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을 넘겼다. 지금껏 살면서 인생의 큰 굴곡은 없었다. 아니, 어쩌면 굴곡이라고 느낄만한 마음의 여유나 멈춤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나온 시간들을 되돌아보니 인생을 축제처럼 살아본 경험도 많지 않다. 늘 큰 숙제를 안고 살아온 시간들이 더 많이 떠오른다.
인생의 한쪽 길은 늘 공사 중이었다. 스스로 보수공사를 시작할 때도 있었지만 내 의지와 상관없이 공사 중일 때가 더 많았다. 문제는 항상 후자의 경우다. 이런 상황이 되었을 때 좌절하고 낙담하고 짜증 섞인 분노의 감정이 소박한 목적지로 향하는 것조차 가로막았다. 다시 일어나 걸을 용기도 방법도 모르겠다 싶을 때 나는 책과 글쓰기를 만났다. 그리고 책은 내게 한쪽 길이 공사 중이거나 막다른 골목일 때, 다른 쪽 길로 우회하여 갈 수 있음을 안내하며 친절한 이정표, 인생지도가 되어주었다. 책을 읽으며 끄적였던 메모들, 감상들이 모여 글이 되기 시작하면서 나만의 인생지도를 비로소 그려나갈 수 있는 용기와 자신감을 얻었다. 책과 글쓰기가 내 마음속에 어느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나만의 공간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나만의 마음속 공간으로 들어가 마음껏 문을 걸어 잠글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진짜 나와 만나 삶을 얘기하고,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생각하며 즐거운 상상놀이를 하기도 했다. 그러고 나면 상처 받은 마음이 치유되고 새로운 항체가 만들어져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자신의 문제에 스스로 참여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도구를 스스로에게 쥐어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글을 쓰는 내 작은 골방, 작은 책장과 책상, 스탠드 하나가 전부인 그 소박하고 비좁은 공간에서 나는 매일 삶을 배운다. 매일 아침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그 짧은 시간은 나에게 귀한 인생수업시간이 된다. 그곳은 어느 순간 내가 바라볼 수 있는 가장 넓은 세상이 되고, 가장 배울게 많은 학교가 된다. 집중하여 잘 배운 학생이 된 날은 하루 종일 기분이 좋은 최고의 날이 된다. 일상에서 오는 여러 가지 일들로 산만하여 집중하지 못한 날에는 공허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매일 모범생일 수는 없으니까 그마저도 좋다. 적어도 내 인생수업 시간에 스스로 삶의 주인공이 되어 세상에 나갈 준비운동을 마친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운 하루의 시작이 된다. 매일 승리한 듯한 하루가 기대가 된다. 엄마의 인생에 나날이 좋은 날이 시작되는 것 같은 행복감이 밀려온다.
몇 년을 이렇게 놀았다. 돈 한 푼 생기지 않는 일이지만 매일 하고 싶어서 시간을 쪼개고, 에너지를 비축하며 매일 아침 나만의 놀이를 즐기고 있다. 나의 인생 수업 시간표에는 정말 다양한 교과목이 있다. 책 읽기, 글쓰기, 명상, 상상놀이, 블로그, 리뷰 쓰기, 기도하기, 필사하기, 가상 여행하기, 미래일기 쓰기, 드림보드 만들기 등 수없이 많은 과목들이 매년 늘어나고 있다. 스스로 원해서 이수하고 싶은 과목들이 계속 생겨난다는 것은 살아가면서 참 즐거운 일이다. 혼자서 제대로 놀기를 즐기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이제 미칠 정도로 빠져 들고 있다. 기왕 노는 거 전문가 수준으로 제대로 놀며, 제대로 배워보자 하는 마음으로 책도 쓰고, 가끔 강연도 하고 있다. 이제 좀 더 다양한 나를 만들어보려는 소박한 시도와 움직임을 준비 중이다. 혼자서가 아니라 함께 즐길 몇몇 친구들도 찾아 세상이라는 놀이터에서 신나게, 기쁘게 살아볼 놀이 계획도 세우고 있는 중이다. 거창한 듯 하지만 하나님이 내게 허락한 이 세상, 거저 살라고 주신 것 같은 이 세상을 누리며 살고 싶은 생각이 든다. 분명 세상은 생존을 위한 치열한 곳이지만 자신을 어떻게 만들어가느냐에 따라 즐거운 놀이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워가고 있다. 그리고 취미 이상으로 즐기는 놀이가 인생을 얼마나 바꿔놓을 수 있는지도 알아가고 있다. 『매일 아침 써봤니?』의 저자 김민식 작가는 “개인이 창의성을 기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다양한 모습의 나를 만들고, 서로 다른 내가 만나 협업하게 하는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앞으로의 시대는 ‘일하는 나’와 ‘노는 나’가 만나 새로운 영역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꽤 오랜 시간 꾸준함과 멈춤을 반복하고, 다시 시작함을 시도하면서 스스로 지치지 않고, 중독되어 즐길 수 있는 시간들을 가지려고 노력했다. 