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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대로되는사람 Oct 21. 2021

아이와 놀아주는 것이
가장 힘든 엄마

   엄마들이 아이들과 놀아주는 방법은 참으로 다양하다. 워킹맘인 나는 아이를 기관에 보내는 대신 함께 하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갖기 위해서 다섯 살 때까지 오전 시간을 아이와 보냈다. 그러나 생각해보니 나에게 4시간 정도 주어지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오로지 아이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엄마가 아니었다. 미뤄둔 집안일도 해야 했고, 일터에서 해야 될 일들, 마무리되지 못한 일들을 처리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뜻하지 않은 개인적인 일들도 모두 그 시간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렇다 보니 늘 아이와 노는 그 짧은 놀이시간에도 마음은 분주했고, 머릿속은 온통 딴생각이었다. 같은 공간에만 머물렀을 뿐이다.


 아이와의 놀이에 오로지 집중하지 못하는 엄마, 어떻게 놀아주어야 할지 아이와 놀아주기가 가장 힘든 엄마가 나였다. 일과 육아와 살림과 여러 가지 공부까지 하고 있던 나에게는 그저 모든 것이 버거울 뿐이었다. 기껏해야 책 몇 권 읽어주고, 그림 그리고, 인형놀이해주는 정도가 전부였다. 아이가 먹는 것, 입는 것 등 영양과 위생에 관련된 일들에는 예민할 정도로 신경 쓰는 엄마여서 다행히 큰 병 없이, 잔병치레 없이 키워가고 있었지만, 놀아주기에서는 정말 빵점 엄마였다. 결국 TV나 유튜브 등 미디어에 노출되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는 이것이 불러올 최악의 상황을 아직 예측조차 못하고 있던 때였다. 아이가 다섯 살이 되었을 때 나는 사업을 확장하게 되었고, 아이를 오후 시간부터 돌봐주던 아이의 이모도 내 사업을 도와야 하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에 돌봐줄 이모가 퇴근하는 오후 5시까지 일터에서 함께 보내기로 했다. 처음에는 아이를 위한 작은 방을 하나 만들어서 일터에서 아이를 돌볼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같은 공간에 아이가 있으면 마음이 놓일 것 같기도 했고, 더 많은 것들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정말 처음엔 그랬다. 그러나 일이 바빠지면서 아이는 거의 방치상태가 되어갔다. 간식을 챙겨주며 잠깐 아이와 함께 할 수는 있었지만, 아이의 대부분의 시간은 유튜브 영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채워졌다. 그리고 무지했던 엄마는 말이 늦은 아이에게 유튜브의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이나 영상들이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는 점이다. 어른들의 지도 없이 혼자서 2~3시간 동안 미디어에 노출되는 것이 아이에게 얼마나 해로운지에 대한 생각을 전혀 못한 채. 적어도 아이 손에 태블릿을 쥐어 준 그 시간 동안은 집중해서 일할 수 있었다는 이유로. 이것이 내 아이의 언어발달을 더욱 지연시키고, 또래 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힘을 잃게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모른 채. 내가 아이를 또 다른 방법으로 학대하고 방치하는 엄마였구나 라는 생각을 뒤늦게 하게 되었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아이는 미디어에 중독되어 오로지 그것만 가지고 놀겠다고 고집을 피우기도 했다. 가슴을 치며 스스로를 자책하는 시간이 한동안 계속되었고, 나는 오로지 아이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아이가 좋아할 만한 놀이, 또래 아이들이 자주 하는 놀이, 엄마와 함께 하는 놀이, 아이에게 도움이 될 만한 놀이 등을 검색하고, 관련 책들도 찾아보며 열심을 떨었다. 정말 열심히 노력했다. 태어나 엄마가 처음 되어 보았으니 모르는 게 당연하지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자책하던 시간에서 위로하는, 격려하는 시간을 가지며 처음부터 아이를 다시 키우자는 각오를 하게 되었다. 그렇게 ‘잘 노는 아이를 꿈꾸는 엄마 되기’를 목표로 여러 가지 방법을 찾고 실행했다. 그러나 결국 나는 깨닫게 되었다. 내가 아이와 하는 모든 놀이들이 내 어린 시절의 놀이보다 질적으로, 양적으로 나은 것이 없다는 것을. 그래서 아이와 노는 방법을 바꾸었다. ‘엄마의 어린 시절 놀이’로 돌아가자. 그것이 내가 아이와 찾은 내 아이에게 필요한 놀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엄마의 어린 시절 놀이를 찾아 나섰다.


 그렇게 30년도 넘은 엄마의 어린 시절 놀이를 더듬더듬 기억을 되짚어 찾아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적어보았다. 술래잡기, 숨바꼭질, 매미 놀이, 사방치기, 소꿉놀이, 고무줄놀이, 공기놀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노래 부르며 하던 손동작 놀이 등 다양한 놀이들을 가물가물해진 기억 속에서 찾아냈다. 이제 실행. 무조건 놀이터로 향했다. 그러나 웬일인지 놀이터에는 아이들이 없었다. 기껏해야 모래놀이 도구를 가지고 나와 흙장난을 하는 아주 어린아이 외에는 정말 아이들이 없었다. 아이들이 유치원을 하원 하는 시간대에도 여전히 엄마 손을 잡고 나온 2~3명의 아이들 외에 놀이터에는 아이들이 없었다. 그것도 30분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모두들 귀가. 아~ 어쩌나? 하는 생각과 급한 마음에 아이들이 몰리는 실내 놀이터, 키즈카페 등을 찾아다니며 일주일에 2번, 2시간 정도는 그곳에서 놀게 했다. 위생, 질병 문제 등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며 피했던 그곳에서 우리 아이는 엄청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였다. 수줍음이 많고 내성적인 아이는 점점 새로운 얼굴의 친구들과 손도 잡고 다니고, 놀이도 하고, 뛰기도 하면서 활발한 모습이 되어갔다. 어떻게든 아이를 움직이게 하고, 땀 흘리며 놀게 하는 것이 목표였던 엄마에게 나름 만족감을 주었다. 자기중심적인 성향이 강한 또래 아이들이 모여 있으니 신경 쓸 일도 있었지만 그 속에서 배우는 것도 많았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했다. 실내 놀이터에서 노는 것의 기본기와 적응력을 다졌다면 그 후에는 무조건 야외에서 놀 수 있도록 했다. 


