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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대로되는사람 Oct 10. 2021

사랑할 줄만 알고
가르칠 줄 모르는 엄마

  세상의 모든 부모가 그러하듯, 나 또한 하나밖에 없는 내 아이를 어떻게 하면 잘 키울 수 있을까? 항상 고민하며 함께 성장해가고 있다. 때론 평균에도 못 미치는 엄마를 만나 고생하는 것 같은 안쓰러움에 바라보는 것도 미안한 마음이 들어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렇게 숨죽여 가슴으로 흘러내린 눈물이 한가득이다. 엄마의 무지함과 잘못된 육아방법이 결국 세상 가운데 서게 된 아이에게 ‘힘듦’으로 다가오고, 그 아이가 겪게 되는 힘듦은 고스란히 엄마인 나에게 ‘아픔과 걱정스러움’으로 다가오니 육아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일이면서 정말 뜻대로 되지 않는 묘한 일이다.     


 나는 엄마가 되기 전에도 아이들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작은 아이들을 보면 절로 미소가 지어지고 뭐라도 하나 건네주고 싶고, 말을 걸고 싶을 만큼 행복 호르몬이 마구 뿜어져 나오는 그런 사람이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도 나는 아이들이 참 좋았고, 지치고 기운이 없다가도 아이들을 만나는 순간 힘이 생길 만큼 나에게 에너지를 충전해주는 시간도 아이들을 만나는 시간이었다. 그런 아이들과 사랑으로, 진정한 교감의 시간들을 가지며 따뜻함을 전해주고, 동기부여를 해 줄 수 있는 멘토가 되어주고 싶었다. 그래서 엄마들의 기대, 아이들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공부만, 성적만 내줘야 하는 입시학원 선생님이 아니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순간들을 수없이 마주해왔다. ‘결과’에만 집중해 ‘내가 아닌 내 모습’으로 아이들에게 공부를 강요하고, 엄함을 유지하고, 잔소리를 하게 된 날에는 참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내 아이에게만큼은 선생님이 아닌 오로지 엄마의 모습으로만 키우고 싶었다. 평생을 함께 해야 될 우리 관계가 조금도 낯설지 않고, 세상에서 제일 좋은 친구가 되어줄 수 있는 친밀함으로 유지되길 바랬다. 그렇게 내가 엄마가 되는 순간, 나는 아이에게 줄 수 있는 나의 모든 사랑을 주기 시작했다. 아플까, 불편할까 노심초사하며 매일 번거롭다 못해 고된 노동이 되는 모든 것들을 마다하지 않았다. 나에게 쉽게 키워도 될 것을 굳이 자초하며 키울 건 뭐지? 하는 생각 따위는 없었다. 먹을 것, 입힐 것, 가지고 놀 것들을 영양과 위생과 안전을 하나하나 점검하며 따졌다. 아이의 손에 뭔가가 조금이라도 묻어있으면 큰일이 나고, 아이 옷도 매번 손빨래로 해야 했으며, 아이 옷이 더럽혀지는 것도 싫고, 입 짧은 아이가 잘 먹지 않는 것도 안쓰러워 밥도 떠먹여 주며 그렇게 키웠다. 키즈카페나 놀이터도 질병의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경계했던 엄마다. 아이 뒤치다꺼리로 다른 모든 생활이 마비가 되는 날에도 나는 그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어릴 때부터 혼자서 살아갈 수 있는 자립심을 키워야 한다는 말은 모질게 사랑하는, 독하고 야무진 엄마들에게나 해당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아이가 서너 명씩 되는 다둥이 엄마들의 육아에나 적용되는 말이라고 치부했다. 아낌없이 사랑을 퍼주는 엄마, 내 아이의 눈빛에서 작은 칭얼거림이라도 보이면 금세 마음이 흔들리는 일관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엄마, 그것이 내가 40개월 동안 아이를 키운 육아법이다. 워킹맘으로 살며 최선을 다한 듯 보이는 그 육아의 시간 속에는 유감스럽게도 엄마와 아이가 보낸 시간이 아닌, 엄마의 일방적인 시간이 있을 뿐이었다. 우리에겐 상호작용이라는 것이 빠져있었다. 가르칠 것들, 진짜 아이와 교감하는 방법들을 찾는 것에는 뒷전이고, 사랑의 마음만 과했던 엄마다.


