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라는 롤러코스터에 올라타 마음껏 내달려왔다. 그 악명 높은 기구에 오르면서 어떤 준비도 없었다. 그런데도 누군가 ‘인생은 숨 쉰 횟수로 재는 게 아니라, 압도되고 매료된 순간들로 잰다.’라고 말한다면 나는 지난 10년이 내 인생에 가장 압도되고 매료된 순간들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고 싶다. 아이가 없었더라면 결코 느껴보지 못했을 그 순간들. 나의 ‘육아’라는 롤러코스터가 출발하기 시작할 때의 그 설렘과 두려움을 기억한다. 그리고 이제는 엄마의 육아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는 것도 조금씩 느끼며 곧 닿게 될 종착점을 향해 가고 있다. 언젠가 끝난다는 것, 그리고 그 속도가 무척 빠르다는 것을 느끼며 지난 시간들을 자꾸 돌아보게 되고,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더 소중하게 다가온다. 어지럽고 좌우 분간이 안되어서, 제대로 눈을 뜨고 세상을 바라보는 것조차 버겁고 사치처럼 느껴질 만큼 정신이 없었지만 정말 짜릿한 순간들도 많았다. 목이 뒤로 젖혀질 만큼 속이 터져서 허공을 향해 목에 걸릴 것 같은 숨을 내쉴 때가 하루 이틀이 아니었던 순간들. 여러 면에서 발달이 늦된 아이를 어떻게든 또래 아이들과 맞춰갈 수 있도록 도우려고 안간힘을 썼던 그 시간들. 육아라는 롤러코스터는 내게 그랬다. 아이를 안고 떨어지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젖 먹던 힘을 다해 매달려야 하는 그런 짜릿한 놀이기구였다. 너무 신나고 행복하고, 감사해서 내 인생이 꽉 채워지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도 동시에 죽을 만큼 힘들고, 겁도 났던 시간들이었다. 그 육아의 여정에 금방 승차한 것 같은데 아이가 어느새 훌쩍 자라 어느덧 내려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끝날 것 같지 않았던 그 여정을 돌아보며 나는 아이에게 어떤 엄마로 기억되고, 어떤 엄마로 남아줘야 될까 생각해본다. 내 아이에게 정말 가치 있는 유산을 남겨주고 싶은 마음이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쓴다. 엄마의 젊은 날의 기록이 내 아이가 살아가는 시간에 거울이 될 수 있도록 열심히 글을 쓰려고 한다. 어른이 된 아이가 자신과 같은 나이의 엄마를 바라보았을 때 그 안에서 힘을 얻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쓰려한다. 그 생각을 할 때마다 나는 더 열심히, 아름답게 살고 싶은 엄마가 된다. 좀 더 삶에 열정을 갖고 살고 싶어 진다. 워킹맘으로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아이의 욕구를 채워주지 못하는 순간들이 참 많았다. 많은 순간들을, 기회들을 늘 ‘언젠가’, ‘형편이 되면’, ‘가능하다면’이라는 말들로 아쉽게 보낸 것 같아 후회되는 순간들이 많다. 그때 아이와 해보지 못한 것들, 아이와 함께 있어주지 못한 시간들을 지금이라도 열심히 채워주려 하지만 아이는 점점 엄마가 아닌 친구들과 함께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아지고 있다. 또래와 어울리는 힘이 조금씩 길러지는 것 같아 반가우면서도 미안하고, 잘 자라고 있는 것 같아 고마우면서도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은 애잔하다. 아이와 함께 하는 육아의 시간에 느껴지는 마음과 생각과 감정들을 나는 아이에게 어떻게 전해줄까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칼 W. 뷰크너(Carl W. Buechner)가 한 말이 떠올랐다. “사람들은 당신이 한 말은 잊기도 하지만, 어떤 기분이 들었는지는 잊지 않는다.” 나는 아이가 엄마가 자신에게 해주었던 말들은 잊을지라도 그때 자신이 느꼈던 기분은 잊지 않을 거라고 생각되어 아이의 마음과 감정에 더욱 마음을 쓰는 엄마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다 보면 가장 힘든 것이 또한 감정조절이다. 엄마의 마음이 그게 아님을 알아주기에는 아이가 너무 어리니 그런 엄마의 마음을 이렇게 글로 전하려고 한다. 그리고 다시 느껴지는 엄마의 사랑을 아이가 기억해준다면 정말 감사할 일이다.
아이에게 가치 있는 유산을 남기고 싶은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삶에 열정을 다한 엄마의 흔적을 만나게 해주고 싶어서이다. 모래성처럼 삶의 파도에 휩쓸려 내려가 언젠가는 어디에서도 엄마의 흔적을 찾지 못할 아이를 떠올려본다. 그때 아이가 느낄 쓸쓸함이 내게 전해진다. 내가 내 아버지를 떠나보낸 후, 아버지의 흔적이 더 이상 찾아지지 않았을 때 느끼며 살아왔던 그 쓸쓸함과 허전함처럼. 그래서 아이에게 엄마의 이름이 아니라, 영향력을 남겨주고 싶다. 엄마의 삶에 대한 열정, 그 엄마의 열정이 아이의 삶에 스며들어가 자신의 삶에 변화를 줄 수 있는 기회들을 만들어가는 아이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삶을 소중히 가꾸고 돌보는 엄마로 살려고 노력 중이다. 세계적인 조각가 미켈란젤로에게 사람들이 어떻게 다비드 상을 조각했느냐고 묻자, 그는 다비드로 보이지 않는 모든 것들을 깎아내 버렸을 뿐이라고 대답했다. 나 또한 내가 아닌 모든 것들을 살면서 깎아내고 싶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는 욕망, 겉치레, 삶을 망치는 관계들, 세월을 낭비하는 삶의 방식, 내 안에 남아 스스로를 괴롭히는 감정의 쓰레기들, ‘나’로 보이지 않는 모든 것들을 깎아내 버리려고 노력한 열정적인 엄마의 삶을 남겨주고 싶다.