그 즐기고 있는 영역들을 좁혀가기도 하고, 늘려가기도 하면서 혼자서 노는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이제 즐거움을 위해 열심히 놀기만 하는 나를 생업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나와 만나게 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이제 그 새로운 영역이 기대된다. 내가 밟게 될 그 세상의 놀이터를 스스로 만들어가고 있다는 기대감에 설렌다. 마치 디즈니가 디즈니랜드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이미 그의 상상 속에서 지금의 디즈니랜드를 본 것처럼 기대되는 세상이 있다는 것은 참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다. 자신만의 색깔을 낼 수 있는, 자신만의 멋진 삶의 기술로 만들어지는 그 영역은 언젠가 재미도 주고, 돈도 되는 행운의 영역으로 안전지대를 제공해줄지도 모를 일이다. 이미 그런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 세상에는 너무나도 많으니까.
사업을 시작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육아를 하면서 나의 역할은 점점 늘어만 갔고, 한때 이 모든 상황이 그냥 ‘지침’으로 다가왔을 때, 사람이 목구멍으로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을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깊이 내 어쉬어야 하는 한숨소리가 내 생활공간을 채우기 시작하면서 나는 살기 위해 ‘새로운 나’를 찾아내고 만들어내려는 생각의 전환이 필요했다. ‘다시 시작함’의 버튼을 누르고 나만의 골방에서 책과 낙서들을 통해 다양한 내 모습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글 쓰는 나’, ‘책 읽는 나’, ‘가르치는 나’, ‘딸 키우는 나’, ‘영어 공부하는 나’, ‘맛집 다니는 나’... 이렇게 쓰면서 만나게 되는 나를 바라보며 어떻게 서로 다른 나를 협업하게 할지 자꾸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즐거운 상상놀이는 무한한 가능성과 희망을 품게 했다. 언젠가 완전히 ‘새로운 나’를 만들어내며 살아가는 모습이 조금씩 그려지고, 그것들을 글로 쓰면서 가슴이 두근거린다. 분명한 것은 ‘지금의 나’와는 다른 삶이 기다리고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고,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볼 용기가 다시 생기기 시작했다. 이런 모든 일들이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가능했고 그것이 내게 즐거움과 삶에 잔잔한 감동들을 안겨주어서 감사하다. 나이가 들어도 진로에 대한 고민은 끝나지 않는다. 그래서 아주 열심히 좋아하는 것들을 즐기며 놀면서 고민해 볼 생각이다. 김민식 작가의 충고처럼 전문가 수준으로 놀며 그것을 생업으로 연결해 보려는 시도도 해보려고 한다.
마치 삶의 다음 단계로 들어가기 전에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처럼 그런 시간을 가져볼까 한다. 마흔을 넘긴 지금, 내 삶이 내게 끊임없이 말을 걸어온다. 가끔은 안전지대를 벗어나고 있는 순간이 내게 곧 다가오고 있다고 경고의 메시지를 남기면서. 삶이 말을 걸어올 때 피하지 않고 나의 이야기, 나만의 정답으로 답해보려고 한다. 내가 스스로 대답할 수 있을 때, 그때가 나의 진짜 인생이 시작되는 때라는 각오로 성실히 임하고 싶다. 요즘 그런 시간들을 더 많이 가지려고 한다. 주저하고, 포기하고, 안주하고를 반복하며 삶에서 매 순간 작은 시도를 해보고 있다. 과거와 작별하고 새로운 나를 만나려고 끊임없이 도전하고 단련하고 있다. 그리고 그 순간을 즐기려고 한다. 물론 육아와 일에 지쳐 체력도 안되고, 마음부터 무너질 때도 있지만, 멈출 때마다 다시 시작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하고 있다. 더욱 열심히 삶에 감탄하며 몰입할 수 있으면 감사하다는 마음으로 스스로 한 과정씩, 한 단계씩 통과의례 시간을 잘 넘겨보려고 노력 중이다. 이것이 지금은 책 읽고, 글 쓰며 무언가 도전해보며 안전지대를 벗어나 보려는 소박한 시도일지라도, 언젠가 삶이 내게 건네줄 큰 과제가 생겼을 때 그것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훈련의 시간이 되고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엄마라는 자리에 쉼 없이 등장하는 방해물들 때문에 어쩌다 떠오른 꽤 괜찮은 아이디어들이 매번 사라질 때면 마음이 착잡했다. 그렇게 엄마로 살면서 시도해보지 못한 많은 아이디어들이 묻히다 보니 나는 또 그저 ‘아줌마’로 밖에 안 보이는 사람이 되어있는 듯했다. 그래서 엄마에겐 특히 자신의 일상에서 떠오르는 생각들, 감정들을 기록해두고, 삶에 적용해보고, 함께 나눠보는 일이 중요하다. 그것들을 지켜내려는 욕구와 열정이 필요하다.
