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와 멀리 떨어진 시골에서 자란 나의 어린 시절은 물질은 부족했지만 참으로 마음은 풍요로웠던 시절이었다. 집집마다 서너 명 정도의 형제자매들이 있는 것이 보통이었기 때문에 늘 동네는 아이들로 떠들썩했다. 집에 있다가도 밖에서 아이들 소리만 나면 바로 뛰쳐나가 함께 어울려 놀던 시절이었다. 늘 농사일로 바쁘신 부모님들이 어느 집이나 부재 상태였기 때문에 어느 집 할 것 없이 아이들끼리 이 집, 저 집, 동네 여기, 저기를 어울려 다니며 시간을 때우는 것이 당연하던 때였다. 숙제 외에 따로 공부라는 것을 해본 기억이 많지 않다. 그러나 그런 자유롭고 놀 자리가 항상 마련된 환경 속에서도 나는 ‘못 노는 아이’ 중에 한 명이었다. 내 아이에 대해 알기 위해 심리에 관한 책을 읽으며 알게 되었다. 부모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면 아이의 지금 모습이 이해될 수 있다는 내용. 그리고 잠시 내 어린 시절을 떠올려봤다.
어린 시절 나는 언니, 오빠도 있고, 동생도 있는 환경에서 자랐지만 유독 혼자 노는 것을 좋아했고, 말도 늦어서 엄마의 속을 적지 않게 태웠던 아이였다. 어쩜 이런 것까지 내 아이는 나를 꼭 닮았다. 또래 아이들이나 동네 언니, 오빠들이 숨바꼭질, 공놀이, 잡기 놀이, 고무줄놀이, 사방치기 등을 하며 놀 때에도 나는 늘 집 옆에 있는 작은 농수로에서 엄마, 아빠가 벗어놓은 더러워진 목장갑이나 걸레 등을 빨며 놀고, 뜨개질 실이나 흙장난을 하며 놀았다고 한다. 여린 아이 손으로 하도 빨래를 즐겨서 손끝이 모두 헐어 야단도 치고, 언니 오빠들에게 딸려보네 놀게도 해보고, 여러 시도를 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한다. 학교에 입학시켜야 할 시점에는 이름조차 쓸 줄 모르는 상태였고, 의사표현도 정확하게 하지 못하는 아이여서 어떻게 학교에 보낼지 걱정이 태산이었다고 하신다. 그랬던 어린 나에게 변화가 생겼다. 어느 날 매일 같이 농수로에 앉아 빨래를 하던 아이가 물 위로 죽은 강아지가 떠내려오는 것을 보고 얼굴이 하얗게 질려 기겁을 한 모습을 한 채 집으로 뛰어왔단다. 그 이후로 다시는 그곳에 가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놀 거리가 사라진 아이는 작은 돌멩이 5개로 공기놀이를 하고 있던 동네 친구들과 언니들의 현란한 손동작에 매료되어 매일 혼자서 연습을 했더란다. 작고 둥근돌을 끊임없이 주어와 가지고 놀기 시작했고, 점점 다른 아이들 속에 들어가 편을 나누어 함께 내기도 하고, 점수를 얻기도 하면서 묘한 경쟁심과 성취감을 맛보더니 자연스럽게 그 아이들과 다른 놀이도 하며 놀더란다. 그렇게 발동이 걸린 나의 놀이는 해가 뉘엿뉘엿 져서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계속되었고, 결국 엄마가 찾아 나설 때까지 끝나지 않았다고 한다. 밥 먹으라고, 때 되면 들어오라는 엄마의 잔소리가 이어질 정도로 놀고도, 내일 다시 놀 것을 친구들과 굳게 약속까지 하고서야 아쉬운 발걸음을 집으로 옮길 정도의 아이가 되었으니 정말 놀라운 변화였던 것 같다. 학교에서는 글도 몰라 늘 위축되고, 야단맞는 아이였고, 부모님께는 늘 기대에 차지 못하는 소극적인 아이였던 내가 이래저래 혼이 나면서도 큰 스트레스 없이 자기 주도적으로 놀 줄 알며, 지금껏 잘 살아가고 있는 어른이 될 수 있었던 건 바로 어린 시절 내 놀이들의 저력 때문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기억을 되짚어 나의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을 떠올려보니 학교에선 한글도 모르는 열등생이었고, 집에서는 중간 아이로 별 존재감도 없었던 아이였다. 그런데 항상 머릿속엔 놀 궁리가 가득했고, 혼자든, 여럿이든 언제나 놀 수 있는 환경에서, 마음껏 놀 수 있다는 희망은 공부든, 존재감이든 그 어떤 것도 문제가 되지 않도록 하는 나의 치유제였다. 공부를 못해도, 특별한 사랑을 받지 못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매일 온몸으로, 온 마음으로 마음껏 놀 수 있었으니까. 매일 다른 방법들을 연구하며 놀고, 싸우고 또 화해하고, 또 싸우기를 반복하며 놀면서 화해의 기술도, 매집도 키워가며 그렇게 자랐다. 요즘은 초등학생들에게도 우울증과 무기력증으로 학습의욕과 사회성이 떨어지는 아이들이 많다고 하는데, 정말 나의 어린 시절은 우울할 틈이 없었다.
