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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빈 Sep 18. 2024

로마네 콩티에게 묻다

#와인과  인생 #웰에이징 #첼로와 가을

로마네 콩티의 전설적인 빈티지를 찾아보니 그중에 제가 태어난 해가 있더군요. 저와 동갑내기 친구는 한 병에 4천만 원 이상을 받은 적도 있습니다. 집안 내력을 보면 재배 면적도 좁고, 한 그루에 열리는 포도 송이도 줄여서 수확량 자체를 적게 유지합니다. 그러니 빈티지와 무관하게 로마네 콩티는 귀할 수밖에 없습니다. 친구가 태어난 해에는 날씨가 좋아 포도 농사마저 잘 됐다고 합니다. 금수저 집안에서 사주까지 잘 타고 태어났네요. 


포도로 탄생해서 매력적인 와인이 되기까지의 여정


와인의 재료인 포도는 어떤 품종으로, 어느 지역에서, 어느 해에 태어났는지에 따라 운명의 커다란 줄기가 정해집니다. 


그렇게 태어나 좋은 와인이 되기 위한 포도로 잘 자라기 위해서는 충분한 햇빛과 이산화탄소, 적당한 수분이 필요합니다. 모든 조건이 과해도 모자라도 안 됩니다. 성장 과정에서 서리, 우박, 병충해와 같은 악조건을 만났을 때도 잘 견디고 살아남아야 합니다.   


이렇게 좋은 포도가 되어 수확된 다음에는 와인 메이커가 어떤 철학을 갖고 있는지, 얼마나 진심으로 정성을 다하는지, 남다른 연구와 기술로 얼마나 노력하는지에 따라 와인으로서의 캐릭터와 가치가 만들어집니다.


나라와, 부모와, 태어난 시는 하늘의 운으로 정해지는 우리 인간과 비슷합니다. 자라는 과정에서 모두에게 공평한 환경이 부여되지 않고 때로 시련을 겪어야 하는 것도, 후천적인 노력이 미치는 영향도 우리 삶과 많이 닮았네요.


동갑내기 로마네 콩티, 웰에이징 비결은


고급 와인은 병입 후 숙성의 시간이 그 매력을 더해주기도 합니다. 와인의 품질과 숙성 방법에 따라 50년 가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 길어야 10~20년이고 그 이상은 어렵습니다. 와인의 나이가 서른을 넘기면 상해서 못 마신다고 해요. 그런데 동갑내기 로마네 콩티는 30대 중반에 가장 마시기 좋은 시기로 평가받았고 잘 보관하면 몇 년은 더 버틸 수 있다니 친구의 웰에이징 비결이 궁금해집니다. 


내 삶을 숙성시키는 가치


포도는 바로 수확하는 품종이 있는가 하면, 곰팡이에 습격받고 혹한을 견디기도 합니다. 숙성된 지 한 달 정도에 병입되어 출시되는 와인도 있고, 천사에게 조금씩 나누어주며 오크통에서 순서를 기다리기도 합니다. 오래 기다린다고 다 명품이 되는 건 아니기에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들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조건을 갖고 시작한 기다림인지도 궁금합니다. 저의 삶을 와인에 비추어 새삼 반추해 봅니다. 저는 어떤 품종으로 태어나, 어떤 토양과 날씨를 만나서, 어떤 철학과 신념을 담은 와인이 되는 중일까요.  






푸르게 펼쳐진 드넓은 포도밭을 바라보면 저 멀리서 들려올 것만 같은 선율이 있습니다. 같은 품종의 포도가 다른 매력의 와인이 되는 것처럼 같은 곡을 색다른 풍미로 들어보고 싶습니다.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 협주로 익숙한 곡인데 오늘은 가을에 어울리는 첼로 선율로 들어봅니다. 추석이 지난 달력도, 제 인생의 계절도 가을이니까요. 첼로로 가능한 도발이 어디까지인지 뜨겁게 보여주던 하우저가 평온하게 자연을 느끼는 모습, 참 매력적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PdMizAY4EGc

Intermezzo from Cavalleria Rusticana, HAUSER, Pietro Mascagni with London Symphony Orche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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