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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밈혜윤 Oct 10. 2023

[긴낮짧밤] ——을/를 잃어버리지 않기

   어느 날 잃어버린 것들

   나는 물건을 곧잘 잃어버렸다. 지갑이나 준비물을 잊어버리고 나가서 종종 집에 돌아왔다가 나갔다. 그나마 집에 두고 갔으면 다행이다. 어딘지 모를 곳에 물건을 쑥 흘리고 오는 때도 많았다. 그런 날엔 하루의 기억을 아무리 뒤적거려도 행방을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런 식으로 책이나 핸드폰 충전기, 보조 배터리, 아끼던 카디건 따위를 잃어버렸다. 핸드폰을 잃어버렸다가 찾은 적도 있다. 찾지도 기억해내지도 못한 우산은 과연 몇 개나 될는지. 잃어버린 물건이 어느 세계에서 동그란 섬을 이루고 있다면 나의 섬은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자잘하고 유용한 것들이 봉긋하게 쌓여 있을 것이다.


   감정도 잃어버리는 게 가능할까? 언제 그렇게 되었는지조차 모르는 이별. 가능한 것 같다. 내 발바닥에 끈질기게 들러붙는 우울과 같은 침대를 쓸 때, 누워있거나 화내는 것 말고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 때, 내 잃어버린 미소와 즐거움을 떠올렸다. 그것들은 언제 나를 떠난 거지. 하루하루를 복기하면서 언제 그렇게 된 건지 알려고 들었다. 너무 아껴서 책상 서랍에 넣어두었다가 큰맘 먹고 들고 외출한 날 잃어버렸던 키링처럼, 소중한 걸 감쪽 같이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다.


   감쪽같았다. 누군가는 “이게 웃겨?” 물을 일에 배 아프게 웃는 일. 방금 부딪칠 뻔한 타인에게 미소를 지어주는 일. 매일 지나치는 화단에 새로 꽃이 핀 걸 알아채면서 즐거워하는 일. 그런 걸 송두리째 잃어버린 기분은 무어라 묘사하기 어렵다. 누군가 내 영혼을 도둑질한 것 같기도, 내 인생에 거대한 에어팟을 씌워서 노이즈 캔슬링을 실행한 것 같기도 한 상태는 비록 서서히 조금씩 나를 찾아들었겠으나 어느 날 벼락 같이 나를 마비시켰다. 자꾸만 자고 싶었다. 관짝 같은 침대에 누워서, 주변 사람들을 향해 내가 품은 관심과 사랑이 숙제 같다고 생각했다. 아무도 내준 바 없고 검사할 바도 없지만 내 마음을 끈질기게 괴롭히는, 완결하지 못한 숙제.


   사랑을,

   사랑은 미소와 즐거움에서 비롯되는가? 내가 잃어버린 것들, 그러니까 미소와 즐거움이 왜 사랑으로 직결되는지 상관관계를 자주 생각했다.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을 보내는 방식은 미소와 농담이었다는 걸 그 시기에 깨달았다. 사랑은 많은 걸 용인하고 견뎌내는 것이기도 하건마는 그 정도로 내 주변인들이 나를 사랑할지는 알 수 없었다. 알고 싶기도 했고 알고 싶지 않기도 했다. 내가 품은 사랑에 보답받지 못할까 봐 겁이 났다. 수의 같은 이불을 덮고 조용히 눈물을 흘렸었다. 내 사랑의 민낯은 보답을 바라는 치졸함이었다.


   그 치졸함에 치를 떨었다. 메신저에 답을 하지 않았고 전화를 받지 않았다. SNS를 비활성화하고 약속을 거절하면서, 사람들의 관심 어린 걱정을 모른 체하면서 사람들과 나를 격리시켰다. 그러면 치졸하지 않을 경지에 이를 거라고 기대했었나? 도대체 뭘 기대하고 그런 짓거리를 했는지 스스로도 잘 모르겠다. 그런 헛짓거리를 하다가 허망하게 친구를 떠나보냈다. 그때 내가 답장했다면 다를 수 있었는데. 혹은 마음에 남을 만한 따뜻한 말 몇 마디는 나눌 수 있었을 텐데. 아둔한 선택의 끝에는 여러 후회와 상상만이 남았다.  


   되찾고 싶었던 건 빈자리를 그러안은 후였다. 어딘가에 흘린 것들은 어떻게 주울 수 있을까. 미소. 즐거움. 관심의 표현. 연락. 사랑. 무차별적으로 뿜어냈던 내 마음들.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모르는 것을 주워올 수는 없다. 다시 만드는 수밖에. 투덜대며 우산을 새로 사는 것처럼. 잃은 건 순간인데 쌓는 건 무디고 끈질겨야 했다. 커다란 상실이 가슴에 낸 상처를 꾹꾹 눌러 피를 내면서 잃은 것을 채워냈다. 품이 많이 들었다.


   다시 미소를 짓는다. 좋은 것들을 바라본다. 이름을 부르고 관심을 표한다. 누군가 부르면 약속을 피하지 않는다. 늘 스스로와 약속한다. 사랑을 잃어버리지 않기. 사랑에 무감해지지 않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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