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밍이라는 놈의 타이밍

(소설 2화) 나라는 습관

by 쑥과마눌

주말은 유일하게 내가 넋을 놓고 멍하니 있을 수 있는 시간이다.

늘 누군가의 재판일자에 맞춰서, 일정을 챙기고, 놓친 것이 없는지, 끊임없이 긴장해야 하는 일주일을 보내고 나면, 무념무상의 순간이 절실해진다.

휴식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것에서 비로소 시작하고, 마음에 얹은 것들이 하나씩 덜어질 때 완성된다.

그래서, 아무것도, 아무 말도, 아무 생각도, 그리고, 아무도 없는 공간이 소중하다.


열심히 계획하고, 많이 노력하며, 최선을 다해 목표를 향해 달리다 보면 그 끝에는 무언가 있다.

성공일 수도, 실패일 수도, 둘 다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하게 기다리는 것은 허탈함과 피로뿐이다.


그만큼 열심히 살았냐고 물으면 할 말 없다.

비슷한 색깔을 내려 발광은 한 것 같기도 하다.

내 노력이 충분치 않았을 수도, 아니면, 처음부터 말도 안 되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내가 피로하다는 것이다.

이룬 것도 한 일도 없는데, 어이없게 피곤하다.

이룬 것이, 한 일이 없어, 더욱 피곤한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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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버지니아로 이민 왔을 때, 패어팩스는 그냥 한적한 워싱턴 디씨의 근교 시골이었다.

덕분에 부모님은 한국에서 가져온 많지 않은 돈으로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장만할 수 있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이민 온 많은 가정들이 기반을 마련하려고 가게를 알아보다가, 어리숙한 이민자에게 친절하던 먼저 온 이민자에게 사기를 당하고, 오갈 데가 없어진 사연은 흔했다.

아빠는 한국을 떠나면서부터, 누가 봐도 가난하여 도무지 돈 냄새라고는 안 나는 사람으로 보이기로 결심하였다. 가져온 돈이 도망가지 않도록 일단 집을 사고, 나머지는 자기 한 몸의 노동으로 일상을 살아가기로 말이다. 아빠로서는 최선의 선택이었고, 결과적으로 옳았다.


그렇게 우리가 수십 년을 살게 된 집은 정면에서 보면 일층이고, 뒷마당에서 보면 이층인 램블러 스타일이다.

일층은 일가족이 살 수 있도록 방 세 개와 부엌, 거실과 서재로 되어 있고, 아래층은 출입구가 각각 따로 달린 방, 거실, 부엌, 화장실이 하나씩이 있는 두 개의 원베드룸 아파트 같은 공간이 있다.


이민 초기에 우리 네 식구는 아래층에 잇는 원베드룸 아파트 중 하나에서 살았다.

다른 공간들을 모두 세로 내주고, 방 하나, 거실 하나를 방 두 개처럼 사용하면서,

사는 게 피어지면 위층으로 올라가서 살 계획했었다.

식구들 모두가 각자 자기 공간을 가지고, 거실에 앉아서 거실에서 하는 일을, 서재에서는 서재에서 하는 일을, 부엌에서는 부엌에서 하는 일을 하는 그런 일상이 카테고리별로 구별된 삶을 바랐다.

그런 날은 영원히 오지 않았다.


나와 동생은 학교로 떠났고, 결혼을 했다.

이혼 후, 이곳으로 돌아왔을 때, 엄마와 동생은 다시 한국으로 나가고 없었다.

아빠만 홀로 우리 네 식구가 살던 아래층의 공간에서 살고 있었다.

떠날 때처럼 커다란 옷가방 하나를 들고 덜레스 공항에 나타났을 때, 아빠는 말이 없이 내가 끌고 온 가방을 받아 드는 걸로 나를 맞았다. 그리고 우리는 익숙하게 공항 주차장으로 같이 걸어갔다.

아빠는 내 캐리어를 몰고 온 트럭에 싣고는, 밥을 먹었냐고 물었다.

처음 아빠가 말을 건 거였는데, 그 말이 아빠한테 무수하게 많은 말을 듣고 난 뒤에 듣는 것처럼 들렸다.

늘 가던 중국집에 들려 매콤한 국물에 볶음밥을 먹고 난 뒤 집으로 도착했다.

우리가 살던 아래층의 익숙한 손잡이를 잡으려고 내가 손을 내밀었을 때,

아빠가 그 손을 잡아 옆에 다른 출입문으로 이끌었다.

그렇게 아빠와 나는 아래층의 양 날개를 차지했다.

오래전 함께 꿈꾸었던 한 층을 다 사용하고 사는 삶에 근접한 비주얼을 만들어 내었다.


꿈은 이루어지도 한다.

그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은 아쉽게도 그 꿈이 더 이상 큰 의미도 큰 차이도 만들어 내지 못할 때가 많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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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의 가을은 늘 포근하다.

뒤뜰로 향한 출입문을 열어 두고 나갈 채비를 시작하였다.

아빠가 열린 문 밖에 서서 안을 빼꼼히 들여다보았다.

“일 하러 나가는 거예요”

묻지 않아도 대답을 한다

“그래도 좋다. ”

“.....”

“하루 종일 티브이 보다가”

“.....”

“라면이나 먹고..”

“그 정도 탈선은 눈 감아 주는 거야”

내버려두면 내 라이프스타일을 있는 그대로 낭독할 아빠의 말을 잘랐다.