 일주일에 3일 이상은 무조건 야외활동을 시켜야겠다고 생각하고 집 근처 유원지 공원으로 아이를 데리고 갔다. 그곳에는 아이부터 어른들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있었고, 어린이 놀이터와 운동 기구들, 산책로, 인라인 스케이트나 자전거를 탈 수 있는 작은 운동장도 있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집 근처에 이렇게 좋은 곳을 두고서도 그동안 마음껏 아이와 놀며 시간을 보내줄 여유가 없이 살아온 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그곳에서 2~3시간씩 아이와 미친 듯이 잡기 놀이도 하고, 자전거도 가르쳐주고, 인라인스케이트도 가르치고, 그동안에는 위험하다고 하지 못하게 했던 놀이기구들에도 올라가 보며 정말 신나게 놀았다. 그곳은 집 다음으로 아이와 가장 오랜 시간 머무는 곳이 되었다. 봄에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정말 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찾았고, 아이는 자연스럽게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과 만나며 소통을 했다. 여름에는 방학을 한 친구들, 초등학생 언니, 오빠들을 따라 작은 분수대에서 물놀이도 하고, 가을에는 자전거도 실컷 타고, 단체줄넘기도 하고, 놀이터에서 매미 놀이, 숨바꼭질도 하며 신나게 놀았다. 겨울에 눈이 오는 날이면 눈싸움도 하고, 썰매도 태웠다. 아이는 이렇게 놀기 시작하면서 점점 미디어에서 멀어져 갔다. 그리고 그때부터 조금씩 집안에서 하는 놀이에도 큰 관심을 보였다. 


 소근육 발달도 느려 연필이나 색연필을 잡는 것도 힘들다며 투정을 부리던 아이, 선 긋기 놀이조차 하려고 하지 않았던 아이가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게 되었고, 책을 읽어주면 글자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조금씩 아이가 보이는 흥미들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고 함께 해주기 시작했다. 아이를 세심히 돌본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새삼 알게 되었다. 아이에게 집중하며 아이의 내면을 들여다보기 시작하니 아이에게 무엇을 해주어야 할지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놀면서 아이는 참으로 많은 것들을 배워가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자기중심적이어서 양보를 몰랐던 아이가, 소유의 개념을 전혀 몰라 남의 것과 자신의 것을 구분하지 못하던 아이가 놀이를 통해 의사소통 능력이 길러지고 사회성이 길러지기 시작했다. 스스로 그림 하나를 완성해가며 성취감을 맛보게 되었고, 말도 늦고, 발음도 부정확해 고생했던 아이는 어느새 수다쟁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책을 읽어주려고 해도 별 관심이 없던 아이는 질문을 하기 시작했고, 혼자 앉아 그림책을 넘기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면서 아이는 서서히 성장하고 있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시간의 도움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조급한 마음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가장 큰 놀라움은 아이가 실컷 놀기 시작하면서 학습능력 속도가 매우 빨라졌다는 것이다. 아이는 짧은 시간 안에 놀이처럼 한글을 떼었고, 3개월이 지나면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자음자, 모음자 찾기 놀이, 같은 글자 찾기 놀이, 따라 쓰기(소근육 발달을 위해 성경구절과 동시 따라 쓰기 활동은 빼놓지 않고 함께 했다.), 성대모사, 아나운서 되기, 영상 찍기 등 다양한 방법으로 놀이처럼 한글을 뗐다. 하루 2시간 땀 흘리며 놀고, 기분 좋은 상태에서 간식을 먹으며 학습놀이가 시작되니 그 속도도 빨랐다. 


 아이에게 집중하지 못하고 늘 바쁜 엄마였던 예전의 나였다면 아이를 앉혀놓고 온갖 잔소리를 해대며 스트레스 속에서 아이를 가르쳤을 것이다. 정말 생각만으로도 아찔하다. 잘 노는 아이가 학습능력도 좋다는 얘기를 놀이 경험을 통해 이제야 배워가는 엄마가 되었다. 그래서 이미 늦었다고 생각되었던 일들도 기왕 늦은 거 즐기면서, 놀면서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열심을 다해보는 엄마가 되어 감사하다. 그럼에도 아이와 놀아주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다. 아이에게 형제자매를 만들어 주는 것이 더 빠른 방법일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들 만큼 ‘못 노는 엄마’에겐 육아의 많은 부분 중에서 가장 힘든 일 중에 하나가 ‘아이와 놀아주기’다. 그런 내가 아이와 놀아보니 알겠다. 아이에게 ‘놀 줄 아는 힘’이 생긴다는 것은 그 어떤 성장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아이가 어릴 때는 무조건 다양한 환경에서 잘 놀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엄마의 가장 큰 역할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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