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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부자궁내막증 연재를 한동안 멈췄던 이유_완치

완치를 받아드리기 위한 시간과 과정

by 천변만화

브런치 북

서른아홉, 이토록 아픈 생리통





저는 얼마 전 심부자궁내막증 D.I.E. 4기 유착과 염증을 비수술로 낫았습니다.

치료의 과정들은 어느 하나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굉장히 치밀하고 지독하고 집요해야만 하는 과정이었습니다.

D.I.E. 의 통증과 고통은 살며 느낀 가장 극단의 고립감과 고독을 가르쳐 주었고
삶이 아이러니하게도 저는 그 속에서 비로소 홀로 서는 성장과 독립을 이뤄냈습니다.

현재는 삶의 극단을 오간 저를 찾아온 '자유'라는 이름을 한 가지씩 느껴가며 친해지고 있습니다.

제 연재의 이해와 목적상 #1, #4, #5 연재를 먼저 보시길 추천합니다.
제 칼럼을 이해하시는데 많은 도움이 되실 겁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면 해당 연재로 이동합니다.)

01화 #1 제발, 그건 생리통이 아니라고요

04화 #4 생리혈, 살아 움직이는 액체괴물

#5 심부자궁내막증 연재를 한동안 멈췄던 이유_완치




지난 연재_#4 생리혈

살아

움직이는

액체괴물

(생리는 빨갛다고만 알고 있나요?)







오늘 연재_#5 심부자궁내막증 연재를

한동안 멈췄던 이유_ 완치



완치를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과 과정의 필요.



본문에 들어가기 전, 3개월 만에 돌아온 브런치는 설레고 두렵기도 합니다.

글을 쓰지 못하는 그간의 시간 동안 브런치를 대하는 마음이 브런치를 처음 시작할 때와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지난 3개월, 브런치와 연재의 방향성을 고민하며

가장 많이 떠오른 감정은 감사함이었습니다.

그리고 글에 대한 외부의 반응에 집착하며 위축되던 제 자세가 아쉬웠습니다.

평소에도 못하던 SNS의 또 다른 버전 같단 생각에 사실 혼란스럽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쓰지 못하는 시간 동안 마인드를

더 오픈하였고 제한적인 접근을 버리고

제 글을 올리고 공개하는 공간에 의미를 두자

마음먹게 된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구독을 하던 작가분은 겨우 7명이었는데요,

(반면 저를 구독해 주시던 분들은 과분하고 감사하게도 140 여명이었지요.)

다시 브런치를 시작하면 저를 구독해주시는 분들 포함

더 많은 작가분들을 먼저 구독하고

그분들의 글알림이 뜨면 그때그때 읽고 더 자유롭게 접해보자 마음 먹었지요.


이제는 조급해하지 않고 제 글이 어느 순간 스스로 존재를 꽃피우고 열매 맺기를 기다려 주려 합니다.


연재가 멈췄던 그간 저를 걱정해 주시고 안부를 물어봐주신 몇 분의 이웃 브런치 작가님들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5. 지난 3개월간 심부자궁 내막증 연재를 멈췄던 이유,



결론부터 말하면 '서른아홉, 이토록 아픈 생리통' 연재를 시작하고 얼마 후 MRI 재검사를 통해 유착과 염증이 깨끗이 사라진 걸 확인했었습니다. 의료진과 저는 그 결과를 보면서도 어리둥절했습니다.


D.I.E.라는 질병으로 인해 매 순간 자살과 절망밖에는 믿어지지 않던 환자였던 나.


진료실에서 결과를 보고 들으면서도 믿기지 않았고, 기적이었고 기뻤고 감사한 마음에 그간의 고통과 인내 그리고 노력한 시간들이 복받쳤습니다.


기적 같은 MRI 결과 후, 생에 처음 느껴보는 감정들이 그간의 여러 장면 장면들로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그 감정들 속에는 회한이란 감정도 들어있었습니다.

(아프지 않은 몸으로 다시 맞는 봄을 새롭게 느끼는 지금 역시 그렇습니다.)


그러나 기쁨과 감격도 잠시, 절망밖에 모르던 환자일 때와는 또 다른 불안과 두려움 그리고 슬픔과 혼란을 마주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번에도 예고 없는 그 질문과 답을 정직하게 치러내야 했습니다.


모순이 없고 의문이 없는 답.


나 자신 스스로가 믿음과 메시지를 쥐고 전진할 수 있는 완전무결한 답.


때문에 언제나 항상 진실되게 찾아야 하는 답.



비수술 완치

모든 기적과 선물이 당장 기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다시 연재를 쓰려면 오류 없는 방향성을 내 안에서 찾아야만 했습니다.

(그것이 투병에 관한 것이든 연재를 재개해야 하는 이유에 관한 것이든)


연재는 일반 에세이나 창작글이 아니었기에 오로지 내 육신이 그 기준이고 검증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엇보다 이 연재를 끝내 써야만 한다면, 독자에게 여러 의미로 진실되고 건강한 글을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꿈꿔 본 적 없고 상상해 볼 수도 없었던 거대한 소원, 비수술 완치. 수술을 하지 않고 유착이 떨어지는 일.

선물 뒤에 준비되지 않은 환자에게 밀려오는 당혹감과 혼란은 다음과 같습니다.


