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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대로되는사람 Oct 21. 2021

움직인 만큼만 달라지고
실천한 만큼만 엄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잘할 수 있고,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하면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읽어도 삶에 변화가 없었다. 나를 둘러싼 세상은 더욱 움직임이 없었다. 처음 책을 읽으면서 꿈꿨던 많은 기대들은 어느 순간 나와는 다른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가 된 것처럼 느껴져서 책 읽기가 즐겁지 않을 때도 있었다. 뭔가 되어있을 줄 알았던 삶에 아무것도 되어있지 못한 나 자신을 마주하는 일은 생각보다 괴롭고 힘든 일이었다. 삶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책 읽기 방법이 필요했다. 책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닫고, 이해하고 공감하고 있었지만 삶은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유는 분명하다. 나에겐 ‘실천’이 없었던 것이다. 많이 읽고, 많이 배우고, 많이 느껴 세상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천이 없는 앎은 곧 사라지고 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책을 통해 배운 것을 내 상황에 맞게 변화를 주며 실천하기 시작하자 조금씩 삶이 달라짐을 느낄 수 있었다. 주제독서, 독서 학기제 등의 이름으로 실천한 책 읽기가 독서의 깊이와 맛을 더해갔다. 그쯤 육아서를 참 열심히 읽었다. 읽기만 할 때와 책 속의 내용을 아이와 실천할 때는 엄청난 차이가 느껴졌다. 


 나는 워킹맘으로 아이를 키우면서 어려움이 많았다. 늦되고, 더딘 아이를 키우려니 더 힘이 들었지만 ‘때 되면 하겠지’하는 마음으로 조급함이 없었기에 아이에게 미안함도 없었다. 느긋한 엄마를 만나 아무것도 시키지 않으니, 오히려 내 아이가 행복할 거라는 착각까지 했었다. 그러나 곧 세상 가운데 던져진 아이에게는 엄마의 ‘무심함’이 ‘불편함’으로 느끼게 되는 때가 있다는 것을 목격하면서 육아서를 닥치는 대로 읽고, 내 아이에게 도움이 될 것 같은 활동들과 엄마의 언행을 적극적으로 바꿔가기 시작했다. 그 ‘어색함과 불편함’이 ‘익숙함과 편안함’으로 다가올 때까지 나는 끊임없이 실천했다. 처음에는 아는 것과 실천 사이의 간격이 좁혀지지 않아 ‘왜 나는 안될까?, 왜 우리 아이는 안될까?’ 수없이 물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내 아이의 성향에 맞도록 수정해가며 실천했다. 엄마에게 아무리 감동으로 다가오고, 너무나도 이상적으로 다가오는 육아법, 놀이법이라 하더라도 내 아이가 거부하면 반복해 시도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다양한 변화를 주어 시도해보기로 했다. 무엇보다 아이와 함께 해주려는 엄마의 마음이 즐거워야 한다. 엄마의 움직임에 어쩔 수 없음이 느껴지면 아이는 곧 눈치를 챈다. 그래서 나는 기왕 아이를 위해 시간과 마음을 내야 한다면, ‘이 순간을 즐기자’하는 마음으로 ‘엄마 데이’를 만들어 즐겼다. 때론 아이보다 더 신나게 즐겼다. 그동안 나는 내 아이가 혼자 노는 것을 더 즐기는 아이라고 생각했다. 함께 몰입해 놀아줘 본 기억이 없으니 아이에 대해 아는 것도 없는 엄마였다. 아이에 대해 아무렇게나 단정 짓고, 마음대로 생각했던 엄마였다. 관찰이라는 것, 교감이라는 것이 없었으니 아이에 대한 제대로 된 파악이 됐을 리 없다. 우리 딸아이는 누구보다 함께 노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이 사실을 깨닫는 순간, 아이의 외로움이 엄마의 가슴속에 쓰나미처럼 밀려와 함께 하면서도, 아이의 웃음 속에서도 눈물이 났다. 아이는 점점 무엇이든 엄마와 친구들과 함께 하고 싶어 하는 아이로 변해 갔다. 이런 변화는 학습에서도 큰 변화를 보였다. 연필을 잡고 선긋기조차 귀찮아하던 아이를 보면서 학습에 전혀 관심이 없거나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엄마와의 글자 놀이, 책 놀이 등을 하면서 아이는 어느 순간 한글을 조금씩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작고 예쁜 종이만 보면 엄마를 따라 삐뚤빼뚤 서툰 글씨로 편지 쓰기를 하고 싶어 했다. 비록 글씨는 쓰는 것이라기보다는, 그리는 수준이었지만 정말 즐거웠던 시간이었다. 매일 아이가 집안 곳곳에 붙여주는 러브레터로 웃음꽃이 피기 시작했다. 한번 붙인 종이는 아이의 허락이 있기까지는 절대로 뗄 수 없었다. 덕분에 집안 꼴은 정말 엉망이었지만 그 메모 하나하나가 눈에 들어올 때마다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으니 정말 내 인생 최고의 인테리어였다. 그리고 깨달았다. 엄마가 그냥 바라본 내 아이의 모습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아이와 시간을 보내며, 아이를 제대로 바라보는 기대에 찬 엄마의 시선과 실천이 아이를 크게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이것을 깨닫기까지 참 오래 걸렸다. 


