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시리도록 따뜻하고 달콤한
호떡 포장마차 앞에서 호떡을 기다린다.
주인아주머니의 분주한 손길 아래 희멀건한 반죽이 노릇노릇 호떡으로 익는다. 갓 익은 호떡을 호호 불어 한 입 베어 물고 주르륵 흐르는 설탕 꿀이 뜨거워 어쩔 줄 모를 때면, 어머니가 들려주신 가슴 시리도록 따뜻했던 호떡 이야기가 생각난다.
바닷바람에 터진 손을 꼽아가며 기다렸던 뱃사람의 월급날, 부둣가의 대폿집은 축제 분위기다. 저마다 가슴에 두둑한 돈봉투를 품은 사내들의 얼굴에는 벌겋게 술기운이 올랐고, 외할아버지도 막걸리로 언 몸을 녹이며 가슴속에 품은 봉투를 만지작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왜일까, 그 시끌벅적한 대폿집에서 한 사내의 울먹이는 소리가 그토록 또렷하게 들린 이유는. 사내의 안타까운 사연은 뱃고동 소리처럼 외할아버지의 가슴을 울렸고, 술자리가 파하고 모두 집으로 돌아갈 때, 외할아버지는 조용히 그 사내를 불렀다.
듣자 하니 젊은 사람 사정이 딱한디,
이 정도면 되겠는가?
외할아버지는 주머니 속에서 하도 만지작 거려 모두 헤어져버린 봉투에서 돈을 뭉텅 꺼내 생면부지의 사내에게 주었고, 사내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거듭 절을 하며, 석 달 안에 꼭 갚겠노라고 말하며 돌아갔다.
그날 밤, 할머니는 주소만 한 줄 달랑 적힌 빈 월급봉투를 받으셨고, 할아버지는 가타부타 말도 없이 석 달 후에 거기 가서 돈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하시며 이내 잠이 드셨다. 할머니는 걸레처럼 헤진 빈 봉투를 들고 석 달간 발만 동동 구르시다가, 석 달이 다될 즈음 어머니와 이모를 부르셨다.
"미연아, 여기 가서 니 아버지가 꿔 준 돈 좀 받아온나"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어머니는 아직 학교도 들어가지 않았던 이모 손을 잡고, 어린아이 걸음으로 제법 걸어야 했던 봉투 속의 주소로 갔다. 물어 물어 찾아간 곳은 목포 동부시장 골목 끝에 있는 허름한 포장마차였다. 어린아이 둘이 천막을 걷고 빼꼼히 머리를 들이밀자 천막 안에는 젊은 여자가 등에 갓난아이를 업고 호떡을 굽고 있었다.
"응, 호떡 사러 왔니?"
"엄니가 아부지가 꿔 준 돈 받아오래요."
아이를 업은 여자와 어머니 사이에선 한 동안 정적이 흘렀고, 철판 위 호떡만 고소한 소리를 내며 익어가고 있었다. 결국 어머니와 이모는 그날 호떡을 팔아서 번 푼돈이 든 봉투를 손에 쥐고, 설탕 꿀로 범벅이 된 손가락을 빨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다음 날도, 그다음 날의 다음날도 할머니는 가서 빌린 돈을 받아오라고 하시며 어머니와 이모를 보내셨고, 어머니는 매번 푼돈이 든 노란 봉투를 들고 배가 터지도록 호떡을 먹고 오셨다. 어머니는 이모와 그렇게 꼬박 한 달을 다녔다고 한다.
할머니는 어머니가 매번 들고 오는 노란 봉투를 보면서 열심히 사는 젊은 부부의 모습이 측은해 보인다며 내일부터는 가지 말라고 하셨다. 꼽꼽쟁이 할머니가 빚을 탕감해주기로 결심하신 것이다.
미연아, 이제 되얏다.
이제 그 집에 그만 가도 된다.
어느새 동부시장 일수꾼이 되어버린 어머니와 이모는 할머니가 이제 그 호떡집에 그만 가도 된다고 하자, 마주 보며 잠시 울먹울먹 하다가 앙 하고 울음을 터트렸다고 한다. 오늘도 동부시장 가야 한다고, 빨리 가서 아줌마도 도와줘야 하고, 애기도 봐줘야 하고, 호떡도 먹어야 한다면서 말이다.
하얗고 뽀얀 밀가루 반죽이 철판 위에서 한껏 부풀어 올랐다가 납작해진다. 그렇게 호떡은 겉은 노릇노릇 바삭하게 속은 부드럽고 연하게 우리네 인생처럼 익어간다. 뜨겁고도 달콤한 꿀 설탕을 품고서 말이다.
호떡을 한 입 베어 물면 부둣가에서 숨 죽여 울던 사내의 뱃고동 소리 같은 울음소리가 들린다. 줄까 말까 고민하다 걸레가 되어버린 주머니 속 봉투도, 빈봉투를 들고 한 숨 쉬는 할머니도, 철 모르는 아이가 흘린 닭똥 같은 눈물도, 이렇게 호떡은 노릇노릇 말랑말랑 가슴 시리도록 따뜻하고 달콤한 사람 사는 맛이 난다.
땅거미가 지는 어둑어둑한 퇴근길, 저마다 사람 사는 맛이 그리워서 그런 것일까.
오늘도 호떡집 앞에는 줄이 늘어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