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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대로되는사람 Oct 21. 2021

간절함으로 가슴속
목적지에 도달하는 일상

 책을 읽다 보면 쓰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질 때가 있다. 무엇이든, 어떤 식으로든 긁적이는 행위 자체를 하지 않고는 견디기 힘들 만큼 마음이 요동칠 때가 있다. 끊임없이 들려오는 내면의 소리가 바짝 말라버린 가슴속에 불을 지피기 시작하며, 마냥 어렵게만 느껴지고, 엄감생심 주제를 알아야지 했던 빈정거림은 어느새 무모한 자신감으로 무장하여 온몸을 휘감는다. 


 바로 그때다. 민망한 글일지라도 써 내려가야 하는 그 타이밍. 그때가 글쓰기에 가장 좋은 때이다. 책을 읽을 때마다 ‘어쩜 이렇게 쓸 수 있을까?’ 감탄을 하고, ‘나는 절대 이렇게 쓸 수는 없을 거야.’ 절망감도 품고, ‘이렇게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부러움을 한껏 안은 채, 내 글을 쓰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시작된 작가들에 대한 동경이 나의 감탄과 절망감과 부러움을 만나니 욕망이 됨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 욕망은 그들에 대한 존경심을 바탕으로 했지만, 나는 결국 내 글쓰기를 그들의 기준에 맞추지는 않았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맞출 수가 없었다. 나의 부족함을 이미 알고 있기에. 그래서 한결 시작하기가 쉬웠는지도 모른다. 내가 어떤 작가처럼 될 수도, 되려고 하지도 않으려는 마음에서 출발하니 오히려 편안한 글쓰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재능은 눈곱만큼도 없는 내가 스스로 시작하는 나만의 글쓰기. 내 글의 기준은 항상 나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니, 일단 쓸 수 있었다. 마음대로, 제멋대로 써보자. 이 세상 어느 누구도 내가 하는 일에 크게 관심이 없다. 내가 무엇을 꿈꾸고, 무엇을 이루어나가려고 하며 무엇을 쓸지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오로지 자기 자신뿐이다. 그러니 겁먹지 말고, 눈치 보지 말고, 쓰고 싶은 대로, 쓰고 싶은 만큼 써보는 시도를 해보자. 


 그렇게 내가 쓸 수 있는 글이 완성되어갈 때 자신감이 생긴다. 자기가 처한 현실과 환경들과 상황들만 놓고 보면 자신이 꿈꾸던 일을 시도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일 때가 많다. 특히 엄마는 그렇다. 그 일이 지금 내 삶에, 내 형편에 어울리기나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꿈에 다른 이름이 있다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나는 꿈을 생각할 때 ‘나의 꿈’ 대신 ‘나의 간절함’, ‘나의 절박함’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인다. ‘꿈’이라는 말을 사용할 때는 나의 현실적인 삶에 비추어 이것저것을 생각하며 재기 시작하고 늘 현실적인 방법들을 생각하기 바빴다. 언제나 아이가 우선되는 엄마의 처지를 생각하다가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기 시작했다. ‘아직은 아이가 어려서 안돼.’ , ‘아직은 경제적 형편이 안돼서 어렵지.’ 늘 이런 식이었다. 꿈꾸던 일들을 시도조차 해보지 못하고 머릿속으로 가능, 불가능 여부가 결정되면, 이후엔 포기가 더 쉬웠던 것 같다. 늘 그렇게 ‘그 꿈이 지금 내 삶에, 내 형편에 어울리기나 하나?’ 하는 기준으로 미달되거나 불가능한 것으로 결론짓고 끝냈던 적이 도대체 얼마나 많은가? 아마도 지금껏 꿈꾼 그 꿈의 수만큼 되지 않을까? 그래서 꿈에 다른 이름, ‘간절함’과 ‘절박함’을 붙여 ‘나의 간절함’, ‘나의 절박함’이라는 타이틀을 내 걸기 시작하니 내 삶의 나머지 삶에 얼마나 어울리는지, 내 형편과 상황에 얼마나 가능할지를 따져보는 횟수가 줄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내 삶의 우선순위에서 더 이상 자리를 뺏기지 않을 수 있었다. 결국 간절함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의 삶’과 ‘나의 간절함’이 조화를 이루는 그런 또 다른 삶을 계획하면서 어느 순간 나의 꿈들은 내 삶에 하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눈으로 확인되는 결과물들을 마주하면서 나는 희열을 느꼈고,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불태워 열정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꿈을 꿈으로만 간직하며 현실과 타협했더라면 나는 워킹맘으로 살면서 매일 글을 쓸 생각은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것이다. 글쓰기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아무리 바쁜 일상 속에서도 글쓰기가 나의 간절함, 절박함이 되자 나는 기꺼이 글을 쓸 시간을 의도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었다. 아니, 만들어내야만 했다. 오늘 그 일이 나에게 절박한 일이니까. 나의 뇌와 세포들이 나의 절박한 주문에 서서히 세팅되어가고 그것을 할 수 있도록 나를 자동으로 움직이는 정도가 될 때까지 나는 멈추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러자 삶의 많은 부분들에 에너지와 시간을 최소화하기 시작해서 결국 글 쓰는 시간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리고 그 시간은 늘 부족하다고 느껴질 만큼 나에게 기분 좋은 갈증을 느끼게 한다. 행복한 피로감을 남긴다. 그러나 고된 노동이 된 적이 없다. 현실의 삶과 분리되어 또 다른 삶을 만들어가는 나만의 비밀 무기를 비밀스럽게 만들 내는 전문가가 된 듯 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그렇게 마음껏 재능과 형편을 고려하지 않은 나의 간절함과 만나는 시간들을 보내고 나면 잘 살아내고 싶다는 또 다른 인생의 간절함이 만들어진다. 이것이 글을 쓸 때 오로지 ‘나 자신’과 ‘간절함’을 기준으로 해야 하는 나만의 이유가 되었다.