요즘 아이들은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을 많이 어려워한다고 한다. 함께 있어도 손에는 게임기나 휴대전화를 들고 각자 노는 아이들이 되어버린 요즘, 어울려 살아가는 것이 불편해 혼자 사는 ‘혼족’이 늘어나는 요즘 세상에서 과연 나는 내 아이를 어떻게 키워주는 엄마가 되어야 할까? 고민이 깊어진다. 그런데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내 아이에게 ‘놀 권리’와 ‘놀이 경험’을 빼앗는 엄마가 되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이다. 공부를 강요하는 엄마보다는 아이를 어떻게 하면 잘 노는 아이로 키울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이 어쩌면 정말 필요한 엄마의 고민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물론 나는 현실 엄마이기에 아직 아이에게 시킬 모든 것들을 제쳐두고 아이의 모든 시간을 놀이에 내어줄 만큼 배짱 좋은 엄마는 되지 못한다. 하지만 노력해볼 생각이다. 그동안 바쁘다는 이유로 몇 년 동안 마음속에만 두었던 아이와의 시간 보내기를 하나씩 행동으로 옮기면서 엄마인 나도 참 많이 변해가고 있다. 나는 아이와 놀아주는 것이 가장 힘들었던 엄마였다. 또래보다 늦은 아이에게 무조건 뭐라도 하나 더 가르쳐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 있던 엄마였다. 그런데 ‘아이의 놀 권리’를 떠올릴 수 있을 만큼의 마음 성장은 분명 가슴 깊은 그곳에 아직도 좋은 추억으로 차곡차곡 쌓였던 엄마의 어린 시절 놀이시간 덕분이다. 그것을 가르쳐준 나의 어린 시절 놀이 시간이 큰 선물처럼 느껴진다. 아이들을 모두 영재로 키운 엄마들의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리고 그 책 속의 엄마들은 모두 하나같이 공통점이 있었다. 정말 학습시간과 놀이시간이 구분되지 않을 만큼 학습과 놀이를 기가 막히게 연결해주는 활동들을 아이와 공유하고 있었다. 『세 아이 영재로 키운 초간단 놀이육아』,『엄마 공부가 끝나면 아이 공부는 시작된다』의 저자는 사교육 없이도 행복하고 똑똑한 영재로 자라는 ‘놀이 비법’을 소개하고 있다. 아이에게 놀이는 삶이자 배움이며 행복이라는 믿음으로 세 아이를 모두 개성 있는 영재로 키울 수 있었던 저자의 비법은 역시 ‘놀이’였다. 엄마는 그래서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 엄마 공부가 끝나야 제대로 된 아이 공부가 시작될 수 있다. 저자는 아이를 키우는 일이 내일 비를 맞지 않으려고 오늘 미리 우산을 쓰고 있을 필요는 없지만, 아이의 잠재력, 내면의 힘을 믿고 아이만의 길을 찾아서 끌어주고 밀어주는 엄마가 되자고 했다. 그 방법에 즐거운 마음으로 하는 ‘놀이’가 있었음을 기억하려고 한다. 책은 또 나에게 새로운 방향으로, 새로운 생각들을 채워가며 노력하는 엄마가 되게 한다.
글을 마무리하며 문득 기둥에 묶인 채로 자라는 코끼리 이야기가 떠오른다. 어릴 때부터 훈련을 위해 기둥에 묶인 채로 자란 코끼리는 어른이 되어도, 스스로 벗어날 힘이 생겨도 그 기둥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한다. 혹 나는 내 아이를 그렇게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내 아이를 엄마라는, 공부라는 기둥에 묶어둔 채 자라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다짐도 해본다. 결국 언젠가 아이는 엄마 곁을 떠나야 한다. 독립해야 되는 시기에도 멀리 떠나지 못하는 그런 아이로 자라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혼자서도 잘 놀 줄 아는 아이, 여럿이 도 어울려 놀 줄 아는 아이, 어른이 되면서 자신의 어린 시절 놀이의 저력을 느낄 줄 아는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다. 그런 아이를 꿈꾸는 엄마는 오늘도 무얼 하며 놀아볼까 즐거운 상상놀이에 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