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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대로되는사람 Mar 25. 2022

'쓰는 힘'은 인생의 고비마다 힘이 된다

쓰는 힘은 인생의 고비마다 힘이 된다    

 

 어떤 사람에게든 인생의 고비는 있다. 인생의 고비가 잘난 사람, 못난 사람을 가리며 오지는 않는다. 우리 삶 속으로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기도 하고, 서서히 삶의 그림자가 되어 찾아오기도 한다. 그래서 그 순간을 어떤 방향으로 바라보고,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사실 고통 없이 현실에서 월계관을 차지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 않겠는가? 그것 또한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면 우리는 언제든지 다시 깨어나 일어설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인생의 고비마다 그 위기 상황에 기선을 잡을 방법 하나쯤은 가지고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삶에서 그 방법을 배우는 것만큼 중요한 일도 없다. 


 나는 아무것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열심히 살아왔다.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 분주히 서둘렀다. 그토록 열심히, 분주히 살아오고 서둘렀음에도, 모든 것을 놓쳐버린 듯 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 방향도 잃었다. 분명 앞만 보며 그 길이 맞다고 생각하며 달려왔는데 길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때 깨달았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를 때에는 앞이 아닌, 옆을 돌아봐야 한다는 사실을. 길을 잃었을 때에는 먼저 가본 누군가에게 그 길을 물어야 한다는 사실을. 잠시 멈춰 서서 다른 사람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책을 펼쳐 들고 그들의 인생지도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의 인생지도를 차분히 그려보려 했다. 그렇게 허겁지겁 먹어치우는 배고픈 성장기 아이처럼 미친 듯이 책을 읽었고, 소화시키듯 천천히 글을 쓰면서 나는 나의 인생지도를 그려나갈 수 있었다.《죽기 전에 답해야 할 101가지 질문》에 살아온 삶이 누구보다 질서 정연하고, 인생 교과서처럼 완벽하게 살아오던 한 여성의 이야기가 나온다. 더 바랄 게 없을 만큼 완벽한 삶을 살던 그녀에게 서른다섯 살이 되던 어느 날 갑자기 우울증이 찾아온다. 갑자기 자신이 만든 세상이 무너져 내린 듯 한 느낌이었지만 그 이유도 모르고, 버틸 힘도 없었다. 그런 그녀는 타인의 기대대로 사는 일이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스트레스였다고 고백한다. 그 감정은 처음에는 약간 슬펐을 뿐이었지만, 점점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 많아졌고, 어느 날부터는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한다. 남편에게 목을 졸라 달라는 요청을 할 만큼 끔찍한 순간에 그녀의 남편이 아내에게 한 말이 참 인상적이었다. “눈을 감고 천천히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가 봐. 기왕 깊은 바다에 빠졌으니 맨 밑바닥까지 한번 보고 다시 올라와봐.” 그 말을 들은 아내는 발버둥을 멈추고 삶의 밑바닥을 만나게 된다.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아름다운 모습들을 만난다. 그리고 감정이 가라앉아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을 때, 남편은 덧붙여 말한다. “우리가 끔찍한 우울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건 바닥까지 내려가서가 아니라, 바닥이 발에 닿지 않기 때문이야. 우울은 나쁜 게 아니야. 그건 그냥 살아가면서 한 번쯤 치러야 할 홍역 같은 거지. 홍역을 앓고 나면 면역력이 더욱 강해지듯이, 이제 우울에도 몸과 마음을 온전히 맡겨봐. 우울의 밑바닥까지 편안하게 내려갔다가 올라오는 연습을 하면, 우울도 나를 강하게 만드는 삶의 요소임을 알게 될 거야.” 현명한 남편 덕분에 그녀는 정상에서 내려오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마침내 아름다운 바닥을 가진 삶의 주인이 되었다고 고백한다. 당신은 인생의 아름다운 바닥을 보았던 일이 있는가? 아니면 바닥인 줄도 모르고 지나쳐서 어떤 인생을 살고 있는지 알지도 못한 채, 그저 살아내는 인생을 살고 있지는 않은가? 삶의 바닥이라고 생각되는 그 순간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그 아름다운 바닥을 경험한 사람은 삶의 진짜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된다. 나에게도 지금껏 삶이 내 뜻대로 살아지지 않고, 자꾸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어 인생에 바닥을 쳤던 시기가 두 번 있었다. 참 우울했던 시간이었다. 내가 처음 인생의 바닥을 쳤을 때는 책을 돌파구로 삼았고, 두 번째는 글쓰기로 극복하려 노력했다. 생각을 정리해서 어떤 형식으로든 기록했다. 글쓰기를 통해 시각화된 모습과 꿈꿔왔던 인생이 점점 현실이 되는 모습을 눈으로 보는 순간 나는 생각했던 것만큼 그렇게 비참하고 형편없는 바닥은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넘어진 곳에서 다시 일어서려면 당신을 넘어뜨린 그 바닥을 짚고 일어서야 한다. 그 바닥은 어쩌면 삶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 될 수도 있다. 나는 내 삶의 바닥이라고 생각되던 그 순간 ‘돌아서지 않으리라. 나에겐 돌아갈 길이 없다’ 이런 마음으로 수없이 “No turing back.”을 주문처럼 외쳤다. 그 주문을 외우며 마음이 차분해질 때까지 종이 위에 썼다. 때론 밖으로 나가 그 주문을 외우며 마음이 가라앉을 때까지 걸었다. 그리고 가장 밑바닥까지 왔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기왕 바닥 친 거 내 마음대로 원하는 인생 치열하게 한번 살아보자는 오기가 생겼다. 하고 싶고, 되고 싶고, 갖고 싶고, 먹고 싶고, 가고 싶은 모든 것들을 글로 남겼다. 그것들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이루고 싶은 것들이 많은데 어떻게 죽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미치도록 잘 살고 싶어졌다. 기쁘게 살고 싶어졌다. 쓰지 않았다면 깨닫지 못했을 인생의 아름다운 바닥을 만나는 순간이었다. 이제 나는 마침내 아름다운 바닥을 가진 진짜 내 삶의 주인이 되었다. 