 늘 걱정스러운 눈빛을 느껴야 했던 내 아이의 작은 가슴에는 엄마의 시선으로 인해 늘 자신에 대한 걱정스러움이 차곡차곡 쌓여 점점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든다. 아이의 단점도 장점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엄마가 되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항상 바쁜 엄마는 직설적인 어투로, 바로 대답을 들을 수 있는 말투로 말을 건네고, 아이가 말을 걸어올 때에도 듣는 둥 마는 둥, 등을 보이며 대답을 하고, 아이의 행동들에 ‘안돼’, ‘조심해’라는 부정적이고 걱정스러운 눈빛과 몸짓을 한껏 보내고 있었다. 분명 바뀌지 않으면 안 되는 상태였다. 그래서 변화를 위한 처음 시작은 선배 엄마들은 도대체 어떻게 아이를 대하는지 육아서를 통해 배우는 것이었다. 많은 육아서에서 아이를 대하는 엄마의 눈빛, 몸짓, 말투가 아이에게 큰 영향을 준다는 내용을 접했다. 그런 내용을 접할 때마다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 꼼꼼하게 메모했다. 그리고 가장 먼저 실천한 것은 어떤 선입견도 없이 아이를 바라보려고 노력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실천하며 바뀌기 시작했다. 아이와 대화할  땐 꼭 아이의 눈을 바라보며 눈높이를 맞추었고, 아이 말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으며, 솔직한 감정을 말해준 아이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까지 실천했다. 평범한 보통의 엄마들에겐 일상이었을 이 어렵지 않을 것 같은 일도 나는 참 쉽지 않은 엄마였다. 이후 좀 더 강도 높은 언어훈련을, 마음수련을 스스로 많이 했던 것 같다. 어색함과 불편함을 참아내며 이제 조금은 익숙해졌다. 어느 날 책 한 권을 집어 들고 생각 없이 읽기 시작하다가 머리를 한 대 맞는 경험을 했던 적이 있다. ‘옳음’, ‘바름’이라는 엄마만의 기준과 잣대로 아이를 키우다가 정말 놀라운 문구였다.『엄마가 믿는 만큼 크는 아이』라는 책 속의 저자 기시미 이치로의 말이다. 집중력이 없는 아이는 ‘산만한 능력’이 있는 아이이고, 싫증을 잘 내는 아이는 ‘결단력이 있는 아이’란다. 그런 아이는 지루한 강연장을 나오거나, 읽던 책을 덮어버릴 수 있는 용기 있는 아이란다. 아니, 산만한 것도 능력이라니... 엄마인 나로서는 책 속의 이 한 구절이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 이후 나는 내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뿐만 아니라 태도를 다시 한번 점검하며 철저히 바꿔가기를 실천했다. 어설픈 엄마의 ‘옮음’과 ‘바름’을 강요하지 않기로 했다. 말을 잘 못하는 아이는 ‘생각을 깊이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아이’, ‘더딘 아이는 잠재력이 큰 아이’라고 생각하며 아이를 바라보던 방식을 바꾸니 아이도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이 바뀌기 시작했다. 늘 자신감이 없던 아이가 ‘엄마, 틀려도 괜찮지? 또다시 하면 되잖아!’, ‘엄마, 지금은 못하지만 포기하지 않으면 잘할 수 있지?’, ‘엄마, 몰라도 괜찮지? 물어보면 되잖아!’ 아이는 스스로 질문하고 스스로 답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때마다 엄마인 나의 대답은 어느 순간 ‘그럼’ 이 한 마디가 될 만큼 더 이상 긴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우리는 변해가고 있었다. 어떤 어설픈 칭찬도 섣부른 충고도 하지 않고 그저 책 속의 한 구절을 가슴에 담고 생각날 때마다 실천했을 뿐이다. 아이가 자랄수록 이런 뿌듯함과 감사함을 순간순간 느낄 수 있음에, 이런 감정을 갖게 된 것에 다시 한번 감사하다. 이미 알고 있지만 실천이 없는 앎은 아는 것이 아니었다. 엄마가 되기 전에도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여러 교육서를 통해 이미 오래전에 이 사실을 깨달았던 엄마였건만, 엄마가 된 세상에서는 왜 깨닫지 못했을까? 바쁨은 핑계일 뿐이다. 세상은 내가 아는 만큼, 배운 만큼 보이고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움직이고 실천한 만큼만 달라진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또 명심하자. 