 그 덕분에 나는 육아, 자녀교육, 양육이라는 미로 속에서 한동안 한없이 헤매며 유난히 나에게만 그 미로가 더 복잡해 보이는 것 같은 이유를 찾아야 했다. 그때부터 ‘무엇이 문제일까?’라는 말을 수없이 되새기는 엄마가 되어있었다. 어찌 됐든 출구를 향해 빠져나가야 하는 엄마 노릇, 멈출 수 없는 엄마 노릇으로 지금도 골머리가 아플 때도 있지만, 나는 내 아이에게 더 뜨거운 사랑을 주기 위해 배우는 엄마가 되기로 했다. 잘 배워 함께 배우는 엄마, 잘 가르쳐줄 수 있는 엄마가 되기로 했다. 내 삶에, 아이의 삶에 ‘사랑’이라는 이름의 흔적을 더욱 깊이 남기기 위해 우리만의 ‘잘 배움’을 실천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엄마가 집어 든 책들은 어느 순간 육아서와 자녀교육법으로 좁혀졌다. 한동안 같은 분야의 책들에 집중하다 보니 좁디좁은 엄마의 서재 책장은 이미 채워질 대로 채워져 바닥까지 쌓여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책 한 권을 읽고 그 안에서 발견한 우리에게 적용할 수 있는 것들 한두 가지만 실천하기 시작했다. 육아서는 생각보다 도움이 됐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오르락내리락하는 변덕스러운 엄마 마음을 경험 있는 다른 엄마들의 글들이 진정시켜주고 있었다. 때론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때론 두근거림을 감출 수 없도록 위로를 전하며, 육아서는 엄마로서 자격미달이라는 내면의 비난을 잠재워주고 있었다.


 앎에는 운명을 바꾸는 힘이 있다는데 정말 아이를 키우고, 아이를 사랑하고, 아이를 가르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서서히 알아가면서 내 아이의 운명과 엄마인 나의 운명이 바뀌어가는 힘이 생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낳아 기르기 전, 젊은 날의 인생 초보 엄마는 책으로 위로받고, 책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책으로 살아갈 방법을 찾아가는 사람이었다. 뒤늦게 진로에 대해 고민하며 책을 펼쳐 허기진 아이가 배를 채우듯 책을 읽어왔던 엄마였다. 그런데 그런 엄마에게 아직 육아서는 너무 이른 공부였을까? 나는 아이를 기르면서 육아서를 거의 읽지 않았다. 책대로 아이가 키워질 수 없다는 오만한 생각에서였다. 그저 자연스럽게, 자유롭게 키우자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었는지 아이가 여섯 살이 되면서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육아서를 읽기 시작하면서 세상의 많은 엄마들이 얼마나 아름답게, 소중하게, 그리고 세상에 도움이 되게 자신의 자녀들을 사랑하는지 알게 되었다. 그렇게 나 스스로를 돌아보며 책을 읽어나갈 때 그동안 엄마가 알지 못해 챙겨주지 못한 수많은 것들에 마음이 쓰이기 시작했고, 엄마의 ‘바쁨’과 ‘잘못된 육아’가 아이의 ‘아픔’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여섯 해를 내 딸로 살아온 시간 속에서 내 아이가 참으로 외로웠겠다는 생각, 힘들었겠다는 생각, 답답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라는, 엄마라는 직함이 부끄럽지 않고, 내 아이가 세상에 더 잘 설 수 있도록 가르칠 것들은 가르치는 것이 아이를 더욱 뜨겁게 사랑하는 기술을 익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책을 통해 알아가고 있다. 그렇게 성장단계에 맞는 사랑을 어떻게 주어야 하는지, 어떻게 교육해야 하는지 배우며 가르치는 엄마가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엄마인 나에게도, 아이에게도 시간이 필요했다.