 로마의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천년만년 살 것처럼 행동하지 마라. 죽음은 지금도 다가오고 있다.”라는 금언을 남겼다. 자신의 죽음이 다가오는지도 모르고 천년만년 살 것처럼 깨어 있지만 잠든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시간을 아주 작고 건설적이지 못한 일들을 하며 때론 분주하게 무의미한 일들을 추구하는 사람들도 있고, 때론 산송장이나 다름없는 지경이 되도록 자신의 삶을 내버려 두는 사람들도 있다. 과거의 내 이야기다. 뭔가 열심히 하며 정말 분주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고, 주변 사람들을 챙기는 일에도 소홀하지 않았다. 그들과 시간을 보내는 일에 기꺼이 함께 했다. 나의 이런 모습은 때론 자기 관리가 잘되는 무척이나 매력적인 모습으로 비치기도 했다. 심지어 낯선 사람들에게 조차도! 하지만 아이를 키우고, 살림을 하며 일까지 병행하고 있으니 나 스스로를 챙기는 일에는 너무나도 인색했다. 꿈도 없고, 잘할 수 있는 일도 없고,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산송장이나 다름없이 삶을 내버려 두었던 것 같다. 어설프게 뭔가를 시도하느니 적어도 내 삶을 더 불리하게 만들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라도 있는 것처럼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다. 수없이 많은 걱정들이 가슴속을 차곡차곡 채워가고 있을 뿐이었다. 아마 ‘걱정 치료제’가 있었다면 나는 치사량 이상을 복용했을지도 모른다. 그때 가슴속에서 조용히 입 밖으로 나왔던 한 마디를 잊을 수가 없다. “아, 나는 실패자구나!” 의식 없이 흘러나온 그 한 마디에 가슴이 무너졌다.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의 가장 힘든 순간이었고, 인생의 고비였던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의 나를 상상할 수가 없다. 그 당시 내 삶은 산송장처럼 깨어있지만 잠들어있었다. 우울감으로 뭘 해도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뒤늦게 산후우울증이라도 찾아온 여자처럼. 그런 나를 깨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책이었다. 미친 듯이 책을 읽으며 그들의 삶을 닮고 싶었다. 그들이 써놓은 한 문장이 위로가 되기도 하고, 열정을 살려주기도 하고, 가만히 있지 말고 움직이라고 끊임없는 채찍질을 해주기도 했다. 책을 읽으며 필사하고, 내 삶을 되돌아보며 반성문을 쓰기도 했다. 책 속에서 내 삶이 되었으면 하는 아름다운 문장을 만나면 또 글을 썼다. 세상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 같은 좌절감이 들 때도 그것을 글로 썼고, 꿈꾸던 미래를 그리며 또 글을 썼다. 우울하고, 힘들고, 좌절되고, 억울하고, 뭔지 모를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도 어딘가에 그런 감정들을 끼적였다. 미처 깨닫지도 못한 사이 글쓰기는 나를 다시 깨워 일어 세우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속에 쌓여가던 많은 감정의 쓰레기 더미를 조금씩 치워가기 시작하면서 나는 비로소 깨어났다. 정신이 바싹 말라붙고, 가슴이 삶에 대한 의지를 살려낼 수 없는 위기의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나는 연필과 종이를 챙긴다. 무언가 하고 싶었던 말들을 원 없이 쏟아내고 나면 갑자기 활력이 샘솟는다. 힘든 고비를 또 ‘쓰는 힘’으로 이겨냈다는 생각이 든다. 삶과의 기선제압에서 승리한 승자가 된다. 자신의 삶이 위기라고 생각되면, 그 순간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글을 써보자. 어둡고 우울하고 걱정스러운 감정들은 잠재우고, 잠에서 깨어나듯 멋진 꿈들을 다시 깨워보는 것이다. 어른이 되어서까지 철저히 꿈꾸는 삶을 살면서, 그 꿈을 또 다른 형태로 발전시키며 살아가고자 하는 인생엔 글쓰기가 분명 힘이 될 것이다. 