 아이의 문제 행동이 나타나 불안한 부모들, 발달이 늦은 아이의 부모들은 대부분 자신의 아이에 대해 항상 아프고, 미안한 마음과 함께 어떻게 키워야 할지에 대한 부담을 느끼는 마음 또한 크게 자리한다. 그래서 아이 얘기만 나와도 목이 메고, 그 걱정스러움이 부모의 힘듦으로 전해질 때면 어느 순간 감당해야 될 일들이 너무나도 크게 느껴져 자신의 삶이 사라져 버린 듯한 느낌이 든다. 아이 키우는 것에서 오는 불안은 그렇게 점점 커져간다. 이제 엄마의 마음을 움직일 때마다 ‘실천하는 엄마만이 진짜 엄마다’라는 생각으로 해보자. 그때 아이도 변한다. 반드시 변한다. 내 아이를 키우면서, 또 다른 집 아이들을 오랜 시간 가르쳐오면서 나는 이것을 크게 깨닫고 있다. 언젠가 <SBS 스페셜 부모 vs 학부모>라는 프로그램이 인상적이어서 그 내용을 담은 『부모 vs 학부모』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그 책은 뒤늦게 실천의 중요성을 깨닫고 움직이기 시작한 엄마인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부모가 스스로 자신의 불안을 다스리는 힘을 길러야 하는 것은 그것이 아이의 자존감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부모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과 언행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규정하고 세상을 바라본다. 부모가 장점을 찾아 칭찬하면 아이는 ‘내가 괜찮은 사람인가 보구나’라고 생각하고, 부모가 늘 단점만 지적하면 아이도 ‘내가 구제불능이구나’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부모가 ‘세상은 즐거운 곳이야’라고 하면 호기심으로 세상을 탐색하고, 부모가 ‘세상은 두려운 곳이니 조심해야 해’라고 하면 아이도 위축되는 것이다. 부모가 상황의 압력에 굴복해서 불안과 걱정으로 아이를 바라보는 한 아이의 자존감은 제대로 성장할 수 없다. 부모의 시선은 아이의 마음에 핵폭탄과 같은 영향력을 가진다는 점을 명심하자.” 아이의 자존감, 아이의 삶, 아이의 꿈, 아이의 문제 행동, 이 모든 것에 가장 큰 도움의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은 엄마다. 엄마가 움직이고, 실천한 만큼 아이는 달라진다. 아이에게 무심코 했던 아차 싶은 말이나 행동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바꾸는 연습을 해보려고 한다.


 책을 읽으며 그 책 속에서 딱 한 가지만이라도 내 삶 속에서 실천할 수 있다면 그 책은 완벽하게 읽은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늦된 아이를 키우면서 읽기 시작한 육아서, 부모교육서 등을 통해 나는 좋은 부모가 되려는 꿈을 꾸었던 것 같다. 아니, 아이를 훌륭하게 키워내는 대단한 엄마가 되고자 했던 욕심도 조금은 가지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책을 한 권 한 권 읽어나갈 때마다 나는 엄마의 욕심을 내려놓고, 엄마의 꿈을 위한 책 읽기를 접었다. 대신 오로지 내 아이에게 필요한 내용들을 찾아 엄마가 할 수 있는 꼭 한 가지씩만 실천하자는 다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엄마의 실천이 있는 꾸준함만이 내 아이를 성장시킬 수 있다는 믿음으로 3년을 지나왔다. 그리고 이제 알았다. 결국 그 모든 활동들과 시간들은 나와 내 아이가 함께 움직이고 실천한 만큼 우리를 성장시키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렇게 아이는 엄마가 움직인 만큼만 달라지고 실천한 만큼만 달라진다는 사실을 가슴 깊이 느끼는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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