀한 선물이며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그리고 내 아이의 속도와 몰입의 시기는 다른 아이들과 비교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엄마인 내 가슴에 자리 잡았다. 그러자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내 아이의 잠재력을 들여다보는, 기대하는 엄마가 될 수 있었다. ‘늦된 아이는 잠재력이 큰 아이다.’ 내 아이가 신호를 보낼 때 그 신호를 보내는 방향에서 조용히 엄마의 부리를 가져다 대어줄 수 있는, 그리고 아이의 속도에 맞춰 즐겁게 화음을 넣듯, 아이의 박자에 반응하는 엄마가 되기로 결심해본다. 내 아이에게 평생 가장 소중한 친구이며 내 아이만을 위한 단 한 사람이 꼭 필요하다면, 그건 언제나 엄마인 내가 될 수 있도록 난 움직이는 엄마가 될 것이다. 내 아이가 세상에 나아가 새로운 세상에서 자신만의 멋진 영역을 만들어낼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오늘도 아이가 더 성장하는 그런 좋은 날이 됨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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