1. DIE 환자 대부분이 다시 쉽게 유착이 된다는 사실


2. 그로 인해 언제든 통증과 수술에 대한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사실


3. 무엇보다 유착과 염증이 사라졌음에도 내 영혼을 갉아먹던 통증이 여전하다는 사실


4. 수술을 해도 폐경 전까지 평생 먹어야 하고, 수술하지 않아도 폐경 전까지 먹어야 하는 호르몬약이 가진 굵직한 숙제들


5. 그래서 도대체 나는 어디에 속한 환자인 건지, 내 병은 어디쯤에 와 있는 건지, 어떤 방향으로 기준을 잡고 어떤 모색과 노력을 다시 시작해야 하며, 나는 언제까지 마치 고행자, 기도자처럼 달려야 하는지, 어디까지가 종주인지, 하는 막막함과 혼란스러운 현실



D.I.E. 통증은 희한하게도 이골이 나지 않는다. 적응이 되지 않는단 뜻이다.
환자 대부분이 한계를 웃도는 통증 앞에 너무 오랫동안 자주 홀로 노출되어 버티다 보니
혹여 시간이 지날수록 통증이 옅어지고 줄더라도 종전보다 더 빠르고 쉽게 그리고 더 크게
통증을 느끼며 쉽세 지치고 무너져버린다.
원인 모를 지나친 통증에 홀로 노출되고 방치된 시간이 긴 만큼 통증을 버틸 심리적 힘이 없는 것이다.

그럴 때 터져 나오는 울음과 함께 입에서 절로 나오는 소리란 '나 당장 수술할래, 이렇게 더 못 살겠어. 차라리 죽여줘.이다.



한창 통증이 심할 때의 심정은
독사와 지네 백 마리한테 물려서 이 통증이 낫는다면
그 조차 두렵지 않다, 입니다.
그 통증이 한 달 내내
24시간 이어지기도 하는 병이 바로 DIE입니다.



MRI로 유착과 염증이 사라졌음을 알던 날, 수술의 덫에서 벗어나 날아갈듯한 마음으로 '비잔'이라는 약을 3개월치 받아왔습니다. 아주 아주 쉽게 말해 강제 조기 폐경을 시키는 호르몬 약입니다. ('비잔' 역시 앞으로의 연재에서 자세히 다루겠다.)


그러나 놀라움과 기쁨은 얼마 가지 못했습니다. 처방받은 약은 심한 유방통 등의 부작용으로 몸에서 결국 받지 못해 중단하였고, 생리는 다시 시작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기서부터 혼란이 시작됐습니다. 유착과 염증이 사라졌음에도 생리 전 후로 여전히 이어지는 극심한 항문의 절박감과 배변통과 요로감의 고통에 무너지기는 똑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제 연재의 방향성을 다시 심도 있게 고민해야 했습니다.



"나는 낫았는데, 그 깊은 유착이,

통증의 모든 원인이 떨어졌다는데, 나는 왜?!

그대로 고통받는가?!"



더 큰 의문과 혼란을 안은 채, 다시 연재를 하기 위해 질병에 대해 더욱 다각도로 깊이 공부하며 알게 되었다. 지독하게 깊은 유착과 거대한 염증이 사라졌음에도 내가 여전한 위 세 가지 고통을 겪는 이유를.

모든 것은 인체가 정직하게 과학적이기 때문이고 그러한 인체는 그 답을 진실되게 다 보여준다.


앞으로도 연재에서
이 절실히 필요한 독자들을 위해
을 심도 있게 핵심적으로

다룰 것입니다.




감사하고 다행인 것은 유착과 염증이 사라진 후, 위 세 가지 통증 외에는 그전에 있던 모든 통증 등의 증후군이 모두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위에서 언급해 놓은 세 가지 통증의 강도가 200이라면 아래의 통증들은 기본이 100으로 시작했었습니다.

오한과 오심, 하복부, 허리, 골반, 허벅지 등등에 극심히 이어지던 여러 통증들 말입니다.


완치 결과를 받고 근래 한동안은 치료에 대한 노력에 불신과 회의감으로 벗아웃이 와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지극히 바라던 결과를 기적처럼 받았지만,

그 뒤엔 생각지 못한 챕터들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죠. 버거웠고 혼란스러웠습니다.



약 3개월 만에 다시 연재를 쓸 수 있게 된 이유는


연재의 방향성을 찾아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완치=관리"라는 개념을 이해하고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DIE라는 질병의 완치 개념을 받아드리는데 짧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완치 후 생리를 하면 여전히 이어지는 위 3가지 통증에 대한 이해와 이론을 제 몸에 적용, 검증을 통해 지금은 몸과 마음이 안정기에 돌입했고 그것을 일상으로 유지하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완치 후 받아 와 적응을 실패했던 비잔 호르몬약에 대한 접근 또한 의사와 상의해 바꿔보았습니다.

이를테면 이것과 저것과 그것의 콜라보라고 표현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여성의 생식기관과 병변 그리고 생리주기에 대한 과학적인 이해와 접근을 토대로 다양한 약물의 접근을 시도해 가며 나만의 "약"을 찾는 과정입니다.

(약물 등에 대해 다루는 연재는 앞으로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양의학만 도움을 받고 있진 않습니다.

이미 극심한 4기 환자 때부터 감사하게도 제 몸을 알고 맡길 수 있는 한의사님을 만나게 되어 지금까지도 양의학과 양약이 알 수 없고, 줄 수 없는 치료 도움을 꾸준히 받고 있습니다.

(양의학과 한의학의 능력은 마치 창과 방패 같습니다.)





끝을 알 수 없는 터널과
가본 적 없는 산을 또 한 번 오르고 내리며 알게 되었다.



이제는 그런 시련을
누가, 왜 주는지는 궁금하지 않다.
그리고
내게 누군가들이 부당한 상처와 모욕을 줌에
그 못남들에 안달 나지 않는다.

이제 그런 사사로운 것들이
나를 흔들며 의문이고억울하던
시기를 벗어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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