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살엔 무엇을 하고, 일곱 살 땐 어떠해야 하며,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어느 정도의 수준이 되어야 하는지, 그런 기준들이 도대체 뭐가 그리 중요했을까? 한동안 아이를 키우면서 연령대별로 이루어지는 맞춤 교육이나 프로그램들을 접하고 알아보며 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다섯 살 때까지 나는 아이에게 어느 것 하나도 시켜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오랜 시간 해왔던 엄마였는데... 정말 자기 자식 하나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면서 어떻게 선생 노릇을 하고 있나 하는 자괴감마저 들만큼 충격적이었다. 그런 것들에 관심을 두지 않았어도 만약 내 아이가 또래 아이들보다 빠르거나, 모든 발달 영역에서 뒤처지지 않았다면 왜 그런 마음이 들었고, 걱정이었겠는가?
시간을 거슬러 엄마의 지나온 젊은 날의 시간들을 되짚어보니 못난 엄마는 꿈도 없이 20대를 보내왔다. 30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엄청 뿌듯해하며 꽤 괜찮은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고 스스로 만족해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겨우 이름 석자 쓸 줄 아는 상태로 초등학교에 입학했고, 중학교 입학을 앞두었을 때는 준비물로 마련한 영어 노트 뒷면에 인쇄된 알파벳으로 영어를 시작했던 엄마였다. 여섯 살이 된 내 아이보다 무엇 하나 빠른 것이 없었다. 그래도 잘 살고 있는데... 왜 내 아이는 스무 명 남짓한 작은 세상에서도 이렇게 힘이 들까? 그때는 또래 아이들과 내 아이를 비교하면 정말 발달지연이나, 경계선 아이가 아니냐는 의심을 받아야 할 만큼 ‘느린 아이’로 보인다는 사실이 화가 나다가, 미안하다가, 또 엄마의 조급함으로 내려놓지도 못하고, 딱 미치기 직전에 정신줄을 붙드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유치원 선생님은 언어치료나 놀이치료가 도움이 될 거라고 말씀하셨고, 그렇게 방문한 여러 기관들의 전문가들은 모두 제각기 다른 의견들을 주셨다. 도움이 되는 부분도 있었지만 오히려 더 혼란스러울 때가 많았다. 그래도 무언가 해봐야겠다는 마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놀이치료를 진행했다. 그리고 3개월 후 나는 마음을 바꾸었다. 선생님들은 너무 좋았지만 일단 내 아이에게 절대로 상처로 남는 말, 아픔으로 얼룩진 교육은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는 엄마와 선생님이 나누는 대화, 그리고 그곳의 분위기를 통해 이미 자신의 상황을 스스로 알아가고 있는 듯했다. 이런 사실을 선생님께 솔직히 말씀드렸을 때 선생님은 내게 아이의 내성적인 성격이나 처음 기관 생활에 대한 낯섦이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원인인 듯하다고 하시며 12주 정도의 교육으로 마무리를 하려고 하셨단다. 한편 감사하고, 죄송했다. 그래도 일단 아이가 좋아하지 않으면, 어떤 전문가가 어떤 최고의 설루션을 제공해 준다한들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처음 경험해 본 놀이치료를 중단했다.
이후, 일주일에 1시간도 안 되는 만남 대신 엄마와 함께 하는 놀이들이 그 몇 배가 되는 시간들을 채웠다. 덕분에 엄마는 생활의 모든 것들을 놀이로 만들려는 시도와 엉망이 되어가는 집안 꼴을 참아내야 했지만 너무 행복했다. 이제야 진짜 엄마 노릇을 제대로 해보고 싶어졌다. 『현명한 부모는 아이를 느리게 키운다』에서 소아정신과 신의진 교수는 말한다. “아이마다 발달 정도가 다르다. 모든 아이들에게 통용되는 획일적인 연령별 지침이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섣부르게 ‘정상인가, 문제가 있는가’라는 잣대를 들이대지 말라.” 그리고 덧붙여 말한다. 내 아이에게 문제가 있고 없고를 엄마가 알 수 있는 방법은 ‘Smiling on happy face’, 아이가 행복한 표정, 웃는 얼굴을 전반적으로 많이 유지하고 있으면 그 아이는 문제가 없다는 것. 아이는 계속된 기다림과 자극 속에 어느 순간 확 변하는 계단 형태의 발전을 보이기에 육아의 끝은 마지막이 되어야만 그 결과를 알 수 있다는 사실을 내게 가르쳐 주었다. 책으로 위로를 받고, 책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한 엄마는 어느새 책으로 육아를 시작해가고 있었다. 그런 엄마가 선택한 최고의 놀이 방법은 역시 책이었다. 책 속 등장인물이 되어 역할놀이를 하고, 책 속 등장인물 그리기로 그림놀이를 하고, 책 속에 나오는 장소를 찾아 현장체험학습을 떠나고, 책 속에 나오는 아름다운 문장과 단어들로 글짓기 놀이를 했다. 