 느닷없이 변한 엄마의 태도에 아이의 반응은 다양했다. 매일 아침 엄마가 입혀주던 옷은 아이가 스스로 입을 때까지 침대 위에 머물러야 했다. 일부러 거꾸로 입으며 온갖 짜증을 냈고, 스스로 이 닦기조차 하지 않겠다며 칫솔을 물고 있는 아이도 지켜봐야 했다. 워낙 내성적이고 부끄러움이 많아 낯가림이 심하다고 강요하지 않았던 인사교육도 이전과는 달리 부드럽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 방법으로 참 열심히 교육했다. 사용한 물건 정리며, 대소변 처리 등 아주 간단한 것부터 스스로 책 읽기, 숙제하기, 할 일 계획하고 실천하기까지 참으로 힘들게 여기까지 왔다. 달라진 엄마의 태도에 적응하느라 아이도 애를 먹고, 엄마도 도를 닦을 정도의 인내심이 필요했지만 우리는 더 친밀해졌다. 집안 여기저기에 붙어있는 온갖 종류의 스티커판과 과하지 않을 정도로 얻어낸 보상품들이 집안 곳곳에서 눈에 띄는 풍경은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의 의존성을 떨쳐내는 유용한 수단들이 되어주었다. 그것들이 눈에 들어올 때마다 감사함으로 바라봐진다. 그렇게 아이는 조금씩 뭐든 도전하는 아이가 되어가고, 자신이 맡은 일을 끝마칠 때까지 끝까지 해보려는 인내심을 배워가고 있다. 초등학교 1학년 한 학기를 마칠 때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성장 발달 표’에 적힌 두 줄의 문구는 오래도록 나를 감동시켰다. ‘인사성이 매우 바른 아이입니다.’, ‘처음에는 조금 힘들어하던 활동도 끝까지 스스로 해내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 교우관계가 점차 넓어지고 있습니다.’ 비록 형식적인 내용이라 할지라도 나는 참 감사했다. 1학년 생활을 성공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사 잘하고 자기일 잘한다는데 뭐가 걱정이겠는가? 교우관계가 점차 넓어진다니 언젠가는 사회성도 스스로 불편하지 않을 만큼 길러지겠지 생각했다. 이제 어지간한 일로는 끙끙 알며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천지분간 못하던 아이, 매번 엄마 마음을 천 갈래 만 갈래 찢어놓던 내 아이, 그런 눈으로 늘 바라보던 엄마의 시선도 이제는 거둬버리기로 했다. 내 아이가 잘해서? 엄마가 대범해져서? 물론 아니다. 여전히 소심하고, 아직도 스스로 지나칠 정도로 아이의 생활에 예민하지만, 아직 내 아이와 나는 배울게 많고, 우리의 방법으로 그것을 즐겁게 배워가고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늦된 아이를 키우며 언제나 내 가슴속에 두고 있는 말, ‘아이의 손 크기가 엄마의 손 크기만큼 자라기 전까지는 언제나 가르칠 수 있는 좋은 때이다.’ 아이에게 가르쳐야 될 것들에 이미 너무 늦은 때는 없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때라도 시작하면 된다고 여유를 가져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것은 정말 효과가 있었다. 다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만의 좋은 방법과 기다림이다. 나지막한 목소리와 미소 띤 얼굴, 끊임없이 반복해주어야 하는 엄마의 리플레이 기능, 끓어오르는 감정을 가라앉혀주는 엄마에게만 주어지는 안식처 같은 도구와 시간, 고요한 듯 끊임없이 요동치는 아이의 가슴속 외침에 귀 기울이기, 결국 가르칠 줄 아는 엄마가 되는 것은 사랑만 할 줄 아는 엄마를 넘어설 때 가능했다. 그럼에도 결코 멈출 수 없는 엄마 노릇을 위해 오늘도 열심히 배우는 엄마가 된다. 그래서 또 책장을 넘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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