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만 예술이면, 꽃이 다하게

(소설 3화) 나라는 습관

by 쑥과마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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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 조지타운 파이크에서 포토맥 강가 주택가로 접어들었다.

길이 2차선으로 좁아지고, 집들이 드물어졌다.

우거진 숲과 흐르는 강이 내려다 보이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나는 벌써부터 깜깜한 밤에 이곳을 돌아 나올 것이 걱정되었다.

이런 곳의 밤은 사슴들 때문에 위험하다.

어둠이 내려와 길이란 길들을 하나둘씩 감추어 버리면, 낮 동안 숲에 몸을 숨겼던 사슴들이 길가로 나오기 시작한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눈만 초롱불처럼 달고, 운전하는 차로 뛰어든다.

운전하는 동물이 알아서 비켜가길 바라면서.

길 하나 건너는데, 하나의 목숨이 걸린다.

일상에서 자연은 신비로운 데 있지 않고, 생존하는 데 있었다.


정변이 사유지라는 표시가 적힌 입구에서 우회전을 해서 들어갔다.

그러자, 더욱 울창한 숲이 펼쳐졌다.

나무들은 많아지고, 길이 좁아지면서 한층 더 어둑해졌다.

그 사이로 건물이 몇 동 보였다.

첫 건물을 지나쳤다.

나는 고개를 돌려서 지나 간 건물을 바라보았다.

그러는 내 모습을 보고, 정변이 입을 열었다.


“쎄라, 말을 키우는 곳을 한국말로 뭐라 하지?”

“글쎄, 외양간?”

차가 마구간을 지나고, 얼마 안 가서 멈추어 섰다.

여기가 집인가 보다.

차에서 내리니 한편으로 포토맥강이 내려다 보였다.

대충 보기에도 집의 규모가 한 세대가 부를 축적하여 지니고 살기에는 과해 보였다.


하지만, 이곳은 이민국가 미국의 수도 워싱턴 디씨 근교이다.

세상의 어느 곳이라도 찾아가서, 뛰어난 운동선수를 뽑아 와서 메이저리그를 구성해 놓듯이,

보이지 않는 어느 분야라도, 최고를 스카우트해서 그 분야의 메이저리그 멤버를 짜서 놓는다

그래서, 이 곳에서는 홀로 이만한 부를 이루고도 남을 똑똑한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우리가 오늘 밤 만날 사람도 그런 사람 중에 하나일 수 있겠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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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앞으로 내려다 보이는 강이 어둑해지는 표정을 지으며 흘러갔다.

강을 보던 시선을 돌려 집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렇게 포토맥 강가에 큰 땅을 차지하고 있는 집들은 규모도 크고 웅장하다.

집 앞에 성조기만 걸어 놓으면, 공공기관이나 도서관처럼 보일 그런 고전적인 고급주택의 모습을 하고 말이다.


그런데, 이 집은 주위의 집들과 다르게 현대적인 외관을 하고 있다.

현대적이긴 한데, 현재의 현대적인 모습이 아니라,

80년대 당시의 현대적인 건축이면서, 또 80년대에 지어진 다른 현대적인 건축과도 묘하게 달랐다.

주인이 따로 디자인해서 주문하여 세운 집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변이 현관 앞에 서서, 두리번거리는 내가 오기를 기다렸다.

다가가니, 그가 벨을 눌렀다.

문이 열리고, 반백의 머리에 안경을 낀 차분한 분위기의 남자가 나왔다.

그는 정변과 악수를 하고 포옹을 했다.

옆에 선 나에게도 인사말을 건네며 가볍게 묵례를 했다.

그러고는 우리를 집 안으로 안내했다.


집은 현관에서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중심으로 양쪽의 공간으로 나누어졌고,

그 공간들은 프렌치도어로 닫아져 있었다.

아내가 저녁으로 먹을 음식을 픽업해서 오는 중이라 했다.

잠시 기다려야 한다며 우리를 그가 안내한 곳은 오른쪽 문 앞이었다.

집주인이 음료라도 내어 오겠다고 안으로 들어갔다.

정변과 나는 그가 우리를 위해 열어 두고 간 문으로 들어갔다.

정변을 따라 걸음을 옮기다가 나는 멈칫하고 멈춰 섰다.

방 안에 있는 것들 때문이었다.


방안은 그림으로 네 면의 벽이 빼곡히 차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온통 뱀이었다.

초록, 파랑, 검정, 회색.. 각양각색의 뱀.

정면으로 쏘아보는 커다란 뱀의 머리도 있고, 껍질을 벗는 중인 뱀, 여러 가지 모습으로 똬리를 틀기도 하며, 홀로 또는 서로 뭉치고 엮여서 있는 뱀을 그린 그림들이 온 방안을 튀어나올 듯 가득 채우고 있었다.


꼼짝을 못 하고 서 있는 나를 정변이 슬쩍 팔을 둘러 소파로 안내했다.

소파와 벽 사이의 공간에도 그림들이 차곡히 세워져 있었다.

펼쳐 놓치는 않았지만, 뱀을 그린 그림인 것이 분명했다.

내가 받은 충격이 정변에게 전해졌는지, 정변이 변명을 하듯 내게 말을 했다.


“뱀.. 별로 안 좋아하지?”

“뱀.. 좋아하는 사람 있니?”

말을 받아치고 나니까, 속은 여전히 메슥거리지만 정신은 차려졌다.


“전시회가 있어서, 그림을 어떤 순서로 정할까를 고민 중 이래”

정변이 설명을 덧붙였다.

그의 설명을 듣고 나서도, 개운하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슬슬 이 범상치 않은 클라이언트의, 범상치 않을 케이스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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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렀다.

창 밖으로 차 한 대가 불빛을 뿜으며 집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인기척이 났다.


곧이어 우리가 머무는 방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리고, 문이 열렸다.

호리호리한 큰 키에, 다져진 몸매를 가진 이목구비가 뚜렷한 오십 대의 여인이 들어왔다.

청바지에다가 하얀 셔츠를 목 깊이 보이게 입은 단정한 짧은 머리의 여인이었다.


"미안해요. 조금 늦었어요."

정확한 발성에 또박또박한 말투가 인상 깊었다.

그녀의 시선이 정변에서 그 옆의 나에게로 흘렀다.

눈이 나와 마주치자, 또렷한 입가로 익숙한 듯한 사교적인 미소가 지나치는 듯했다.

그녀가 환영한다는 말을 하면서, 악수를 위해 손을 내밀었다.

손톱이 아주 짧게 깎여져 있고 손바닥이 까칠한 것이 화가의 손임을 소개하는 것 같았다.


인사를 주고받으며, 그녀가 우리를 식당 쪽으로 안내했다.

모든 행동이 자연스럽고 당당하면서도 절제된 매너로 사람을 이끌어 갔다.

뱀 그림으로 가득 한 방을 나와 복도를 따라 집의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창문마다 커튼이나 블라인드가 없어서, 창 밖의 짙은 어둠이 까만 벽처럼 집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집의 내부도 곳곳에 그림들이 있었다.

신체 일부가 절단되어 없어진 모습을 가졌거나, 아니면, 팔은 팔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떠 다니는 그림,

혹은, 얼굴의 일부가 썩어 가는듯한 일그러진 여자의 얼굴들이 가득한 그림이었다.


나는 이곳에서 밥을 먹을 자신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마지막 그림은 앙리룻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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