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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쑥과마눌 Jun 08. 2017

읽으면 아프다.. 한강 작가

아기부처


작년 여름을 세 아이들을 이끌고 한국에서 보냈다.

한국은.. 서울은.. 

참말로 

독을 품은 듯 무더웠다.


집에서 며칠을 늘어져 있는 세 아이들을 이끌고,

광화문이라도 보여주고,

킹세종과 이순신 동상 앞에서 인증샷이라도 찍으려고 나갔었다. 


이제는 272가 된 205번 버스를 집 앞에서 타고

그립던 안국동에 학교들을 지날 때

풍문 여중고 앞에 플랭카드가 걸려있었다.


한강 작가의 맨부커상 수상과

육사를 수석 인가로 졸업하는 여학생이

동문임을 축하하는 것이었다. 


서울대를 가거나

변호사가 되면 달리던 자랑질 플랭카드가

작가로 이름을 날리고

여성으로 육사를 우등으로 졸업한 일에도 휘날리니.. 

세상은 변하기도, 안 변하기도 한 듯하다고 생각했다. 


내 또래에 풍문을 다녔다면

오래된 서울의 강북 학군이고

느리고 점잖은 동네에 살았으리라.


가끔씩 친구들 집을 놀러 가면,

8번 버스를 타고,

거의 우이동 종점까지 가게 되었다.


그곳은

나무 몇 그루가 심긴 손바닥만 한 마당을 가진

양옥들이 네모반듯하니 즐비했고,

문을 열고 따라 들어가면,

동물 좋아하는 친구 아빠가 기르던 오리도,

국민학교 앞에서 어린 동생이 사 온 병아리가

죽지도 않고 살아서 닭이 되어

여기저기 미운 짓을 하고 다니곤 했던 그런 기억들이 있다.


서울인 듯, 서울 아닌.. 서울 같은 서울 동네

우이동에 살았다는 한강 작가도 그런 정서를 공유하겠구나 생각되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비논리적 정서로

그녀의 책들을 보기 시작했다.


지난 3월부터 시작된 나의 뒷북 독서삘은

매달 자동이체를 세팅하고 잊어버렸다가

어느 날 타게 되는 소형 저축성보험처럼

묵직한 기쁨으로 다가왔다. 


처음에는 이상문학상 수상집에 수록된 몽고반점을 읽었고..

그리고, 그녀가 궁금해져서 

그녀의 시를 읽고

채식주의자를 읽고..

그리고, 번역본이 궁금해져서 영어판을 읽고

다른 글들을 찾아서 읽었다. 


장삼이사의 삶이란 게..

관객의 입장이라,

그 짓도 오래 하면,

선수는 못 되어도,

심판의 안목 정도는 따라가게 된다. 


책의 맨 뒤 부록처럼 달린 심사평을 보면

대부분이 내 맘과 같다.

내가 느낀 부분을 심판도 느꼈고

내가 모르던 부분을 심판도 모르는 듯해서

암호처럼 더욱 어렵게 써 놓기도 한다. 


알고 보니 한국에 있는 상이란 상은

이미 다 털어서 타 간 한강

군. 계. 일. 학. 의 글빨로

같이 실린 다른 글들을 싱겁게 하는

자극성 깊은 글의 맛이 있었다. 


고만고만한 작가는 그저 스토리텔러 정도로

알로 보던 나를 골로 보내는 깔끔한 마무리까지... 


한강의 글은 읽을 때마다

이름 모를 아픔으로 저릿한데,

그것은 한강의 탁월한 감정이입 능력 때문인 듯하다 


한강은

글 중에 각각의 캐릭터에게로..

빙의하여 서사를 이룬다 


여린 영혼의 강요된 폭력으로

한때는 가해자가..

한때는 피해자가.. 되어

주고받은 폭력과 그 상처에 대해

세밀하고 유려하고 아름답게 묘사해내는데

읽는 내가 가슴이 안 저리면.

사람도 아녀.. 가 되고 말겠지. 


그녀 글의 모든 캐릭터는 상처를 중심으로 서 있다. 


상처를 받은 사람

상처를 이해하는 사람

상처를 이해해 가는 사람

상처받은 인간에게 손 털고 가는 사람 


어느 누구의 심정도 덜 묘사되지 않는다. 


읽는 내내

고개를 잠깐씩 돌려

한숨짓게 하는 글이고

모국어인데도

읽는 진도를 더디 빼는 글이다.


그런 그녀의 글에 대하여

그녀 자신의 내심을 드러내는 글이

아기부처라는 소설이라 보인다. 


멀끔한 외모의 뉴스를 진해하는 아나운서로 잘 나가는 남편이 실상은

와이셔츠 아래부터 옷으로 가려진 모든 부분이 끔찍한 화상 자국이 있었고,

여리고 순해서 어려서부터 더 모질게 질책받은 아내는

그의 상처를 안고자 하나 역량 안됨을 자백하는 글이다. 


맞지 아니한가.

누군들 옷으로 가려진 그 어느 부분에

남에게 못 보일 오래되고 흉한 상처 하나 없으리..


누군들 남에게 가린 그 아프고 아픈 상처 중 하나

보듬고 이해하려 덤볐다가 훅간적 없으리.. 


수려한 문체는

길게 늘여 쓴 시처럼 아름답게도

독자의 마음을 콕콕콕 찌르고, 찌른 데 또 찌르며..


눈 속에 맺힌 눈물 방울이 미처 볼따구를 지나가기도 전에

작가는 특유의 말알간 표정으로 

또 다른 아픔을 선빵으로 날리고 도망가고 없다. 


그게 한강이더라~


우리가 언제 같은 8번 버스를 탄 적이 있었을까


시간이 시내보다 한참은 더디 흐르고,

변화랄 꺼 별로 없는

조용하고 무심한 우이동에서 

오며 가며 스쳤을 그녀에게 감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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