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분을 포기한 포도 #생존의 법칙 #용기 있는 결정
얼마 전 타로카드에 나온 패에서 좋은 기회가 오는 운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이전에 아쉽게 놓친 기회가 있는데 그걸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더 큰 기회나 귀인이 곧 등장한다는 메시지였어요. 되려 전에 놓친 게 잘 된 거였어요.
이전의 작은 기회를 잡았더라면 아마 그게 전부라 생각하고 다른 가능성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겠지요. 아니면 이미 선택을 했으니 내려놓지는 못하고 아쉽게도 대운을 그냥 흘려보내야 했을지도 모릅니다.
어떤 선택이 최선인지, 누가 귀인이고 악연인지는 알 수 없어요. 모든 결정에 따르는 기회비용은 당연하니 미련이나 후회로 시간을 보내지는 말아야겠어요. 아쉬움은 교훈으로 남긴 채 서둘러 털어버리는 게 좋겠습니다. 그러는 동안 소중한 지금 이 순간이 지나가고 있으니까요.
좋은 와인을 만들기 위해 포도를 키우는 마음
포도의 당분을 먹은 효모가 알코올을 만들면서 와인이 됩니다. 근사한 와인이 되고 싶은 포도는 당분을 많이 만들어야 합니다. 집에서 과일 담금주 만들 때도 설탕 많이 넣잖아요.
당분이 많이 생기려면 적정한 온기가 필요한데요, 이 조건이 충분하지 않은 지역에서는 해를 향해 경사진 땅이나 햇빛이 반사되는 강 주변에 포도나무를 심어서 햇빛을 더 받게 해 줍니다. 자식 키우는 정성은 포도 재배자나 맹모나 같은 마음인가 봅니다.
수분도 필요해요. 비가 적게 내리면 관개 시설로 보충합니다. 자녀에게 부족한 공부는 과외 선생님과 보습 학원을 섭외해서 채워주는 부모의 마음을 알지만 과도하게 습하면 곰팡이가 퍼지니 적정선이 필요합니다.
포도나무는 어떤 마음으로 자라고 있을까
날씨가 너무 더우면 포도나무는 잎으로 수분을 증발시킵니다. 그러면 온도를 서늘하게 유지할 수 있어요. 상황이 더 심각해지면 포도나무는 말라죽지 않기 위해서 이를 멈춥니다. 이렇게 되면 온기가 있어도 당분이 만들어지지 않아요. 생존을 위해 당분을 포기한 겁니다. 와인이 되기 위한 필수 조건을 내려놓았습니다.
자연에서 배우는 과감한 포기와 선택
통제할 수 없는 변수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계속 시간만 버릴 수는 없습니다. 과감한 포기와 선택을 자연에서 배웁니다. 무엇보다도 생존이 가장 중요하니까요. 모든 결정의 순간에서 우리가 가장 우선시해야 하는 첫 번째 순위는 언제나 자기 자신입니다. 꿈도, 성공도, 내가 이 세상에 있어야 가능하고 의미가 있습니다.
와인의 꿈을 이루는 대신, 포도나무는 자신의 삶을 지켰습니다.
와인이 되어야만 포도로 태어난 인생이 가치 있는 것은 아니에요. 이 땅에 태어나서 존재하는 삶, 그것만으로도 신비롭고 귀한 일입니다. 힘든 환경에서 포도나무가 선택한 용기에 박수와 응원을 보내주고 싶어요. 근사한 라벨을 붙인 와인이 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포도나무는 자라는 동안 주인의 다정한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행복했을 거라고 믿고 싶습니다.
마음이 조금 울적해지는 건 어쩔 수 없네요. 하지만 오늘은, 와인을 마시지는 않겠습니다. 폭염 특보도 해제되고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는 금요일 밤, 추석 때 먹고 남은 모둠전에 막걸리 한잔 해야겠어요. 오늘의 배경 음악은 영화 <파리넬리>의 삽입곡으로 유명한 '울게 하소서'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gBVvGuTKvf8
https://www.youtube.com/watch?v=mDNmHpXlWf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