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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빈 Sep 18. 2024

상처를 꽃으로 돌려주는 자연 앞에서

#척박한 환경에서 피우는 열매와 꽃

와인이 되기 위한 포도는 품종의 캐릭터를 살릴 수 있는 기후 조건이 필요해요. 그래야 독특하고 고유한 매력을 품은 와인이 되거든요.  


더운 기후에서 자라면 알코올 도수가 높아져 무거운 바디와 진한 탄닌을 지닌 와인이 됩니다.  반대로 서늘한 기후에서 자라면 높은 산도에 가볍고 산뜻한 매력을 갖게 되죠.


기후가 무덥든, 온화하든, 서늘하든 모두 흥미로운 와인을 만드는 포도로 자랍니다. 


상쾌한 과일향과 높은 산도가 특징인 소비뇽 블랑은 서늘한 기후를 좋아해요. 그렇지 않으면 숙성이 지나쳐 그 매력을 잃거든요. 불쾌한 풍미가 나거나 아무 맛이 나지 않을 수도 있어요.


포도가 익는 과정은 만만치 않습니다. 우박이라도 내려 포도 껍질이 상처를 입으면 열매는 쉽게 썩게 됩니다. 수분은 꼭 필요하지만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습하게 되면 곰팡이가 자랍니다.  


적응력이 좋은 포도나무, 그런데 척박한 토양을 만나면 


포도나무는 영양이 많은 밭에서 자라면 포도알로 가야 할 양분이 잎과 가지로 가면서 양질의 열매를 맺지 못하게 돼요. 뿌리도 두꺼워져서 길게 자라지 못하죠. 메마르고 영양이 부족한 밭에 있는 포도나무는 물과 영양분을 찾아 땅속 깊이 필사적으로 뿌리를 내립니다. 생존을 위한 얼마나 고되고 외로운 과정일까요. 그 결과 여러 지층으로부터 영양분을 흡수하게 되어 와인을 위한 품질 좋은 포도를 맺게 됩니다.


난이 꽃을 피울 때


난을 키우는 사람들은 자식처럼 애지중지합니다. 그런데 추운 겨울에 햇빛도 안 들고 바람도 안 통하고 집에서 가장 춥고 어두운 곳에 화분을 둘 때가 있어요. 꽃을 흔하게 보여주지 않는 난이 척박한 환경에 처하면 마지막 에너지를 모으고 모아서 예쁘게 꽃을 피우거든요. 


인간의 욕심과 애정 사이, 자연의 선택은 


좋은 과실을 얻기 위해, 귀한 꽃을 보기 위해 부러 메마른 환경에 방치하는 건 인간의 욕심일까요, 귀한 자식일수록 잘 되라고 강하게 키우려는 애정일까요. 이유가 무엇이든 인간이 부여한 험난한 조건 속에서 처절한 사투 끝에 풍성한 열매와 아름다운 꽃으로 돌려주는 자연 앞에서 경건함을 느낍니다.


스스로 꽃이 된 사람


리처드 용재 오닐의 <섬집 아기>가 듣고 싶네요. 따뜻하면서도 구슬픈 선율은 어쩌면 홀로 잠든 섬집 아기보다 더 외로웠을 그의 마음이 담겨서인지 용재 오닐의 편안한 표정을 보면서 들어도 마음이 뭉클하고 눈물이 맺힙니다. 그가 피운 꽃을 보며 위로받고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v8lrQQ9zyvk

리처드 용재 오닐, 섬집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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