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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쑥과마눌 Dec 09. 2019

마음의 이사

진짜로 갔다

늘 걷는 산책길을 

좀 길게 걸으면

아이의 친구네 집이 나왔다.



예의 바른 도시여자인 그 아이엄마는

자신의 뜰에 

내내 피고 또 피는 동백나무가 있는 줄도 몰라서

내가 오가며 가지도 치고

꽃이 빽빽하면 솎아서 집으로 들고 오곤 했다.



지난 여름

그 가족이 근처 큰 집을 사서 이사한 후엔

일부러 피해 다녔다.



모든 것이 고대로인데 

사람만이 없는 풍경은

마음 저어짝에 

달그락거려서 꾹 눌러 놓은 슬픔을 해제하니까

바람이 계절을 두어번 개비해 놓은 어제

이젠 애도기간이 끝났다 싶어

그 집을 반환점으로 삼아 걸어 본다.



다시 가 본 집에는

여전히 동백나무 무고하시고

집 옆으로 주루룩 넝클넝클 겹동백나무들도 

모두 다 단정히 단발을 하고 서 있더라.



이젠 곱게 사진만 찍고 온다.



전엔 향기도 맡고

꽃 이파리도 입에 물고

구역표시를 하는 동네 개처럼 

나무를 빙글빙글 돌았는데..


그 집이 진짜로 이사를 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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