 

 어디선가 ‘모든 과정과 순간순간이 목적지’라는 글귀를 본 적이 있다. 글을 쓰면서 나는 비로소 이 말의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의 간절함으로 시작된 그날의 글쓰기가 목적지가 될 때가 많았다. 아이와 보낸 일상을 쓰다가 아이의 미래를 만나게 되고, 엄마의 일상을 기록하다가 엄마의 미래를 만나는 날이 많아졌다. 어느 순간 글 속에서 가슴속에 도달하고 싶은 목적지에 서 있는 나를 만나게 된다. 글을 쓰는 그 모든 과정을 즐기며 몰입에서 빠져나오는 순간 알 수 없는 기쁨이 솟구친다. 글을 쓰며 떠오르는 순간순간의 생각들, 감정들을 정리하다 보면 내 삶에 작은 목적지에 다다른 기분이 든다. 이렇게 일상에서 즐기며 도달하는 그날그날의 삶의 목적지가 정말 내 전체 인생에 나침반 역할을 해주는 듯하다. 그래서 별것 아닌 듯, 소소한 일상이지만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은 나에게 오늘 도달할 나의 작은 목적지가 되고, 그 목적지에 자주 도달하는 경험을 통해 나는 좀 더 많은 일들을 자신감 있게 해내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매일 만나고, 도달하고, 보게 되는 내 글 속의 풍경들이 힘든 여정에 보람을 느끼게 한다. 그 작은 목적지들이 결국 내가 살고자 하는 방향으로 내 삶을 이끄는 나침반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나는 매 순간 삶을 즐긴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지금껏 알지 못한 채 살아왔다. 일상의 소소한 행복과 기쁨, 감사함이 무엇인지 알기까지 참 오래 걸린 듯하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며, 일을 하며, 글을 쓰며 나는 조금씩 나의 하루에 작은 목적지들을 두게 되었다. 아이와 나눌 일상, 글에 쓸 내용들, 일하며 만나는 기쁨들을 정리하다 보니 이제는 그 과정이 조금씩 즐겨진다. 그 여정이 주는 선물 같은 것들에 고됨이 덜하다. 자신의 삶에 작은 감동과 기쁨을 주는 일들을 보고, 느끼면서 성취해 온 사람들은 자신의 목적지에 도달했을 때 행복하다. 간절함으로 시작된 일들의 목적지를 매일 경험할 수 있다면 힘든 일상도 어느 정도 잘 견뎌내 진다. 아이의 언어발달이 느려 의사소통이 힘들었던 그 당시에는 아이와 보내는 매일매일의 활동과 놀이학습이 지금의 내 아이 모습이 될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이와 매일 즐기려고 애썼고, 작은 성취에도 크게 기뻐하며 지나온 그 시간 속에 엄마의 글쓰기로 우리는 여러 번의 목적지에 도달하는 경험을 쌓으며 여기까지 왔다. 지칠 대로 지쳐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조차 의식하지 못하고 삶이 허무해질 무렵, 엄마의 간절함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고, 간단한 리뷰 쓰기로 글쓰기를 시작해 우리의 일상을 기록하며 책을 출간하고 작가가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작은 목적지들을 넘어왔는지 모른다. 