나에게 책 리뷰 쓰기는 그래서 더욱 소중했다. 블로그에 게시하기 위해 읽고 느낀 것들을 누군가와 공유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새로운 나를 만들어가는 기분이었다. 한 때 참 전투적으로 임했던 것 같다. 신선함이 부족하다고 느껴질 때는 다른 콘텐츠와 연결해 2차 가공의 방식으로 나만의 방법을 만들어냈다. 컴퓨터에 대해 아는 것이 없으니 꾸밀 줄도 모르고, 그냥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올렸다. 누군가의 기대에 맞추려 해 본 적도 없고, 모든 것이 처음이고, 새로우니 서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이어갔다. 몇 시간씩 작성한 글을 한순간 날리기도 하고, 중도에 멈추기도 하고, 실망도 하고, 그러면서 겪은 ‘작은 실패’들이 오히려 자극이 될 때도 있었다. 나에게 더 집중하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이 모든 경험이 능력을 쌓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우리는 못할 것도, 좌절할 것도 없다. 오히려 단단한 매집이 길러지는 듯 마음이 단단해진다.
내 인생에 나만큼 관심 있는 사람은 없으니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가능한 한 엄마로 살면서 많은 데이터들을 쌓아보자. 그것들을 응용하여 꽤 괜찮은 나를 만나보자. 새로운 나를 찾을 때마다 지금의 별 볼일 없는 것 같은 나와 협업하게 하여 놀라운 나를 만나보는 것이다. 나는 시원찮은 책 리뷰를 쓰면서도 마치 내가 그 책을 쓴 작가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착각이었지만 결국 작가가 되게 하는 멋진 착각이었다. 가끔은 엄마의 착각과 작은 실천이 엄청난 결과를 만들어내며 멋진 인생을 그려가는 엄마들을 만날 때도 있다. 주변의 한 엄마는 아이들에게 탄산음료 대신 시원한 음료를 집에서 만들어 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과일청을 만들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수제청, 수제 식초 등 다양한 것들을 만들어 판매까지 하고 있는 엄마가 되었다. 자신만의 브랜드까지 만들어 함께 먹을 쿠키며, 마카롱까지 만들어 내고 있다. 이제 자신의 이런 이야기를 누군가와 공유하고 싶다고 방법을 구상 중인 그녀가 정말 멋지다. 꽤 괜찮은 자신을 만들어 가고 있는 그 엄마는 앞으로 인생에 나날이 좋은 날들을 더 많이 경험하게 될 것이다. 나도 더욱 분발해야겠다. 사실 엄마만큼 많은 역할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그 역할들을 ‘지금의 나’에서 ‘새로운 나’로 만드는 일에 이용해봐도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나는 엄마의 인생에 나날이 좋은 날이 되는 것들을 열심히 찾고 있다. 보물을 찾듯, 간절한 마음으로 찾은 책 읽기가 내겐 기적이었고, 글쓰기가 설렘과 희망을 보게 하더니 이제는 남은 인생에 나날이 좋은 날이 되게 할 멋진 기술을 갖게 해주고 있다. 인생을 좀 더 멋지게 살기 위해 무엇을 하며 놀아볼까? 머릿속엔 온통 놀 궁리로 가득하다. 나만의 놀이가 찾아지면 전문가 수준으로 놀아볼 생각이다.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누군가를 힘껏 응원하며 같이 가자 친구 하고 싶다. 우리의 나날이 좋은 인생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