그렇다면 열정적으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일까? 언젠가 책을 읽으면서 이런 문구를 본 기억이 난다. “열정으로 인생은 인생이 된다.” 책에서는 그런 열정을 유지하기 위한 네 가지 요소로 사랑, 성실, 용서, 정열을 얘기했다. 그 글을 읽는 순간 꼭 그렇게 살다가 삶을 마무리할 때 내 아이에게 엄마의 열정적인 삶을 가치 있는 유산으로 남겨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적이 있다.
열정을 구성하는 첫 번째 요소는 사랑이다. 사랑은 열정적이고 목적의식으로 가득 찬 인생의 기초이기에 삶을 살아가는 연료라고 한다. 특히 결혼생활과 육아에서는 가장 기본이 되는 연료가 사랑이니 엄마에게도 첫 번째 열정은 뜨겁게 사랑하는 마음이다.
두 번째 열정적인 삶의 핵심은 성실이란다. 그리고 그 성실(integrity)이라는 것은 한마디로 우리가 믿는다고 말하는 바를 삶으로 엮어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성실이 결여되어 가정이 파괴되고, 버림받고 아픔을 겪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엄마의 역할을, 부모의 역할을 성실히 일관된 삶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열정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라는 생각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열정을 유지하는 다음 요소는 용서다. 우리는 해결되지 않은 갈등을 가지고 있을 때 온전한 삶을, 온전한 하루를 열정을 다해 살아갈 수 없다. 남편과 아이와, 다른 누군가와 마음의 갈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갈등만큼 감정을 갉아먹고 삶에 구멍을 내는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런 갈등은 분노를 만들고 분노는 열정을 죽인다. 성경에도 나오지 않는가? “미련한 사람은 자기의 분노 때문에 죽고,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의 질투 때문에 죽는 법이다”(욥 5:2) 엄마의 마음이 평안해야 가정과 아이의 마음이 평온해진다. 적극적으로 용서하는 법을 배워서 엄마가 삶의 열정을 되찾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이런 용서를 배운다는 것이, 용서의 마음을 품는다는 것이 참 쉽지가 않다. 그럴 때마다 나는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떠올리며 용서의 방법을 배웠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주십시오. 저 사람들은 자기네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눅 23:34) 나에게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는 사람들로 인해 감정을 망치는 하루, 상처 받는 하루, 그로 인해 삶을 망치는 일은 없어야겠다. 그런 삶은 정리해야 한다. 나만 손해다. 나는 분노에 차오를 때마다 이 말씀을 떠올리며 다시 삶의 열정을 회복하려 노력한다.
마지막으로 열정적인 삶을 위해서는 정열이 필요하다고 한다. 매일매일 마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아가는 마음이 정열이다. 매일 아이와 보내는 똑같은 일상 속에서도, 소소한 일들 가운데에서도 아이와 함께 하는 그 시간에 마음을 다하는 정열이 필요하다. 그런 정열은 엄마가 원하는 일들을 조금씩, 하나씩 만들어가는 삶 속에서 움직이는 모습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삶의 초점을 제대로 맞추고만 있다면 치열한 삶 가운데에도 평온함이 있고,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에서도 정열은 가질 수 있다. 바쁘게 살다 보면 책 몇 장, 글 몇 줄 쓰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날도 많지만 그래도 좋다. 날 위해 무언가를 했고, 내 아이와 함께 머무는 우리의 소중한 공간을 위해 오늘도 열심히 내 손길이 닿았으니...
엄마의 삶이 아주 심하게 덜컹거리기 시작하던 ‘육아’라는 롤러코스터, 그 악명 높은 놀이기구에 겁도 없이 올라탔다가 그 짜릿함에 놀라 엄청 겁을 먹고 잠시 내려왔다. 그동안 너무 꽉 붙들고 있었던 탓에 온몸의 근육이 굳어있다. 너무 힘들고 어지러워서 속에 있는 것들을 모두 쏟아내야 했다. 한번 이렇게 게워내고 나니 오히려 개운해진다. 이젠 제대로 즐기기 위해 다시 올라타려 한다. 두려워 고개도 들지 못했고, 눈도 제대로 뜰 수 없었다면, 이번에는 마음껏 세찬 바람을 맞을지라도 고개 들고, 비명도 지르고, 손도 높이 들어 흔들며 그 짜릿함을 즐겨보려고 한다. 그리고 다시 그 시간을 글쓰기로 남길 것이다.
아이와 함께 하는 엄마의 육아시간 동안 아이에게 가치 있는 유산을 남겨주고 싶어 기록을 시작했다. 때마다 느껴졌던 감정들, 아이에게 전하지 못한 마음들을 전하고 싶은 마음과 열정을 다한 삶을 통해 아이의 거울이 되겠노라 약속하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는 어디 내세울 것 하나 없는 평범한 엄마와 아이의 삶을 살고 있지만, 우리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엄마인 나의 육아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그래서 매일 새로운 마음으로 채워져 갈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수많은 책들과 글쓰기는 엄마의 육아시간에 늘 힘이 되었다. 마음의 정화와 함께 마음 챙김이 무엇보다 중요한 엄마의 시간에 큰 힘이 되어준 책 읽기와 글쓰기로 나는 내 아이에게 남길 가치 있는 유산을 만들어 갈 것이다. 스스로를 돌보며, 아이를 돌보며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지, 그것이 얼마나 존경받을 일인지 세상의 모든 엄마들과 서로 공감하고, 다독여주고, 응원하며 글을 마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