이것이 좋은 방법인지, 도움이 되는 방법인지는 엄마인 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내 아이의 행복한 얼굴을 마주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좋았다. 서툴지만 조금씩 말하기 연습, 읽는 연습이 되는 것은 덤으로 얻어지는 선물 같았다. 하지만 여전히 크게 변화된 모습이 나타나지 않는 오랜 기다림의 시간이 이어졌다. 목이 터져라 읽어주고, 쉬는 날이면 오로지 ‘엄마 데이’였던 많은 노력의 시간들이 눈으로 확인되지 않을 때는 마음이 먼저 지쳤다. 아무리 많은 책을 읽어주고, 수십 번씩 반복해 읽어줘도 등장인물의 이름이나 일어난 사건들을 전혀 말하지 못하는 아이에게 짜증을 낼 때도 있었다. 그런 날에는 또 마음을 다잡는다. ‘책 읽기는 내 아이의 내면의 힘을 길러주기 위한 것이지, 지식적인 정보를 쑤셔 넣어주려는 것이 아니다.’ 이런 생각이 들 때면 다시 즐거운 책 읽기 놀이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아이는 엄마와 보내는 그 시간을 정말 좋아했다. 『무지개 물고기』라는 책을 읽고 “엄마, 나 무지개 물고기 그리고 싶어. 반짝반짝.” 이렇게 말하는 아이와 커다란 도화지 위에 큰 물고기 한 마리를 그리고 색종이를 잘라 물고기 몸통을 장식해가는 그 시간이 정말 행복했다. 여러 색깔의 색종이를 알록달록 붙이고, 반짝이 스티커를 붙이며 아이는 말한다. “엄마, 나도 반짝이 스티커 친구들 나눠줄 거야. 유치원 가방에 넣어줘.” 나는 놀랬다.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물고기를 따라 그리고 싶어서 한 말인 줄 알았는데, 이미 아이는 책 속 무지개 물고기처럼 자신의 소중한 것을 함께 나눌 때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엄마가 아이와 보내는 시간들은 그냥 지나치는 시간들이 아니었다. 사랑이 오고 가고, 내면의 힘이 길러지며, 사회성을 가르칠 수 있는 최고의 시간이었다. 아이가 엄마와의 책놀이를 통해 내면이 강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조금씩 열리는 것 같아 행복했다. 아이와 놀아주는 것이 세상 어려웠던 엄마와 느린 아이가 즐길 수 있는 놀잇감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거기에 체력까지 저질체력이었으니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책.
아이와 나는 주야장천 책만 읽기로 결심했다. 이것저것 시도해보고, 시켜도 보고 했지만 특별히 관심 보이는 것도 없고, 몰입하지도 못하는 아이에게 화를 내거나 잔소리로 이어지는 놀이보다는 엄마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책놀이가 나에게는 잘 맞았다. 그렇게 목이 터져라 읽어주면서 어느 순간 엄마인 내가 아이 책에 빠져들어 스스로 즐기고 있는 게 아닌가? 어떤 날에는 성대모사가 지나쳐 아이의 이상한 눈초리를 받아야 했지만 우리는 그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나 스스로에게도, 내 아이에게도 수없이 얘기했다. “그래, 이대로만 하자. 우리는 조금 느리게 세상을 배워가는 거야.” 인생에 수없이 찾아오는 삶의 고비의 순간마다, 인생에 대한 허무함과 마주할 때마다, 수많은 고민과 갈등에 부딪힐 때마다, 나는 내 아이가 책과 함께 그 시간들을 지혜롭게 헤쳐나가길 바란다. 방황하고, 좌절하기도 하겠지만, 깊은 사색의 시간을 통해 길을 찾아가는 경험을 했으면 좋겠다. 인생의 많은 시간들을 문제들로, 고민들로 허비하기보다는 자신의 미래 속에 스스로 길을 내며 살아가는 아이, 그 안에서 기쁘게 사는 것이 인생의 최고 목표가 될 수 있다면 바랄 것이 없다. 나이 들면서 얄팍한 지식이나 재주로 살아가기보다는 안전지대만을 찾아 세상의 큰 속으로 들어가기보다는 책과 함께 고민하며 성숙해지는 사람으로 살아가면 좋겠다.
엄마와 아이가 찾은 책 읽기와 책놀이를 통해 우리는 최고의 놀이치료시간을 가졌다. 몸이 지쳐 힘든 날에는 정말 ‘영혼 없이’ 무미건조하게 대충 읽어주는 날도 있었지만, 그 시간조차도 아이는 좋아했다. 조금 늦은 시기에, 미안한 마음을 가득 안고 시작한 이 시간들을 통해 엄마는 마음의 평정을 되찾을 수 있었고, 내 아이는 조금씩 세상 밖으로 행복한 발걸음을 떼고 있으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예전과 달리 아이 키우는 모든 것이 감사할 따름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해 학교생활이 즐겁다고 재잘거리는 아이의 조그마한 입이 이토록 사랑스러울 수가 없다. 그래, 우리 이대로만 하자. 조금 느리게, 하지만 세상 가장 기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