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세어라! 기록의 인간
동굴 속 암각화 그린 사람이나
온라인 담벼락에 눈물이든 욕이든 흘린 사람이나
다 기록하는 본능에서 하는 행동이다.
모든 것이 유한하다는 걸
어머머 하는 순간에 사라져 버린다는 걸
많이도 쏟아 흘려보내고 난 뒤에 안다.
그래서 기록한다.
먹고 사느라 오는 줄도 가는 줄도 모르던 계절이
삐진 애인의 밀당처럼 분홍빛 꽃잎을 내 이마에 입 맞출 때,
퇴근길 올려다본 내 집 창의 불빛 유무에 대해,
뜨신 밥을 먹고 치운 식탁에 앉아,
온몸에 퍼지는 당분이 속삭이는 소리들을 받아 적는다.
나라는 필터는
나라는 사람의 세계이고, 한계이겠지.
나라는 사람의 세계와 한계는
익숙해져 나마저도 궁금한 게 없어진 나에게
다시 묻는 재시험이고.
소를 그리던 사람은 여전히 강한 것을 사모하고,
꽃을 그리던 사람은 여전히 우울의 우물에 우물우물 빠지는데,
나는 무엇을 그렸던 사람일까 생각한다.
그리하여,
내가 작가 인가 하는 물음은 대기표 받고
사회적 거리에 부합하느라
문 밖에서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 의문이다.
우선은
오직 기록할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