그 모든 과정들은 오로지 간절함으로 매 순간 즐기려고 하며 왔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사람은 누구나 아무도 알지 못하는 비밀스러운 목적지 하나 정도는 가지고 사는 듯하다. 책을 읽고, 글을 써보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들 때가 많다. 현실이 녹녹지 않아 우회하고 있을 뿐, 먹고사는 막다른 길에서 잠시 멈춰 섰을 뿐, 가슴속 비밀스러운 목적지는 누구에게나 있다. 단지 ‘언젠가’라는 말로밖에 아직은 도달하지 못해서, 그것을 가슴속에 묻어놓을 뿐이다. 삶이라는 여정 속에서 수없는 방황이 자신을 서서히 멈춰 서게 할 때가 분명 있다. 그때 그 비밀스러운 목적지를 가슴속에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 목적지가 자신도 모르게 또 다른 길을 찾도록 돕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내가 워킹맘으로 살면서 마주하는 많은 상황들이 나를 멈춰 서게 했다고 느꼈을 때 내 가슴속 목적지들이 나를 이끌었던 것처럼. 그래서 사람은 매일 무엇인가 되고 싶고, 하고 싶은 것들을 떠올리며 살아야 한다. 그것은 희망의 불씨다. 가능하면 도달해보고 싶은 많은 간절함 들을 가져보자. 어떤 간절함이 자신의 비밀스러운 목적지로 안내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운이 좋으면 자신의 재능과 만나는 행운도 얻을 수 있다. 세계적인 동기부여가 브라이언 트레이시의 말처럼 무언가 하고자 하는 마음이 내 가슴을 쿵쾅거리게 한다면 그것을 할 수 있는 능력도 이미 내 안에 있음을 명심하면 될 일이다. 방황한다고 길을 잃은 것은 아니다. 잠시 우회했을 뿐이다. 익숙한 길이 아니었을 뿐이다. 낯선 세상에 적응하느라 시간이 좀 걸렸을 뿐이다. 태어나 처음 살아보는 세상 아닌가? 모든 길을 알 수는 없다. 죽는 날까지 내 안에 비밀스러운 목적지가 저장되어 있다면 그것을 하고자 하는 자신의 간절함과 만나는 순간 결국 원하는 길을 선택해 목적지에 도달할 것이다. 그렇게 찾아가는 것이 어쩌면 삶이 아닐까? 


 그리고 몇 년의 짧은 경험이지만 간절함으로 찾은 그 길은 언제나 옳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옳다고 믿는 길에 스스로 길들여 가는 것이 자신의 길이다. 그 길에 자신의 온 마음이 담겨 기쁨과 설렘이 있다면 그 길은 언제나 옳다. 누군가가 그 길의 방향이 잘못되었다고 말하거든 그들에게는 없는 비밀스러운 자신의 꿈의 나침반을 열어보자. 그리고 마음이 그렇게 하라고 하는 그 방향으로 다시 자신의 길을 가면 된다. 나는 이제 그래 볼까 한다. 엄마로 살면서 어렵게 시도하여 선택한 길이 글쓰기고, 지금껏 나에게 기쁘게 살 이유를 가르쳐준 길이기에 스스로 길을 내며 가는 여정이 좀 버거워도 언제나 그 길은 옳다는 것을 확신하면서 말이다. 간절함으로 가슴속 목적지에 도달하는 매일의 일상이라니? 생각만으로도 힘이 난다. 나는 계속해서 그 길을 걸을 것이다. 스스로를 응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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