 글을 쓰는 동안 나는 오로지 내가 상상하는 모든 일들을 현실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힘을 얻었다. 착각이어도 아무 상관이 없었다. 이제 미치고 싶은 삶의 순간들마다 나는 글을 쓰며 미친다. 한바탕 정신 나간 사람처럼 글 속에서 헤매고 나면 외롭고, 우울하고, 복잡했던 감정들이 나를 관통해 어디론가 사라진다. 때때로 출몰해서 나를 괴롭히는 것들도 원하는 결론으로 이야기를 엮어내면 힘을 잃는다. 상상의 힘을 빌려 얼마든지 원하는 상황으로 내 마음의 방향을 변경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이렇듯 원치 않는 감정들이 힘을 잃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자신의 멋진 삶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언제라도 다시 글쓰기를 시작하면 그 모든 순간이 새로운 시간이 된다. “모든 작가와 독자들은 글을 잘 쓰는 것이 그들 모두에게 최고의 여행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고어 비달의 말이다. 내가 생각하는 글을 잘 쓴다는 것은 자신의 머리와 가슴속에 묻어버린 많은 것들을 종이 위에 올려놓는 것이다.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육체를 옭아매고 있던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면, 그래서 살아가는 것이 천국이라면, 그 글이 잘 쓴 글이다. 나의 글이 누군가에게 힘이 된다면 그것은 금상첨화다. 글쓰기로 최고의 여행을 만끽할 준비된 작가다. 즐길 준비만 된다면 글 쓰는 것 자체가 천국이다. 매일매일이 좋은 날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아무리 좋은 것들로 삶을 채우려 해도, 가슴속 시린 것들이 나를 관통해 나오지 못하면 몸과 마음이 차갑게 떨린다. 그 떨림과 함께 가슴속 절규가 들린다. 그것을 그냥 지나치지 말고 써야 한다. 가슴과 입술에서 나오는 말속에 형태를 잡아주면 그것은 살아나 나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다. 내 가슴속에 오랫동안 묻혀있던 우울과 아픈 감정들은 그렇게 세상 밖으로 나와 나를 떠났다. 이것은 다른 어떤 것에 쓸데없이 감정을 빼앗기지 않는 멋진 방법이었다. 살고자 하는 열정이 죽고자 하는 열정을 이겨내는 기적의 순간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쓴다. 남은 인생 동안 이 사실을 기억하며 계속 글을 쓸 수 있기를 바란다. 글 쓰는 매일매일이 참 좋은 날이 된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쓰는 힘’은 인생의 힘든 고비를 이겨내게 하는 힘이 있었다. 스스로를 통제하고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며 위기상황마다 기선을 잡을 수 있는 방법이었다. 글쓰기는 삶과의 기선제압에서 승리를 돕는다. 깨어있지만 잠든 사람처럼 살지 않기 위해 위기의 순간,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글을 써보자. 글쓰기는 어둡고 우울하고 걱정스러운 감정들은 잠재우고 열심히 살아가고자 하는 우리의 인생에 분명 힘이 될 것이다. 인생에 최고의 여행을 선사하여 글 쓰는 매일매일이 좋은 날이 될 것이다. ‘쓰는 힘’은 인생의 고비마다 힘이 되는 멋진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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