피식 웃으며 기분 좋게 돌아서서 가는 아빠를 보니, 저번에 봤을 때보다 키가 또 줄어든 거 같다.

노인들의 키는 자꾸 누가 훔쳐가는지.


이곳에 여자 변호사들은 교복처럼 검은색 정장을 입고 그 위에 진주 목걸이를 한다.

변호사가 쓰일만한 어느 장소에서도 어울리는 차림새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검은 정장에 진주 목걸이를 해야 어울리는 장소에서 주로 환영받는 슬픔이 있다.


생각할 것도 없이 그렇게 입고 나가려다, 날씨도 좋고 해서 니트원피스를 집어 들어 입었다.

목이 휑한 것 같아 다시 교복 아이템인 진주 목걸이를 하려다가 옷장 문을 다시 열었다.

저번에 엄마와 동생이 왔을 때 사놓고 잊고 간 쇼핑백이 있었다.

한국에서 환전해 온 달러를 다 쓰고 가야 한다면서 날마다 쇼핑을 나섰던 엄마와 동생이었다.

온 동네 그 많은 쇼핑몰을 빠짐없이 돌면서도 그들은 결코 지치지 않았다.

그러다가 집에 도착하면 태엽이 풀린 인형처럼 털썩 주저앉았다.

양손에 가득한 쇼핑백을 바닥에 내려놓으면서 소파로 무너져 내렸는데, 그곳에서 늘어진 채로 아빠가 차려주는 밥상을 받았다.

환전한 돈을 다 쓰고 가는 것, 그래서, 다시 원화로 바꾸면서 수수료를 두 번 물지 않는 것이 그들의 대의였고 명분이었다. 저녁마다 내일의 쇼핑 계획을 세우고, 빠진 것 없이 사서, 돈을 쓰는 것이 타고난 업보를 해치우는 거처럼 애달아했다.

그러면서도 아빠나 나에게 그 돈의 일부를 주거나, 머무는 동안 생활비를 내는 걸로 그 걱정을 해결할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다.


가족도 잠시라도 따로 떨어져 살아야 서로에 대해서 아는 것이 많아진다.

날마다 보고 함께하는 삶은 서로에 대해서 눈멀게 한다.

익숙함이란 어떠한 이상함도 평범하게 만드는 특별한 재주가 있다.

가족은 물리적 거리가 생겨야, 스스로가 어떤 모습으로 서로를 대해 왔는지 알게 된다.

룰이란 지키는 사람만을 가두는 틀이라는 법칙은 세상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횡행한다.

상대방도 나의 배려를, 나의 노고를, 나처럼 알아주길 바라는 건 웃기지도 않는 일이라는 걸,

사 년 만에 만난 엄마와 동생을 보며 알았다.


동생은 나와는 모든 면에서 다른 사람이었다.

동생에게는 세상의 모든 명분을 자신을 위해 존재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었다.

그 능력은 내가 같은 주장을 하면 나 스스로를 이기적이고 염치없게 느껴지게 만드는 특별한 재주도 포함했다.

동생은 그렇게 방패와 창을 완벽하게 완비하고, 오직 자신만이 적재적소에 휘두르며, 어떠한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았었다.

좋고 새로운 것이 생기면, 그 아끼는 마음을 생각해서 먼저 건드리지 않았던 나와 달리,

그녀는 늘 거리낌 없이 가진 것을 즐겼다. 자기 것이든, 내 것이든.

능력자 동생을 떠올리며, 오늘 입을 원피스에 왠지 어울릴 듯한 스카프를 쇼핑백에서 꺼냈다.


“너로 하게쓰... 애를.. 맺쓰(Her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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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변이 칼 같이 약속시간에 집 앞에 차를 댄다.

중요한 일이긴 한가 보다.

차로 천천히 다가갔다.

운전석에서 나와 집 쪽으로 걸어오고 있던 정변이 흠칫한다.

곧이어, 조수석 문을 손수 열어준다.

그런 그의 행동에 과장이 들어가면서 내게 감동했음을 보인다.


“니, 내한테 반했나?”

“쫌”

그가 말을 이었다.

“맨날 샤워하고 젖은 머리 그대로 나타 난 거만 보니까.”

“그럼 샤워하지 말고, 나타날까?”

“헐”

한 글자 컨템퍼러리 한국어 검정시험이 있다면, 정변은 장원급제다.


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나는 방문하는 집에 대해서,

더 정확히는 우리가 맡을 수도 있는 케이스에 대해서 물었다.

“장르가 뭐야?”

형사, 민사, 혹은 가사 중 어디에 해당되느냐는 말이다.

“ little bit of everything “

정변이 나를 흘깃 쳐다보며 대답하고, 시선을 운전대 앞으로 돌린다.

그리고, 나직하게 속삭였다.

“like always “

나도 노을이 시작한 밖을 쳐다보며, 그의 마지막 말을 되새겼다.

“Like always”


삶의 문제들은 대부분 종합적이고 복잡하여, 이리 해결할 수도 저리 치고받을 수도 없다.

하나, 그 종합예술의 최고봉은 뭐니 뭐니 해도 가사 사건이다.




#타이밍의 타이밍은 절묘하다

#그래서 구리다

#사진과 글은 스스로 찍고, 썼으며,

#마지막 그림은 앙리 루소의 '앵무새와 원숭이가 있는 이국적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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